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인 권보드래가 역사가의 몫이랄 수 있는 3·1운동 연구에 꽂힌 것은 2000년대 초반이었다고 한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3·1운동 신문 조서를 보곤 ‘당시 시위에 나섰던 사람들이 과연 누군가’라는 물음표가 커다랗게 찍혔다. “조야하면서 장엄하고, 난폭하면서 고귀하고, 무지하면서 드높은, 이들은 누구인가?”
보수적으로 집계하더라도 당시 인구(1600만 명)의 3.7~6.2%(60만~100만 명)가 만세 시위에 나섰다. 우리는 이들이 나선 이유를 조금도 의심 없이 “독립을 촉구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하지만 당시 신문 조서를 보면, 독립을 촉구하기 위해 만세를 부른 게 아니라 “독립이 된 줄 알고” 만세를 부른 이들도 많았다. 관공서 앞에 독립선언서가 나붙자 군수가 “독립됐다는 소문이 사실이냐”는 상급 기관에 공식 문서를 보낼 정도였다. 오합지졸이나 다름없었으나, 만세꾼들의 정서는 한껏 고양됐다. 3·1운동을 배경으로 쓰인 소설들은 100년 전 3월 봄밤의 흥분을 이렇게 전한다. “사면팔방으로 꽃밭처럼 불길이 타오르는데 마치 아우성을 치듯 만세 소리가 그 속에서 들끓는다. 이 근감한(흐뭇하고 보기 좋다는 뜻) 횃불들은 ‘합방’ 전에 성행하던 ‘쥐불놀이’보다도 더한 장관이었다.”
을 쓴 권보드래는 왜 사람들이 이처럼 목 놓아 만세를 불렀는지, 세계사적 맥락과 어떻게 닿아 있는지, 만세 운동이 이후 세대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어떤 사회 변화를 일으켰는지 탐구한다. 1910년 한일병탄 이래 일제는 도로·철도·수도 건설 등 근대화를 서두르는 한편, 떠들썩한 대중 행사를 열어 조선인을 길들이려 했다. 하지만 증세·토지조사사업·공동묘지령·쌀값 폭등·독감 유행·차별 등 일상적 폭력에 조선인들의 분노는 차곡차곡 쌓여갔다.
1910년대는 또한 멕시코혁명(1910)·신해혁명(1911)·아일랜드 봉기(1916)·러시아혁명(1917)이 줄을 이었고, 1919년 한 해만 해도 이집트혁명·헝가리혁명·중국 5·4운동 등이 잇따르며 변화의 기운이 만개한 시기였다. 비록 시위를 이끈 청년들이 기대했던 대로 정치조직·사회조직의 근본적 변혁에는 이르지 못했으되, 3·1운동은 새로운 역사의 주체들을 역사의 전면에 내세웠다.
“삼베 수건을 머리에 동여매고 나선” 노동자, 손가락을 베어 피로 태극기를 그리고 나선 아낙, 패물을 팔아 마련한 상복을 입고 거리로 나온 기생, 소 잡을 때 쓰던 칼을 휘두르며 나선 진주의 백정촌 여성…. 시위 참여의 경험이 없었더라면 기생 정금죽이나 현계옥, 강향란이 3·1운동 직후 유학을 가거나 정치 활동에 투신하는 일이 없었을 것이고, 몇 년 뒤 진주가 백정해방운동의 발상지가 되는 일도 없었을지 모른다. 3·1운동이 없었다면, 1910년 이후 태어난 아이들은 자유롭게 손발을 휘두르고 목청껏 소리를 지르는 경험이 어떤 것인지, 어쩌면 태극기가 어떻게 생긴 것인지조차 몰랐을 수 있다.
3·1운동 100돌을 맞은 지금, 지은이는 “당시 대중이 목격했던 세계와 그들이 꿈꾸었던 나라에 대해 발본적으로 논해보자”고 제안한다. 아마도 3·1운동의 가능성을 탐색하다보면, 그 길은 21세기 촛불광장으로 이어질 것이다. 100년 전 사건이 현재진행형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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