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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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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루랄라, 난 너를 좋아했어

3월25일 문 닫는 카페 ‘한잔의 룰루랄라’…

계획 없이 우연에 끌려 홍대 취향의 공동체로 자리매김한 10년
등록 2019-01-05 06:17 수정 2020-05-02 19:29
한잔의 룰루랄라의 메뉴판. 작가나 손님이 그리는 만화를 표지로 내세운다.

한잔의 룰루랄라의 메뉴판. 작가나 손님이 그리는 만화를 표지로 내세운다.

“오 룰루랄라 펀 에브리바디 오 룰루랄라 록 에브리 나이트 이제 우리 서로 힘껏 안아봐요 촉촉해진 눈망울로 함께 웃어봐요 자 그대와 나에겐 사랑만 남아요.” -‘.59’의

너무 오래 걸려 있어 파는 줄도 모르는 티셔츠, 헌책과 새 책이 뒤섞여버린 카운터 앞 책장, 그 앞의 지난밤 누군가가 놓고 잊어버린 듯한, 가게에서는 팔지 않는 맥주 캔.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인형 곰 세 마리, 전문가의 손길이 느껴지는 가면 장식. 정면 칠판에는 2018년 12월23일 끝난 45일간의 인디 여행이 크게 써 있다. 고여 있던 취기가 문을 열자 훅 끼친다.

서울시 마포구 동교동 166-5 2층, 술도 팔고 우동도 팔고 공연도 하는 커피숍 ‘한잔의 룰루랄라’가 올해 3월25일 영업을 종료한다고 선언했다. 애초 1월 종료로 알려졌다. 이성민 사장은 섭섭할 정도로 명료하게 이렇게 말한다. “3월 이후 인테리어 공사를 하겠다고 건물주가 통보했고, 2월은 설날도 있고 월세 내기 버거우니 1월까지만 장사하자, 그렇게 생각했죠.” 10년 세월을 어쩌고 떼도 안 써보고 영업을 종료하나. “월세가 많이 밀려서 건물주한테 뭐라 할 말이 없네요. 명도소송 해서 쫓아낼 수도 있는 상황이죠. 사실 건물이 오래돼서 손볼 데가 많아요.” 건물주는 계약 당시 주변보다 상당히 높은 시세의 월세를 제시하면서 ‘월세를 올리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렇게 오래 할지 몰랐겠죠. 저도 몰랐으니까요.”

‘룰루랄라’는 기분 좋아 흥얼거리는 소리를 뜻하는 의성어도 되고 모양을 가리키는 의태어도 되지만, 어떤 이들에게 룰루랄라는 기분 좋게 맛있는 것을 먹고 마시고 있다는 뜻의 숙어다. ‘#룰루랄라하고있다’ 등으로 활용할 수 있는. 한잔의 룰루랄라의 폐업은 어떤 이들에게는 맛있는 맥주를 선별해주는, 혹은 좋은 카레집이 문 닫는 것일 수도 있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한 시대가 저무는 것 같기도 하고, 이제 홍대 갈 일 없어지는 일이기도 하다. 한잔의 룰루랄라는 지난 10년간 홍대 언저리 구성원들이 재밌는 일을 꾸미는 장소가 되어왔다. 계획 아닌 계획, 우연과 우연이 교차한 필연을 겪으면서.

만화인들의 성지 가까이
52일간 이어진 시리즈 공연 ‘45일간의 인디여행’이 적힌 칠판 앞에 선 한잔의 룰루랄라 이성민 사장.

52일간 이어진 시리즈 공연 ‘45일간의 인디여행’이 적힌 칠판 앞에 선 한잔의 룰루랄라 이성민 사장.

계획은 카페가 아니었다. 10년 전 음식을 할 줄 아는 친구를 믿고 ‘실내포장마차’를 열었다. 이후 ‘툰크’(TOONK)로 개명한, 만화인들의 성지 한양문고 가까이가 장소를 물색할 때 첫째 조건이었다.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들, 만화가, 편집자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한양문고와 같은 라인의 끝, 카센터 2층은 비어 있었다. ‘최적의 조건’이었다. 물론 오가는 사람은 별로 없어 보였다. 2008년 7월 임시 개점을 하고 8월에 정식 개점했다. 가게 곳곳에는 만화책으로 채운 책장을 놓아두었다. 왕림해주실 만화가를 위해 창가 책상에 라이트박스와 커팅 보드를 두었다. 그런데 믿었던 친구가 3개월 만에 손을 들었다. 엉겁결에 카페로 변신했다.

