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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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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 행복을 타다

파라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선수들의 도전 그린 다큐 <우리는 썰매를 탄다>…

3년 제작하고, 4년 기다린 끝에 3월7일 개봉 앞둔 김경만 감독 인터뷰
등록 2018-02-28 23:08 수정 2020-05-03 04:28

‘스각, 스각, 스각.’

태극 마크를 단 선수들이 썰매를 타고 얼음을 가른다. 퍽을 사이에 두고 격렬한 몸싸움을 벌인다. 구르고 넘어지지만 다시 골대로 돌진한다. “골~!” 그러나 관중석은 텅 비어 있다.

“극장이 싫어하는 요소 다 갖췄다”

파라아이스하키(아이스슬레지하키) 국가대표 선수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영화 의 한 장면이다. 파라아이스하키는 하지 장애를 가진 선수들이 스케이트 대신 양날이 달린 특수 썰매를 타고 경기하는 장애인 스포츠 종목이다. 영화는 한국 파라아이스하키팀이 2012년 노르웨이 하마르에서 열린 장애인 아이스하키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은메달을 거머쥐기까지의 힘겨운 여정을 담았다. 우리가 몰랐던 국가대표들인 정승환, 한민수, 이종경, 유만균, 박상현 선수 등이 주요 등장인물이다.

이 영화는 2014년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 앵글’ 부문에 초청된 수작이지만 그동안 국내 상영관을 잡지 못했다. 정식 개봉을 못하다 2018 평창겨울패럴림픽을 계기로 4년 만에 개봉 기회를 잡았다. 개봉일은 평창겨울패럴림픽 개막 이틀 전인 3월7일이다.

2월21일 과 얼굴을 마주한 의 김경만(48) 감독은 “장애인이 주인공이고, 장르는 다큐멘터리다. 흥행 요소가 없다. 극장이 싫어하는 요소는 다 갖췄다”며 웃었다. 그런 탓에 이 영화는 상업영화를 우선시하는 주요 배급사들에 철저히 외면당했다. 김 감독은 “이 작품이 놓인 현실이 장애인 선수들이 놓인 상황과 겹쳐 보였다”고 했다.

4년 가까이 이어진 무관심 속에서도 김 감독은 개봉의 꿈을 접지 않았다. “선수들이 처음 경기하는 모습을 보고 ‘왜 장애 가진 사람들이 이렇게 과격한 운동을 할까’ 궁금했어요. 이들을 잘 몰랐고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무관심했다는 것을 느꼈어요. 많은 사람에게 이들을 알리고 싶었어요.”

그렇게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했지만, 제작 과정은 쉽지 않았다. 처음엔 선수들이 촬영하는 걸 싫어해 카메라를 피해 다녔다. 낯선 외부인에게 마음의 문을 열지 않은 것이다. 김 감독은 “휴먼 다큐멘터리를 찍는다고 여러 군데에서 촬영을 왔다고 했다. 최대한 불쌍하게 보이려고 슬픈 음악을 깔고 밥상에 있던 고기 반찬도 치우고, 그렇게 연출해 찍은 모양이었다. 선수들이 상처를 많이 입은 것 같았다”고 했다.

김 감독은 선수들이 마음의 문을 열 때까지 천천히 기다렸다. 제작에 3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린 이유다. 어느 순간 선수들은 김 감독을 “감독님”이 아닌 “형”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선수들은 자연스럽게 촬영장비를 옮기거나 빙상장에서 촬영하는 것을 도왔다. “정승환 선수는 (촬영할 때) 긴 바지만 입고 나왔어요. (의족을 한) 다리를 보여주지 않으려 했죠. 그런데 어느 날 반바지를 입고 나오며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었어요.”

김 감독은 마음을 연 선수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 노력했다. 내레이션을 넣지 않고 음악도 최대한 절제했다. 출연한 선수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모습에 관객이 집중할 수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요즘 (다큐엔) 내레이션과 자막이 넘쳐나요. 그걸 넣으면 친절하겠지만 관객은 그 말(감독의 의도)을 따라 영화를 보죠. 관객이 이 영화를 보며 생각할 여지를 남겨두고 싶었어요.”

