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1일 나는 퀴어 퍼레이드에 참여해 역대 최대 차량이라는 11대의 트럭과 함께 4.5㎞를 행진했다. 광장을 나서자 반대 집회 쪽에서 ‘동성애는 죄악’이라는 외침이 들렸다. 그러나 외침은 차량 위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퍼포먼스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신나는 음악에 묻혀버렸다. 누군가들이 혐오발언을 퍼붓는 동안에도 축제 참가자들은 노래 부르고 춤추며 유쾌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프라이드, 지금 여기에 있다이른바 ‘성소수자’로 지칭되는 이들을 차별하는 근거로 오용되는 종교적·의학적·사회적 입장을 여러 측면에서 반박할 수 있겠지만 그날의 퍼레이드에서 내가 생각한 것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퀴어 퍼레이드의 필요성이다. 자신이 성소수자를 차별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들 중 일부는 ‘그들을 차별하지 않지만 광장에서 축제를 여는 것은 반대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누군가를 ‘그들’로 지칭한 뒤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기를 강요하는 것이야말로 억압이다. 사회적 배제는 ‘그들이 없다’, 또는 ‘(어딘가엔 있겠지만) 내 눈엔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있지만 없는 존재’라는 타자화 인식은 성소수자들이 공개된 곳이 아닌 은폐된 곳에, 중심부가 아닌 주변부에 머무는 것을 당연시 여기게 만든다. 퀴어 퍼레이드의 핵심 키워드인 ‘프라이드’는 이런 인식에 저항한다. 정체성에 대한 긍지를 말함으로써 ‘그들’로 지칭되는 ‘우리’가, ‘당신’과 다른 동시에 같은 ‘인간’으로서, ‘지금’ ‘여기’에 존재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드러냄’은 사회의 공적 공간을 이성애자/비트랜스젠더가 점유하고 있다는 환상에 균열을 낸다.
둘째, 특권에 대한 생각이다. 특권 개념을 ‘특별한 사람들의 특별한 권리’로 좁게 해석할 때, 자신이 누리는 당연한 권리가 누군가에게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은 간과된다. 한국인, 남성, 이성애자, 비장애인인 사람은 이주민,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이 겪는 일상화된 차별을 알 수 없다. 만약 알 수 있다면 오직 알려는 의지를 가졌을 때만 (부분적으로) 가능할 것이다. ‘나는 아무 특권도 갖고 있지 않다’는 말은 ‘나는 내가 경험하지 않은 차별에 대해 생각해본 적 없다’는 말과 같다. 자신이 모르는 존재를 끝내 모르는 상태로 내버려두는 사람은, 자신이 누리는 권리와 타인이 누리지 못하는 권리의 간극을 결코 인식하지 못한다.
셋째, 양성평등의 허구성이다. 성문화연구모임 ‘도란스’에서 펴낸 책 는 남녀평등·양성평등이란 말이 그 의도와 무관하게 여/남이 성별만 다른 대칭적 존재로 여겨지는 착시현상을 낳았다고 지적한다.
‘양성평등’ 바깥의 전쟁여성혐오가 역사상 가장 오래된 차별이라는 사실은 지워지고, 극심한 여성혐오에 대항하는 것은 여성혐오의 대칭적 개념으로서 남성혐오로 명명됐다. 결과적으로 이 착시현상과 잘못 명명된 언어들은 실재하는 사회적 억압과 차별을 바로 보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양성평등은 젠더를 여/남이라는 이분법으로 바라보고 섹슈얼리티를 이성애로만 전제한다는 점에서 양성평등 담론 바깥에서 일어나는 투쟁을 배제했다. 인권조례 표현을 문제 삼으며 “양성평등은 찬성하지만 동성애를 포함하는 성평등은 반대한다”라는 주장은 역설적으로 양성평등이 모든 사람의 평등이 아님을 말하는 셈이다.
나와 다른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을 알기 위해 노력하는 것, 내가 누리는 권리를 누군가는 누리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직시하는 것, 그것이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시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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