“실험용 쥐 같아요.”
라이더(배달노동자)들이 하나둘 퇴근하는 밤 10시, 서울 영등포 커피숍에서 만난 배달의민족(배민) 라이더의 말이었다. 일주일 전, 강북에서 만난 라이더도, 홍익대 앞에서 만난 라이더도 약속이나 한 듯 같은 말을 했다.
매일 밤 9시면 공지되는 배달료매일 밤 9시 배민은 라이더들이 사용하는 앱 ‘브로스’에 다음날 얼마의 배달료를 받고 일할 수 있는지를 공지한다. 기본 배달료는 3천원. 여기에 주문 건수, 라이더 수, 날씨에 따라 500원에서 2천원의 프로모션이 붙는다. 주문량이 많고 라이더 수가 부족한데 날씨도 안 좋아 배달 속도도 나지 않는다면 높은 배달료를 주고, 주문량은 적고 라이더 수는 넘쳐나고 날씨도 창창하면 배달료를 낮게 지급하는 건 당연한 일 아닐까? 수요와 공급에 따른 완벽한 균형가격을 스타트업의 기술혁신과 빅데이터로 이뤄낸 것이다.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 변화다.
빅데이터의 재료는 라이더들이다. 100개 주문을 20명이 처리할 수 있을지, 30명이 처리할 수 있을지, 비가 오면 평균 얼마만큼 배달할 수 있을지, 거리당 배달 속도는 얼마인지 등을 데이터로 축적하고 이를 바탕으로 일정 유형을 만들어내면 자동으로 요금을 결정하는 ‘알고리즘’이 만들어진다. 알고리즘이 만든 가격과 배달 시간은 반박이 불가한 팩트이자 과학으로 보인다. 그런데 시민들과 라이더들은 안다. 대한민국 배달 속도는 인간의 속도가 아니다.
라이더들이 사용하는 앱에는 배달을 완료할 때마다 실시간으로 금액이 표시된다. 3천원! 6천원! 1만원! 1만6천원! 2만원! 오토바이 속도계만큼 자기 소득도 비례해 올라가니 신호 위반과 과속이 벌어진다. 잊을 만하면 날아오는 신호 위반 딱지처럼, 누군가의 사고 소식, 누군가의 사망 소식이 들려온다. 0과 1로 이루어진 빅데이터에는 당연히도 사람 이야기는 담겨 있지 않다. 인간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로켓 배송보다 빠른 번개 배송, 번쩍 배달을 서비스한 라이더들은 자신이 물어다준 데이터로 다시 통제받는다.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실시간 균형가격 속에,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의 균형은 없다.
배민의 일방적인 소통은 매일 밤 9시에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쿠폰으로 고객을 모으듯, 배달 한 건당 6천원의 프로모션으로 라이더를 대거 모집하더니 몇 달 안 돼 배달 단가를 계속 떨어뜨리고 있다. 수요와 공급에 따라 라이더를 합리적으로 뽑는 게 아니라 언제든 사용할 수 있도록 배민커넥터(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배달일을 하는 사람)를 공격적으로 모집해 이젠 1만 명이 넘었다. 배민만의 문제는 아니다. 요기요도 시급 1만1500원에 라이더를 모집했다가 두 달 만에 시급 1천원을 깎고, 다시 시급 5천원에 건당 1500원으로 바꿔버렸다. 이 두 회사가 합쳤다. 요기요의 모회사인 딜리버리히어로가 배민을 합병해버린 것이다.
또 어떤 새로운 실험이 기다릴지그날 내 전화기는 배민 조합원들의 전화로 불이 났다. 어려운 플랫폼이란 말을 쓰지 않아도 오랜 기간 이런저런 실험을 당해온 라이더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독점적 지위를 가진 플랫폼이 또 어떤 새로운 실험을 할지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중요한 건 정보를 독점하고 과학적인 근거로 운영된다는 세련된 플랫폼에서 라이더들의 불안은 근거 없는 징징거림으로 비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인공지능 앞에서 인간의 불안과 불만은 확신조차 가질 수 없다. 라이더들이 그들의 노동조합 라이더유니온에 ‘배달의민족에 단체교섭을 요구하라’고 요청한 이유다.
플랫폼이 주장하는 혁신과 진보에 라이더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노 땡큐.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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