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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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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부서지는 네게, 은영의 미소를

서점인이 뽑은 ‘2018 올해의 작가’

<내게 무해한 사람>의 최은영 작가 인터뷰
등록 2018-12-22 14:47 수정 2020-05-03 04:29

“말을 진짜 못해요. 그래도 오늘 인터뷰 최선을 다할게요.”

그는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말하는 그를 찍는 카메라의 셔터 소리에 놀란 토끼눈을 하다가 멋쩍은 듯 또 웃었다. 웃음이 많고 말투에는 겸손이 묻어나왔다. 12월17일 오후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소설가 최은영(34)씨다.

최 작가는 올해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은 작가 중 한 명이다. 전국 서점인이 뽑은 ‘2018 올해의 작가’로 선정됐고, 지난 6월 펴낸 소설집 은 소설 전문 팟캐스트 의 소설가 50명이 뽑은 ‘올해의 소설’에 이름을 올렸다. 심사위원들은 에 대해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받을 수밖에 없는 상처와 그것을 견디게 하는 힘을 그린다. 사랑, 우정, 연대 중 어느 것이든 ‘폭력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매우 절실한 덕목이라는 걸 깨닫게 한다”고 평했다.

그간 쌓은 이력도 화려하다. 최 작가는 2013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당선돼 등단한 뒤 젊은작가상, 허균문학작가상 등을 받았다. 등단과 동시에 주목받는 신예로 떠올랐다. 2016년 펴낸 첫 소설집 는 현재까지 12만5천 부가 팔렸고,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슬퍼하지 못한 시간을 돌아보며

최 작가는 등단 초기부터 “선천적으로 눈이나 위가 약한 사람이 있듯이 마음이 특별히 약해서 쉽게 부서지는 사람도 있는 법”이라며 “전혀 짐작할 수 없는 타인의 고통 앞에 겸손히 귀를 열고 싶다”고 말해왔다. 그 단단한 다짐을 작품 속에 담아왔다. 최 작가는 외롭게 자란 자매, 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여성, 아들을 못 낳는다는 이유만으로 압박받는 맏며느리, 커밍아웃하고 친구들에게 냉대받는 고등학생 레즈비언 등 소외되고 약한 사람들의 깊은 내면을 그렸다. 화려한 기교 없이 담담한 문체로 감동과 위로를 전했다. 최은영 작가만의 “순하고 맑은 서사의 힘”(서영채 문학평론가) 덕분이다.

에 이어 소설집 이 올해의 소설로 뽑히며 사랑받고 있어요. 2018년은 의미 있는 한 해일 것 같네요.

2018년은 복을 많이 받은 한 해였어요. 두 번째 책 이 무사히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해요. 가장 큰 슬럼프를 넘은 해이기도 해요. 올해 초엔 글이 안 써져 너무 힘들었어요. 그 과정을 거쳐 어쨌든 썼으니까. 나를 쓰다듬고 잘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등단한 지 5년 하고 한 달이 넘었는데 지금껏 꾸준히 글을 써온 제가 대견하네요.

두 책 모두 20·30대 여성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어요. 이 세대에게 ‘위로의 소설가’로도 통하더군요.

문학잡지 에 등단작 ‘쇼코의 미소’가 실렸을 때죠. 아직 제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을 무렵이에요. 친구 결혼식에서 만난 친구의 친구가 “‘쇼코의 미소’ 쓴 최은영 작가 맞으시죠? 저 그거 보고 위로받았어요” 하는 거예요. 너무 놀랐어요. 우울하고 어두운 내용이라서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그 말을 듣고 내 글에 그런 (위로의) 속성이 있나 되물었죠. 내가 글을 쓰면서 계속 나를 위로하고 있었구나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내가 슬퍼하지 못하고 지나간 시간을 다시 돌아보며 애도하고 있었어요. 숨 쉬듯 나를 비난하는 중에도 내 안의 어떤 나는 나를 불쌍하게 여기고 날 쓰다듬어주려 했구나, 그런 내 위로가 글에 담겼던 것 같아요.

작가님은 자신에게 냉정하고 매몰찬 편인가봐요.

저한테 무척 냉정하고 잔인해요. 나한테 제일 못되게 구는 이는 바로 나예요. 1년째 심리상담을 받으며 나를 잘 알게 됐어요. 제가 분노가 많은 사람이라는 것도요. 남한테 그걸 풀 수 없으니 제일 만만한 자기한테 화내고 괴롭혔어요. 그게 억울하니 다시 분노가 일고. 그런데다 예민해요. 다른 사람의 작은 말 한마디도 그 의미를 며칠씩 곱씹어요. 상처를 잘 받아요. 그러면서도 사람을 좋아해요.(웃음)

‘작가의 말’에서 보니 유년 시절 상처로 인해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됐다고 썼어요.