당연히 계획에는 ‘콘서트’도 없었다. 2011년의 어느 날 가게에 어떤 낯선 이가 놀러 왔다. “기타 치고 노래해도 괜찮겠냐”고 물었다. 몇 테이블 있는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고집 센’ 손님의 청탁을 들어주었다. 등의 듣도 보도 못했던 노래가 심금을 울렸다. “노래 잘하시네요. 누구 노랜가요?” 자기 노래란다. 손님의 이름은 ‘씨 없는 수박 김대중’, 고집 센 손님은 이런 소원까지 피력했다. “일요일마다 사람들이 교회에 가듯이 나도 일주일에 한 번씩 공연을 하고 싶다.” 속으로는 ‘그러다간 우리 가게 망하겠다’라고 생각했다.

그즈음 ‘내가 배우고 싶은 것을 수업으로 만들어 가게에서 배운다’라는 원칙을 만들고 있던 이 사장은 우쿨렐레가 배우고 싶었다. 강사 섭외에 나섰다. 가게에 들르던 두리반 철거투쟁 현장 붙박이들에게 부탁했다. 단발머리를 휘날리며 나타난 사람이 ‘회기동 단편선’이었다. 수업을 진행하며 들어보니 단편선 또한 공연할 공간이 필요하다 했다. “만화가 음악과 다른 점이 그거더라고요. 그림은 보는 순간 매력적이다, 아니다를 판단할 수가 있는데 음악은 들어보지 않으면 판단할 기회조차 없죠. 좋은 곡들이 기회가 없어서 묻히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룰루랄라 그대에게 노래 부르네… 내가 열심히 불렀던 노래는 이제 생각조차 나지 않고 내가 들이부었던 술잔엔 내 눈물만 한가득 차버렸네” -김태춘의 ‘룰루랄라 부기’

2011년 12월26일 처음 공연다운 공연 ‘크리스마스 다음날 하는 공연’을 기획했다. 씨 없는 수박 김대중과 함께 기타트윈스, 씨알(CR) 태규가 무대에 섰다. 이 사장과 기획자들이 두리반에 있던 앰프와 음향 기기들을 싣고 왔다. 다음해 2012년 9월 격주로 한 번은 단편선이, 한 번은 김대중이 기획한 공연이 ‘먼데이 서울’이란 이름으로 열리기 시작했다. 일단은 ‘일주일에 한 번’이라는 김대중의 소원이 공연 제목으로 들어갔다.

돌이켜보니 우연히도 가게 이름에 ‘룰루랄라’와 음표가 들어가 있었다. 또 있다. 가게 인테리어 할 때 벽면 앞에 무대를 만들었다. 이렇게 잘 쓰일 줄은 몰랐는데.” 공연 수입은 공연자와 룰루랄라가 반분했다. 홍대 일대의 공연 수입으로 최고 수준이다. 모든 테이블을 치우고 공연에 집중했다. 리허설 시간까지 포함해 영업시간이 줄어들지만, 라이브 음악을 배경으로 까는 공연은 허락하지 않았다.

이 또한 계획에 없던 일인데 소리가 전용 공연장 못지않다. ‘자랑 불능인’ 이 사장도 소리 하나에는 자부심이 크다. “책 때문일까요. 가끔 지하에 많은 공연 전용 콘서트장을 가봐도 우리가 뒤지지 않아요.” 인적 드문 위치도 한몫 거들었다. “저기 앞에 출장파출소가 있지만 민원이 들어와서 단속 나온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라면 먹는 이들의 줄이 생기자 라면 메뉴를 없애다
2015년 12월21일 서울 동교동 ‘한잔의 룰루랄라’ 카페에서 밴드 피기비츠가 ‘먼데이 서울’ 공연을 하고 있다.

2015년 12월21일 서울 동교동 ‘한잔의 룰루랄라’ 카페에서 밴드 피기비츠가 ‘먼데이 서울’ 공연을 하고 있다.

‘먼데이 서울’ 내에서 ‘제철음악페스티벌’ ‘떼창콘서트’ ‘불우의 명곡’ 등의 테마 공연을 진행했다. ‘떼창콘서트’는 “(영국 록밴드) 콜드플레이가 내한했을 때 떼창 논란을 보고 아예 공식적으로 떼창을 위한 공연을 해보면 어떨까 하여 만들게 된 공연”이고 ‘불우의 명곡’은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 처럼 동료 뮤지션이 주인공 뮤지션의 곡을 해석해 들려주는 공연이다.

1호 공연부터 제공하는 생맥주는 ‘세븐 브로이’다. 가게를 하면서 이 사장의 맥주 철학이 바뀐 결과다. 개업 때는 국산 대기업 병맥주를 팔았다. 어느 날 도매상에서 북한 맥주를 소개했다. ‘대동강’이었다. 맥주 맛을 보고 왜 이렇게 다르지, 하며 맥주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곧 대동강은 천안함 침몰 사건 이후 수입이 끊겼다.

애타게 대동강 비슷한 맥주를 찾아나섰다. 벨기에의 애비에일, 미국 작은 양조장의 맥주들, 한정 판매 맥주, 이벤트 맥주, 역사가 깃든 맥주들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트위터에 ‘우리 가게에서는 국산 대기업 맥주 안 판다’를 선언하기에 이른다. “맥주 광고 중에 ‘물 타지 않은 맥주’라는 광고가 있잖아요. 그러니까 다른 맥주는 물을 탄다는…” 세븐 브로이는 작은 양조장의 수제 맥주다.

