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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에 대한 철학적 질문 <철학자의 개>
등록 2018-02-15 18:03 수정 2020-05-02 19:28
<철학자의 개>/ 레이먼드 게이타 지음/ 변진경 옮김/ 돌베개 펴냄/ 1만4천원

<철학자의 개>/ 레이먼드 게이타 지음/ 변진경 옮김/ 돌베개 펴냄/ 1만4천원

십수 년을 함께한 반려견이 죽었을 때 느끼는 감정과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의 부고 소식을 들었을 때의 감정을 비교한다면 어떤 차이가 있을까. 내 반려견이 사고로 다쳤을 때와 모르는 개가 사고로 거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을 때, 당신은 같은 감정을 느낀다고 말할 수 있는가.

철학자 레이먼드 게이타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시골에 살면서 앵무새 ‘잭’, 개 ‘올로프’, 소 ‘루샤’ 등을 키웠다. 지금은 개 ‘집시’와 함께 산다. 저자는 자신이 기르는 개의 이야기, 아버지가 보여준 동물에 대한 연민 등 실생활에서 우리가 느껴볼 만한 감정을 소환한다. 감정이 야기하는 철학적 질문과 그에 대한 대답을 좇다보면, 동물은 어떤 존재이고, 우리가 동물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당신이 동물을 가깝게 느끼는 사람이라면, 이 책의 내용은 논쟁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만큼 제대로 읽어볼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죽음과 고통 등 인간이 느끼는 감정과 그로 인해 생겨나는 삶에 대한 성찰을 동물이 그대로 느낄 수 있는지 묻는다. 그리고 개는 인간처럼 지적이거나 복합적인 성찰을 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동물에겐 자아와 미래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에 죽음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개 역시 공포를 느끼고 죽음 자체를 의식한다고 해도, 자신도 언젠가 죽고 죽음은 피할 수 없는 모든 생명의 숙명이라고 인식하는 등 인간과 같은 수준의 사고를 할 순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렇다면 인간의 목숨은 다른 생명보다 가치 있다 말할 수 있을까. 인간이라면 아픈 아이와 아픈 개를 똑같이 대할 수 없다고 저자는 단정한다. 그 근거는 인간만이 개체성을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또 아우슈비츠의 잔혹함을 현재 사회에서 이뤄지는 소, 돼지, 닭 등에 대한 공장식 축산과 도살 시스템과 직접 맞비교하는 것은 매우 불쾌한 일이라고 꼬집는다.

인간이 동물의 죽음을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동물의 죽음에 대한 인간의 반응은 평소 그 동물과 맺고 있는 관계에 따라 다르다고 본다. 그래서 오랜 시간을 함께한 반려견의 죽음과 길에서 스친 이름 모를 동물의 로드킬, 고기로 소비되는 산업동물의 죽음이 가져오는 무게는 각각 다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반려견을 그토록 사랑하는 할아버지가 다른 동물을 잡아 식탁에 올리는 행위를 했다고 해서 할아버지가 동물에게 느끼는 연민에 결점이 있다고 봐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동물의 존재 의미는 무엇일까. 중요한 것은 인간과 동물의 상호작용 자체다. 반려동물과 반려인의 관계엔 악어와 악어새같이 생물학적으로 다르지만 서로 의존하는 160종에 이르는 동물 사이의 만남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화학작용이 있다. 훈련된 반려견이 반려인과 관계에서 느끼는 것은 일반적인 야생동물이 누리는 자유와는 완전히 다른 감정이다.

이 책은 동물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 공감 능력을 키워온 독자들이 읽기엔 다소 불편한 지점이 있다. 저자는 현대사회가 동물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비판하지 않는다. 하지만 생각해본다. ‘언어’로 발화되지 않는 동물의 의사표현을 인간이 모두 인식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나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 동물과 인간의 차이를 전혀 의식하지 않았던 사람이나, 동물을 과학 탐구의 대상으로만 여겨온 사람이라면 이 책이 제시하는 동물의 존엄성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끈질기게 따라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최우리 애니멀피플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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