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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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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아빠들의 놀이터 제작기

자연의 흙·물이 살아 있고 ‘교육’ 강조하지 않는 놀이터 만들며 성장한 아빠들

놀이공원 다녀온 뒤 내 역할 다했다고 생색내던 아빠에서 더불어 노는 아빠로
등록 2018-04-03 17:33 수정 2020-05-03 04:28
아이들에게 ‘놀이터’를 직접 만들어 선물한 네 명의 ‘도시 아빠’ 이수진, 송성근, 임상규, 김태성씨(왼쪽부터). 그루벌미디어 제공

아이들에게 ‘놀이터’를 직접 만들어 선물한 네 명의 ‘도시 아빠’ 이수진, 송성근, 임상규, 김태성씨(왼쪽부터). 그루벌미디어 제공

“이번 주말에 애들이랑 뭐 해?”

“미세먼지 때문에 실내 놀이터나 가든지….”

“○○에 새로 연 테마파크가 좋다던데? 직업 체험도 놀이처럼 할 수 있고.”

“그거 다 돈 쓰라고 만든 마케팅이야. 이건 뭐 나가면 다 돈이야.”

동네 배드민턴 클럽에서 운동을 마친 네 아빠가 서로의 주말 스케줄을 공유해본다. 그러나 결론은 늘 똑같다.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을 안겨주고 싶고 실제로 뭘 하긴 해야 하는데, 갈 데도 놀 데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때 초등학교 5학년, 2학년생 아이의 아빠 이수진(40)씨가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우리가 놀이터를 만들어볼래?”

<font size="4"><font color="#C21A1A">아이들과 제대로 놀고 싶다</font></font>

이씨는 중소형 숙박업소 예약 애플리케이션 등을 운영하는 여가 플랫폼 기업 ‘야놀자’ 대표다.

야놀자의 대표인 이수진씨의 또 다른 직업은 ‘아빠’다. 그는 강원도 홍천에 가족형 렌트하우스를 지으면서, 부지 옆에 ‘아빠들이 직접 만드는 자연 놀이터’를 만들어보자고 동네 친구들을 부추겼다. 그렇게 대학 후배이자 사업 동료이면서 동네 이웃이기도 한 임상규(40) 야놀자 부대표, 배드민턴 클럽에서 만난 김태성(39) 푸르덴셜생명 라이프플래너, 지인의 소개로 이들과 함께 배드민턴을 치게 된 송성근(33) 아이엘사이언스 대표가 이씨가 제안한 ‘삽질’의 동반자가 됐다. 집에서 의자 한번 조립해본 적 없고, 텃밭 농사조차 지어본 적 없는 네 아빠가 2016년 11월부터 1년여 동안 거의 매주 토요일을 쏟아부어 만든 놀이터가 지난해 11월 어느 정도 꼴을 갖췄다. 도시 아빠 4명의 놀이터 제작기는 지난 2월 (그루벌미디어)라는 이름의 책으로 묶여 나왔다.

자연의 흙과 물이 살아 있는 놀이터, 아이들이 ‘만들어진 기구’에 끌려다니지 않는 놀이터, 어른이 ‘교육’을 강조하지 않는 놀이터. 아빠들이 선물하고 싶은 놀이터는 그런 공간이었다. 네 아빠를 3월15일 서울 강남구 야놀자 사무실에서 만나, ‘놀이터 삽질이 남긴 것’에 대해 묻고 들었다.

처음 놀이터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궁금하다.

이수진 요즘 도시에 흙이 있는 놀이터가 드물다. 대부분의 놀이터엔 푹신하라고 우레탄이 깔려 있다. 그런 장소에서조차 “어, 거기 앉지 마” “위험해, 다쳐”라는 말만 하는 나를 발견했다. 아이들이 좀 커서는 서울 광장동에 있는 아차산에 데리고 갔다. 그런데 나를 포함한 가족 모두가 자연을 불편하게 여기고 싫어하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시골에서 나고 자란 ‘시골 사람’이다. 그런데도 그랬다. 그러고 보니, 탁 트인 공간, 나무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공간, 땅을 밟을 수 있는 시간 등이 너무 그리웠다.