한잔의 룰루랄라에는 이 사장의 취향과 게으른 상술이 결합해 독특한 문화가 만들어졌다. 동업자가 튄 뒤 자력갱생한 몇 가지 메뉴는 룰루랄라에 경제적 단비를 안겨줄 듯했다. 초기 ‘해물라면’을 팔았는데, 어느 날 줄을 설 정도로 손님들이 밀려들었다. 알고 보니 모 정보지에 ‘라면 맛집’으로 소개된 것이다. 사장은 라면 메뉴를 없애버렸다.

줄 서는 게 무서워서인지 한동안 음식 메뉴 없이 운영했다. 2016년 “이제 망하겠다” 싶어서 시작한 카레 우동/밥은 적자를 흑자로 돌려놓을 정도로 성공한 메뉴다. ‘인기 밴드 새소년 홍대 공연 → 지방 팬 총출동 → 룰랄레(룰루랄라 카레 우동/밥) 풀 토핑 시식’ 식의 인디문화와 엮인 구조 속에서. 폐업한다니 트위터에는 “카레집 만들어주세요”란 멘션도 올라온다.

영업 종료 날짜를 받게 되자 이 사장은 맘껏 미친 짓을 해보자는 생각에 ‘45일간의 인디여행’을 기획했다. 2018년 10월 말 첫 공지를 올릴 때만 해도 11월1일부터 한 달 공연이었는데, 유럽 순회공연 중인 밴드 세이수미가 참여를 밝히는 등 한팀 한팀 불어나 총 ‘51+1’팀이 무대에 섰다. “우연히” “51플러스 1”을 이 사장은 강조해서 말했다. ‘2010 전국자립음악가대회 뉴타운 컬쳐파티 51+’를 기원으로 하는 ‘51 플러스 페스티벌’과 우연히 숫자가 같아졌다는 것. 이 페스티벌은 2010년 ‘한잔의 룰루랄라’ 바로 옆 칼국숫집 두리반의 철거 투쟁에서 연유한다. 이성민 사장은 두리반 투쟁이 룰루랄라의 공연으로 이어진 맥락을 존경한다.

씨 없는 수박 김대중은 룰루랄라 구석 자리에서 카페 소음을 배경으로 노래 을 녹음했다. 괄호 안에 ‘룰루랄라 세션’이라고 썼다. 룰루랄라는 인디 뮤지션의 ‘세션’이 되어주었다. ‘홍대’로 대표되는 취향 공동체의 역할을 자각하고 그 자리를 끝까지 지켰다. “홍대 클럽을 어렵게 운영해온 이들이 있었기에 가장 언저리의 우리 카페도 공연을 할 수 있었습니다.” 계산이 간편하고 쉬운 ‘문화 상업주의’는 홍대 중심을 물들이고 이제 언저리까지 번졌다. 룰루랄라를 ‘유치’했던 한양문고도 8월 ‘휴업’에 들어갔다. 룰루랄라에서는 가격으로 칠 수 없는 것들이 거래됐다. 그것이 돈이었다면 건물을 샀을 텐데.

기네스북에 오를 뻔한 7시간 공연

언제나처럼 미증유의 시도는 미증유의 경험을 안겨주었다. ‘45일간의 인디여행’이 그랬다. 2인 일렉트로닉 댄스 록밴드 위댄스는 공연한 지 2시간이 지나자 “지금 부산에서 케이티엑스(KTX) 타고 오셔도 2시간은 공연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멘트를 날렸는데, 그 말대로 장장 7시간 동안 공연을 이어갔다. 몇몇은 기네스감 아니냐며 검색을 해보기도 했다(이승환이 2016년 팬들을 불러놓고 하는 ‘빠데이7’에서 8시간 넘게 공연한 적이 있었다). 일렉트로닉 록밴드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공연에서는 친구 따라 공연 온 이가 ‘골든벨’을 울렸다. 부자로는 보이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포크송라이터 김사월은 예정된 1시간30분 공연이 끝난 뒤, 전철로 귀가하는 이들을 돌려보내고, 공연을 1시간 더 이어갔다. “왜냐하면 이렇게 노래를 하는 동안에는 룰루랄라가 계속될 거니까요.”

“뮤지션이자 카페를 자주 찾는 사람으로서 한잔의 룰루랄라는 항상 그 자리에 있었으면 하는 장소입니다.”(뮤지션 김해원, 2017년) 문학과죄송사는 2018년에 이어 2019년에도 룰루랄라 로고가 박힌 한 장짜리 달력을 만들어서 무료로 나눠준다. 이유는 간단한다. “제가 룰루랄라를 좋아해서요.”

글·사진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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