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작가, 60대 비혼 일본인 여성, 고양이와 책과 음악과 뜨개질의 반려인, 성악설을 믿는 낙천주의자, 섬세하되 예민하지 않은 문장가. 무레 요코가 들려주는 ‘안 하고 살아도 아무 지장 없는 것’ 15가지에 관한 이야기.
(이봄 펴냄)에는 욕망·물건·생활, 이 세 영역에서 저자가 끊어낸 일들이 소개돼 있다. 이번 산문집에서 특유의 상쾌함과 유머는 정점을 찍은 듯하다. 해야 할 것투성이인 삶에 무려 안 해도 되는 것들이라니!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자유는 익숙하지만, 안 해도 되는 자유는 낯설다. 어쩌면 그게 더욱 우리를 자유롭게 만들지 모른다.
먼저, 콤플렉스를 지우려는 욕망인 화장을 그만두기까지. “젊은 인기 배우가 어떤 여성 스타일을 좋아하는지 들어보니 ‘아침에 일어났을 때 예쁜 사람’이라고 했다. 나는 그에게 살의를 느꼈다. 그런 여성은 오드리 헵번 정도밖에 없다. 아침에 일어나면 성별마저 바뀌는 나 자신을 떠올리니 한숨만 나왔다.” 아침에 눈뜨면 “거울 속에 아저씨가 있으니 어찌해야 하나”. 속눈썹이 뽑히곤 하는 눈화장, 매끄럽게 ‘보이는’ 끈적한 피부화장은 하지 않는다. 아픈 게 싫으니까, 답답한 게 싫으니까. “여성호르몬이 거의 없어져 우르르 표면으로 올라온 기미”는 미백 시술 대신 컨실러로 해결한다. “신경 쓰이는 부분만 살짝 숨기고, 나머지는 옅게 두는 것이 낫다.”
젊을 때부터 과감히 거부한 물건은 하이힐. “나 같은 체형이 하이힐을 신으면 높은 데 올려놓은 물건처럼 보인다. 다른 사람의 시선과 상관없이 나만 쾌적하면 그만이지만, 고통스럽다면 신을 필요가 없다. 발가락을 쑤셔넣고 일단 폼을 내면 보기에 멋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힘든 게 제일 싫다.” 탈코르셋은 일단 자신과 안 어울리고 힘든 건 질색이라는 단순한 이유면 충분하다.
무레에게 결혼은 생활의 장애물로 분류됐다. “내가 바라는 건 혼자서도 먹고살아갈 수 있는 일이었다. 남편이나 자식이 있는 가정이 아니었다. ‘불도저 스타일’ 여성이라면 앞에 장벽이 있어도 팍팍 부수면서 나아가겠지만, 나처럼 ‘자전거 스타일’인 사람은 도로에 있는 큰 돌, 작은 돌을 다 피하고, 큰 벽이 있으면 지나가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삶을 위해서는 결혼도 자식도 피해야 했다. 이것이 내게는 베스트였다.” 무레의 섬세함은 이런 식이다. 자신의 스타일을 긍정하면서 다른 스타일의 온전함을 반드시 언급하고 존중한다. 내가 겪어보지 않은 삶에 대해 공평한 태도를 가지고, 함부로 말을 얹지 않는 이가 섬세하다. 자기 증명과 보호에 급급한 예민함과는 다르다. 예민한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는 만큼 사실 섬세하지도 않다.
‘그렇게 살면 나이 먹어서 외로워.’ 걱정을 가장한 저주를 이제는 구분할 수 있다. 외로움을 상대방의 약점으로 취급하는 저급한 사람과는 멀어져도 된다. 대신 이런 삶을 더 가까이하면 시간은 축복이 된다. “환갑이 지난 나는 혼활(결혼을 위한 활동)이 아니라 종활(인생의 마무리를 위한 활동)에 신경을 쓸 때가 됐다. (…) 모두 세상이 만든 ‘당연함’에 너무 신경 쓴다. 사람은 ‘한다, 하지 않는다’를 선택할 수 있다. 나는 옛날부터 들어온 여자의 ‘행복 루트’를 완전히 무시했다. 전부 하지 않고 살고 있다.”
석진희 기자 ninano@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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