김태성 초등학교 1학년과 유치원에 다니는 딸이 있다. 두 딸은 주말마다 아빠랑 놀기를 원한다. 그렇게 놀면서도 뭔가 설명할 수 없는 갈증을 느꼈다. 왠지 어디를 가야 할 것 같아서 가도 아이들과 나는 만족스럽게 놀 수 없었다. 공간이 설계한 대로 쫓아다니느라 몸도 마음도 피곤해졌다. 그래서 수진 형이 ‘놀이터’를 만들어보자고 제안한 것을, 정말 많이 고민했다. 결국 ‘아이들과 제대로 놀고 싶다’는 갈증 때문에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것 같다.

<font size="4"><font color="#C21A1A">아이들의 동선을 고려한 놀이터</font></font>
아빠들이 1년 동안 토요일을 헌납하며 만든 놀이터. 그네, 불을 피우고 놀 수 있는 공간, 물탱크를 활용한 작은 집등이 있다. 그루벌미디어 제공

아빠들이 1년 동안 토요일을 헌납하며 만든 놀이터. 그네, 불을 피우고 놀 수 있는 공간, 물탱크를 활용한 작은 집등이 있다. 그루벌미디어 제공

송성근 나는 누가 뭘 하자고 하면, 그냥 하는 편이다. 막상 놀이터 공사를 시작하니, 이런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됐다. 놀이터 공사를 할 때 아들이 4살이었다. 우리 아이가 전형적인 ‘도시 아이’다. 자신에게 뭐 묻는 거 싫어하고, 모래 조금만 묻어도 다 털어내야 하고, 작은 벌레 한 마리에 기겁하고…. 사실 놀이터 공사를 하기 전에는 그런 아이의 모습을 몰랐다. 공사를 시작하고 2017년 5월 아이와 함께 처음 현장에 갔다. 그때 아이가 정말 땅과 못 어울린다는 걸 알았다. 그때 이 작업을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빠들의 ‘놀이터 공사’는 ‘무계획’한 것처럼 보였다. 놀이터를 지을 만한 부지가 있는 현장에 갔더니 물탱크가 있었다. 그래서 ‘물탱크를 활용하자’ 결정하고, 이를 활용해 별 모양의 창문이 난 ‘숲속의 파란집’(별칭)을 지었다. 태풍으로 쓰러진 나무를 가져다 외나무다리를 만들고, 옆 공사장에서 쓰지 않는 대형 수도관을 얻어와 아이들이 움직이고 숨을 수 있는 터널로 활용했다. 그네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잣나무와 소나무 등을 주문한 뒤, 나무를 다듬기 위해 동네 철물점에서 전기톱을 사왔다. 문제는 아빠들이 전기톱 사용법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놀이터 조성 작업은 아빠들의 실전과 연습이 한 뭉치가 된 임기응변의 연속이었다.

책을 읽으니 아빠들이 ‘오합지졸’처럼 느껴졌다. 놀이터가 완성된 게 ‘기적’처럼 느껴졌달까. (웃음)

이수진 1년 걸렸으니 굉장히 오래 걸렸다. 사실 업체에 맡겼으면 한두 달이면 됐을 텐데.

김태성 얼떨결에 총괄감독을 맡게 됐다. 감독이라기에 시키면 되는 줄 알았더니…. (모두 웃음) 사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책을 엄청 읽었다. 처음에 수진 형이 편해문 선생님의 라는 책을 줬다. 이 책에서 말하는 ‘통제된 위험’ ‘건강한 위험’을 가진 놀이터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책을 시작으로 세계적인 놀이터 디자이너 귄터 벨치히의 책 등 놀이터 관련 책 10여 권을 읽고, 날마다 설계했다. 사실 완성된 설계도도 있었다. 근데 현장에 와서 보니, 그게 의미가 없더라. 현실은 이상과 달랐다.