텅 빈 공항, ‘이게 더 그림이 좋지 않나요?’
김경만 감독은 “<우리는 썰매를 탄다>는 인간의 행복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라며 “이 영화를 보고 관객도 각자의 행복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경만 감독은 “<우리는 썰매를 탄다>는 인간의 행복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라며 “이 영화를 보고 관객도 각자의 행복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선수들과 지내는 적지 않은 시간 동안 김 감독도 그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가 든 카메라는 2012년 노르웨이 하마르에서 열린 장애인 아이스하키 세계선수권대회 예선전 때 펼침막만 있는 텅 빈 관중석, 은메달을 따고 귀국한 선수들과 이들을 맞는 텅 빈 공항을 비춘다. 장애인 선수들에 대한 세상의 무관심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2012년 노르웨이에서 열린 장애인 아이스하키 세계선수권대회를 찍으러 따라갔어요. 관중석에 우리 팀을 응원하는 사람이 없으니 제가 카메라를 찍으며 오디오가 안 들어갈 때마다 파이팅을 외쳤어요. 선수들이 기적적으로 은메달을 따고 공항에 왔는데, 이들을 반기는 취재진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그때 눈물이 핑 돌았어요. 선수들이 그런 저를 위로했어요. ‘가족들만 있는 게 좋지 않냐’ ‘이게 더 그림이 좋지 않냐’라고요.”

선수들을 괴롭힌 것은 세상의 무관심만이 아니었다. 또 다른 벽은 장애인 스포츠에 무지하고 비협조적인 사회의 시선이었다. 김 감독은 경기장 대관이 힘들어 새벽에 가서 훈련하고, 경기장 출입문의 높은 턱 때문에 어렵게 경기장에 들어가는 선수들을 찍었다. 선수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김 감독도 몰랐을 일이다.

영화는 파라아이스하키가 소재였지만 스포츠에 방점을 찍지 않는다. 김 감독은 영화를 통해 가장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인간의 행복”이라 했다. “선수들에게 ‘언제 가장 행복했냐’고 물어봤어요. 당연히 장애를 갖기 전이 가장 행복했다고 할 줄 알았어요. 그래서 과거형으로 물어본 건데 다들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며 웃는 거예요.” 김 감독은 ‘중도 장애인’( 사고 등으로 장애를 얻게 된 이들) 선수들이 과거를 회상하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찍을 계획이었지만, 그의 예상은 멋지게 빗나갔다.

다시 선수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김 감독은 그때 행복에 대해 선수들에게서 들은 얘기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하늘나라에 가면 행복했다고 말하고 싶어요. 당신들은 한 가지 인생만 살아봤겠지만 난 두 가지 인생(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살았다고.” “다리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한 적이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정말로!” “라디오에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나올 때 하루 종일 행복해요.” 그리고 선수들은 모두 ‘썰매를 타는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김 감독은 “이런 얘기를 들으며 나 역시 행복의 의미를 다시 묻게 됐다. 행복은 항상 옆에 있다. 그걸 느끼고 사느냐, 못 느끼고 사느냐의 문제라는 걸 그들이 알려줬다”고 한다.

김 감독은 7년 전 처음 만난 선수들과 가족들의 근황을 알려줬다. 영화 제작이 끝나고 또 4년이 흐르는 동안 많은 이들의 삶에 변화가 있었다. “초음파 사진으로만 나오던 유만균 선수의 딸은 5살이 됐고요. 그사이 둘째 아이까지 생겼어요. 초등학생이던 한민수 선수의 딸들은 고등학생과 중학생이 됐고요. 여자친구와 나왔던 이종경 선수는 올해 그 친구와 결혼합니다.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몰라요. 둘이 안 되면 영화 개봉 못하잖아요.(웃음)” 가슴 아픈 일도 있었다. 폐암을 앓던 정승환 선수의 아버지는 영화를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영화에서 정승환 선수를 쓰다듬는 아버지의 모습이 나와요. 정승환 선수는 영화를 보면서 그런 아버지를 볼 수 있어서 좋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생전 모습을 이렇게라도 볼 수 있으니까요.”

에 부인과 딸들과 함께 출연한 한민수(48) 선수는 이번 평창겨울패럴림픽 경기를 마지막으로 은퇴한다. 그는 18년 동안 장애인 아이스하키 선수로 활동했다. 극장 개봉 전 시사회에서 가족들과 함께 영화를 본 그는 “부끄러워서 내가 나오는 장면은 못 보겠다. 다른 선수들이 행복을 이야기한 부분에 나 역시 공감한다. 빙상 위에서 썰매를 타는 그 순간만큼은 불편한 게 없고 정말 행복하다”고 말했다.

메달과 ‘천만 관객’을 향한 질주

한민수 선수 등 영화 속 주인공들은 2018 평창겨울패럴림픽에 국가대표로 출전한다. 한국 파라아이스하키팀은 현재 세계 3위로, 이번 패럴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것이 목표다. 김 감독과 주인공 선수들은 서로의 목표를 이루자고 약속했단다. “ 관객 1천만 명 돌파!” “파라아이스하키는 메달 따기!” 3월 극장에서, 평창겨울패럴림픽에서 그들의 힘찬 질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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