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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병헌·갓명숙의 추락

게이머들이 신으로 치켜세운 전병헌과 여명숙…

비리 혐의와 설화로 ‘신의 지위’ 내려놔
등록 2017-12-24 00:39 수정 2020-05-03 04:28
복근을 드러내고 운동하는 여명숙(왼쪽)과 게임 캐릭터로 분장한 전병헌. 임상훈 제공

복근을 드러내고 운동하는 여명숙(왼쪽)과 게임 캐릭터로 분장한 전병헌. 임상훈 제공

‘갓세정, 갓연경, 갓지성….’ 최상급 호칭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한 분야에서 신의 경지에 오른 사람, 또는 그만큼 칭찬할 만한 사람 이름 앞에 영어 단어 ‘god’(신)을 붙여 ‘갓OO’라고 이른다. 게임생태계에도 이런 칭호를 얻은 인물이 있었다. 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과 여명숙 게임물관리위원장이다. 게이머들은 ‘갓병헌’ ‘갓명숙’이라 했다.

전병헌 전 수석은 2013년 1월 국회의원 신분으로 한국e스포츠협회(KeSPA) 협회장이 됐다. 그해 10월 당대 최고의 인기 게임 (LOL)의 캐릭터 코스프레를 하면서부터였다. 롤(LOL)드컵 행사에 참석해 “한국이 우승하면 캐릭터로 코스프레를 하겠다” 공약했고, 이를 지켰다. 게임 캐릭터로 분장한 3선 국회의원 사진은 각종 매체와 게임 커뮤니티에 퍼졌고, 열광적인 호응을 얻었다. 같은 달 새누리당 황우여 원내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서 게임을 ‘4대 악’이라 지목했을 때, ‘갓병헌’은 루리웹이라는 대형 게임 커뮤니티에 ‘4대 중독법 반대’ 게시물을 올렸다. 국회에서 게임기업에 매출 1%를 손익 여부와 상관없이 강제 징수하는 법이 발의(2013년 1월)되고, 전세계 최초로 게임을 알코올·마약·도박과 함께 4대 중독물질·행위로 포함한 법(2013년 10월)이 생기던 엄혹한 시절, 갓병헌은 ‘신’의 반열에 올랐다.

여명숙 위원장은 2015년 4월 게임물관리위원회의 수장으로 선임됐다. 그는 2016년 12월 최순실 국정농단 청문회에서 비선(최순실)의 비선(차은택)이 주도한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에 대해 “문화판 4대강에 버금가는 비리이다. 문화융성, 국가 브랜드와 자존심이 걸린 국책사업에서 한 국가의 정신이 난도질당한 셈”이라고 비판했다. 속 시원한 ‘사이다’ 발언으로 그는 청문회 스타가 됐다. 게이머들도 그가 게임물관리위원장임을 처음 알게 됐다.

이후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뉴스가 됐다. 2017년 1월 한 누리꾼이 트위터에 “여명숙 이년이 바로…”로 비난 발언을 하자, 여 위원장이 “여명숙 찾으시는 거면 제가 ‘그년’ 맞습니다… ‘이년’ 물러갑니다”로 대응한 것도 기사화됐다. 복근을 드러내고 운동하는 그의 사진들을 퍼나르며 ‘걸크러시’(여성이 여성에게 선망과 동경을 불러일으키는 일)라고 추어올리는 이들도 있었다. 여러 행사에 참석해 “정부의 지나친 규제로 게임산업의 침체가 가속화하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린 일이 알려지자 게이머들은 그를 ‘갓명숙’이라 이르기 시작했다. 그는 아예 게임 매체와 제휴해, 확률형 아이템과 결제 한도에 관한 의견을 묻는 게시물을 올리기도 했다.

두 사람의 행보에 겹치는 구석이 꽤 있다. 비디오와 네트워크 세대인 게이머들에게 어필하는 방법을 알았다. 코스프레와 몸짱 사진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게이머들에게 공유되고, 이미지로 각인됐다. 게임 커뮤니티까지 찾아가 직접 글을 올려 게이머의 분노와 불만을 달래줬다.

묘하게도 두 사람은 비슷한 시기에 ‘신의 지위’에서 추락했다. 한 사람은 국회의원 직위를 이용해 기업체에 뇌물성 후원금을 협회에 내도록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다른 한 사람은 국정감사에서 한 인사를 실명까지 거론하며 게임계 농단 세력으로 지목했다가 사과하는 촌극을 빚었다. 그는 게임물관리위원회 노조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고 있다.

신은 추락했지만, 게임계에 ‘갓’이 재림할 확률은 높다. 2017년 9월 조승래(더불어민주당), 이종배(자유한국당), 이동섭(국민의당), 김세연(바른정당) 등이 참여한 ‘대한민국게임포럼’이 국회에서 출범했다. 누가 ‘갓’이 되더라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임상훈 디스이즈게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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