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되도록 그러고 싶지 않아요. 특히 나이 어린 친구들에게 나쁜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요. 고등학교 시절을 돌이켜보면 선생님들이 학생을 심하게 때리고 너무 쉽게 폭언을 했어요. 소름이 끼쳐요. 조금이라도 권력을 가지면 나도 그럴 수 있을까, 난 그러지 말자라고 다짐했어요.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말 “아무것도 몰랐던 거, 미안해”

작가님은 꾸준히 여성 인물이 중심이 되는, 그들 간의 연대가 두드러지는 소설을 쓰고 있어요.

어릴 적 명절에 여자들만 새벽에 일어나 부침개를 만들고 일하는 걸 이해할 수 없었어요. 다들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였어요. 그땐 그 불쾌함을 말로 설명할 수 없었어요. 그저 짜증내고 징징대는 어린애였죠. 그 시기를 지나 대학 때 여성주의 교지 편집 활동을 했어요. 그제야 언어를 얻었어요. 내가 겪어온 것은 가부장적 인습에 의한 여성 차별이었어요. 언어를 얻었을 뿐 아니라 자기 성찰을 하고, 다른 사람을 세심하게 들여다보고, 여러 상황을 조금 더 민감하게 관찰하게 됐어요. 여성주의가 제게 준 선물이에요.

‘601, 602’()에서는 여자라는 이유로 오빠에게 맞는 효진이, 아들을 낳지 못해 눈치를 봐야 하는 엄마 등을 통해 가부장제 속에 만연하게 펼쳐지는 폭력을 담았어요.

‘601, 602’ 마지막에 “엄마가 아들을 낳았어. 나에게도 남동생이 생겼다” “이제 우리는 누구보다도 행복해질 거야. 우리는…”이라고 하잖아요. 제 이야기예요. 엄마가 아들을 못 낳으니까 주변에 은근한 압박감이 있었어요. 그 작품 속 주인공처럼 주변 사람들에게 “네가 착하게 굴어야지 엄마가 아들 낳는 거야”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나도 “엄마가 아들을 낳았으면 좋겠다”고 바라게 되더군요. 제가 6살 때 엄마가 남동생을 낳은 뒤 내 안의 불안감이 사라졌어요. 그 어린 나이에도 어른들이 심어준 가부장제가 몸에 배었던 거예요.

‘씬짜오, 씬짜오’()은 한국군에게 가족을 잃은 베트남 가족의 이야기를 전했어요. 이 작품은 어떻게 쓰게 됐나요.

엄마 아빠가 창간 주주예요. 이 처음 나왔을 때도 봤어요. 초등학교 때 에서 여는 어린이캠프에도 갔어요.(웃음) 에서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 기사를 읽었어요. 우리는 피해자 위치에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소설에서 주인공 ‘나’가 친구 ‘투이’에게 “아무것도 몰랐던 거, 미안해”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오래도록 그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지난해 조남주 작가 등 여성 작가들과 함께 페미니즘 소설 를 펴냈어요.

글을 쓰는 페미니스트를 많이 만났어요. 지지받는 느낌을 받았어요. 글 쓰는 여자들 중에 페미니스트가 아닌 사람은 없을 거예요.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인정을 하느냐 안 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한국 사회에서 소설 쓰는 여자가 페미니스트적 가치관 없이 글을 쓰는 이는 없다고 봐요. 페미니즘은 여성이 성적 도구도 아니고 누군가의 소유물도 아니고 인간이라는 걸 말하고 있어요. 이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으면 세상의 반인 여성을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고 글을 쓰는 것이니까요. 사람을 깊게 이해하고 들여다보려면 여성주의 관점이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사람을 이해하려면 여성주의 관점 필요해

언제부터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나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버스를 타고 왕복 2시간 걸리는 학교에 다녔어요. 중학교 때도 버스 통학을 했어요. 자주 이사를 다녔거든요. 혼자 버스를 타고 다니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일기도 쓰고. 소설 읽는 것도 좋아했어요. 양귀자, 은희경 등 여성 작가의 글을 읽었어요. 읽고 나면 ‘나도 이런 걸 쓰고 싶다’란 생각이 들었어요. 글 쓰는 걸 욕망했죠. 고등학교 때 처음 소설을 썼어요. 그때 쓴 게 남아 있지 않아 안타까워요.