임상규 현장을 최대한 활용했다. 현장에 비탈이 있으면 거기에 끈을 엮어 아이들이 오르내릴 수 있는 놀잇감을 만드는 식이었다.

송성근 총괄감독인 태성은 아이들의 눈으로 모든 걸 봤다. 그래서 ‘동선’을 많이 고려했다. ‘애들이 이렇게 뛰어와 이쯤에서 숨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니 여기에 이걸 만들자. 이쯤에는 징검다리를 만들어야 해. 동선이 그래.’ 그런 식으로.

‘아빠들의 놀이터’는 아이들이 숨을 수 있는 작은 터널 두 개, 숲속의 작은 집, 구름다리, 외나무다리, 나무 징검다리, 그네, 그리고 물을 틀어 배를 띄우는 길이 20m의 수로, 모래놀이 공간 등으로 구성돼 있다. 아이들이 불을 피우며 놀 수 있는 것도 이 놀이터의 ‘특징’이다.

<font size="4"><font color="#C21A1A">놀이터, 아이보다 내게 준 선물</font></font>
무지개색을 칠한 나무징검다리. 아이들은 아빠가 ‘기획’한 동선대로 놀지 않고 넓은 공간에서 자신들의 상상력을 발휘해 놀았다. 그루벌미디어 제공

무지개색을 칠한 나무징검다리. 아이들은 아빠가 ‘기획’한 동선대로 놀지 않고 넓은 공간에서 자신들의 상상력을 발휘해 놀았다. 그루벌미디어 제공

아이들은 동선대로 놀던가.

임상규 신기했던 것이, 공사 초기부터 아이들을 데리고 현장에 갔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에서 아이들이 어린이용 삽으로 땅을 파면서 놀더라. 그동안 내가 놀이에 대해 잘못 생각했구나, 깨달았다.

송성근 나중엔 좀 섭섭한 마음도 들었다. 아니, 우리가 나무 징검다리를 만들었는데 왜 여기서 안 놀지? 이러면서.

놀이터를 만들면서, 아빠들도 많이 성장한 것 같다.

임상규 주 5일 일하고, 날마다 늦게 퇴근하고, 주말에는 여러 가족행사에 참석하거나 에버랜드·롯데월드 같은 놀이공원을 막 돌아다녔다. 그러고 나면, 정작 아이들과 내가 만나는 접점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놀이터 공사를 하며 우리 둘째 아이가 한두 시간 진득하게 땅 파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를 새롭게 발견하게 됐다.

이수진 아이에게 놀이터를 선물한다는 생각으로 했는데, 사실 나를 위한 시간이었다. 보통 주말에 ‘자, 여기 갔다 왔으니 이제 됐지’ ‘아빠, 이거 했으니, 이제 됐지’라는 생각으로 외출을 끝내고 돌아오면 소파에 눕는 식이었다. 아이들과 가족에게 생색을 냈다. 그런데 놀이터에서 보낸 시간은 달랐다. 주중에 아무리 힘들어도 노동하며 힘을 내게 됐다.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생각만 해도 ‘아, 좋다’라는 긍정적 생각이 드는 시간이었다.

김태성 살면서 사계절의 변화를 느껴본 적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강원도 홍천에 오가는 시간 동안 봄이 왔구나, 여름이구나, 단풍이 지네, 이런 걸 느낄 수 있었다. 늘 아이들 중심으로만 생각했는데, 놀이터 프로젝트를 하면서 내가 행복하니까 아이들도 내 행복을 닮아간다는 걸 느꼈다.

송성근 그리고 수진 형의 밥을 잊을 수가 없다. 매주 해주는 밥이 정말 맛있었다. (웃음)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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