고등학교 때 소설을 쓰며 소설가의 꿈을 꿨군요.

글을 쓰고 싶었지만 소설가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대학 때 교지 편집부에서 활동하며 나보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을 많이 봤어요. 그들에 비해 난 글을 못 쓴다 생각했어요. 글 쓰고 싶다는 욕망을 누르며 살았어요. 문학 안으로 들어갈 용기가 없으면서, 또 한편으로 멀어질 용기도 없었어요. 대학원에서 현대문학을 전공하면서도 소설 창작 수업 신청도 못했어요. 그러다 20대 후반이 돼 (글 쓰고 싶다는) 욕망이 끓어올랐어요. 소설의 신이 오셨어요.(웃음)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죠. 소설을 쓰고 2년 동안 공모전에 투고했어요. 계속 떨어졌어요. 1심에도 못 올랐죠. 그땐 눈물도 많이 흘렸어요.

소설을 쓰면서 가장 염두에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저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너는 이런 사람이야’ 이런 식으로 말할 때 존엄성이 훼손되는 느낌이 들었어요. 소설을 쓰는 건 인물을 타자화·대상화하는 행위지만 그 인물들이 실제 존재하는 사람일 수 있기에 조심해서 써야 해요. 문학이라는 예술이고 뭐고 간에 사람이 가장 중요하고 그 사람을 다치게 하는 건 나쁜 거죠. 제 소설에 나온 인물들은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이가 많아요. 그들을 쉽게 써버리면 나쁜 행동이 되지 않을까요. 타인의 고통을 이용하거나, 아는 척 잘난 척, 뭐라도 되는 척, 하지 않는 작가이고 싶어요.

‘모래로 지은 집’이라는 작품에 “사람이란 신기하지. 서로를 쓰다듬을 수 있는 손과 키스할 수 있는 입술이 있는데도, 그 손으로 상대를 때리고 그 입술로 가슴을 무너뜨리는 말을 주고받아”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이 말처럼 지금 우리는 혐오와 차별의 말이 서로를 아프게 하는 것 같아요. 이 사회에서 문학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사람은 너무 복잡해요. 지문처럼 각자 다 다른 복잡한 내면이 있어요. 그런데 요즘 서로에게 쉬운 이름을 붙이고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아요. 한국 사회에서 노동강도가 심하고 불안정한 노동이 많기 때문인 것 같아요. 누군가를 이해하고 오랫동안 타인을 생각하고, 자기 자신을 들여다볼 여유가 없어요. 이런 사회에 필요한 게 소설이라 생각해요. 소설은 인간 내면을 가장 잘 그리는 문학 장르잖아요. 소설을 읽으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이해하는 경험을 할 수 있어요. 자기와 관계를 맺는 사람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도와줘요. 언어로 설명할 수 없었던 여러 감정을 다시금 곱씹게 하고요. 책을 읽는 게 인간이 되는 과정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저도 문학을 만나지 않고 살았다면 어떤 사람이 됐을지 상상하기 어려워요. 그랬다면 지금보다 더 안 좋은 사람이 됐을 거예요.

2019년엔 첫 장편 도전 “은둔자 될래요”

인터뷰가 끝나고 최은영 작가는 에코백에 든 책 세 권 중 두 권 을 꺼냈다. 기자에게 주려고 가져온 선물이다. 책에 ‘허윤희 기자님께♡ 2018 겨울 사랑을 담아서♡ 최은영 드림♡’이라고 적었다. 마침표를 찍는 대신 하트 세 개를 그렸다. “제가 하트 중독이거든요.(웃음)” 나머지 한 권은 페미니스트 작가 리베카 솔닛의 신간 이다. 그가 읽고 있는 책이다. “리베카 솔닛 책은 거의 다 읽었어요. 글을 쓰려면 많이 읽어야 하거든요.”

최 작가는 “내년 가을호부터 계간지 에 장편소설을 연재할 것”이라고 한다. “처음 장편을 쓰는 거라 두렵지만 완주하고 싶어요. 긴 소설을 쓰는 시간에 퐁당 빠져서 즐겁게 썼으면 좋겠어요. 내년엔 은둔자가 될 겁니다.(웃음)” 스스로에게, 독자에게 단단한 새해 다짐을 건네는 듯했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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