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만의 장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만큼 나이를 먹(었)지만 의 주인공 ‘나’는 젊다. 여전하다. 대체로 전작 소설의 ‘나’가 그래왔듯 말수가 적다. (허투루 하는 말이 없다. 그 허투루도 계산된 것이다.)
주인공은 일상에 성실하다. 장을 보고 요리의 밑재료를 다듬어 냉동과 냉장으로 구분한다. 비닐랩을 씌우는 것도 잊지 않는다. 해 질 녘 자신만을 위한 요리도 한다. 작가의 소설에서 킬러가 등장하거나 새로운 세계에 진입할 땐 이런 능숙한 일상이 함께한다. 그래서 하루키 마니아라면 ‘나’가 요리할 때 하루키의 전작 소설을 레시피 삼아 간단한 맥주 안주를 준비해야 한다.
음악도 필요하다. “해가 지면 와인을 따고 오래된 레코드를 들었다”라는 문장을 읽으며 ‘이참에 오디오를 한번!’ 하며 침을 꼴깍 삼켰을 법하다. “오후에는 주로 오페라를, 밤에는 베토벤과 슈베르트의 현악4중주를 들었다”는 대목에서는 ‘아, 어쩔 수 없군’ 하며 유튜브라도 검색해 플레이 버튼을 누르는 나를 발견한다.
문장 위에 콩콩콩 찍힌 방점이뿐만 아니다. 카키색 치노바지와 크림색 보트슈즈를 입은 등장인물을 보며 ‘역시 나에겐 가을 옷이 조금 부족해’ 느낄 것이다. “아름다운 걸음걸이”와 “등을 똑바로 펴고 필요한 근육을 구석구석 남김없이 사용하는 것”이 내게 더 필요하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는다.
는 이렇듯 익숙하다. 이혼 통보를 받은 ‘나’가 여행 뒤 한 노화가의 집을 거처로 삼으면서 숨겨온 그의 작품을 만나 벌어지는 이야기가 뼈대다. 여행과 저 너머 세계 등을 보며 “하루키, 또야?”라고 반응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작 와 비교해볼 때 는 여러 면에서 녹록지 않다. 우선 화가인 ‘나’의 작업 과정을 따라가는 것이 꽤 고된 정신노동이다. 여기에 이전 작품처럼 ‘부재의 개념어’가 반복해 등장하며 난이도를 높인다. 돌직구를 던지던 마무리 투수가 날카로운 슬라이더까지 탑재한 느낌이랄까.
여기에 430쪽까지 150개 구절에 찍힌 방점은 운동화에 숨어든 날카로운 파편 같다(1163쪽 중 왜 그만큼만 셌는지는, 짐작하셨겠지만 ‘내가 왜 이걸 세고 있을까’ 하는 마음에서였습니다). 거의 2쪽에 한 번씩 문장 위에 콩콩콩 찍힌 방점은 일단정지 신호 같다. 이젠 좀 달린다 싶으면 툭 리듬을 끊어놓는다. 강조라는 것 외의 일관성을 찾기 힘들다는 점에서도 고약하다.
분명해 보이는 ‘전쟁은 안 된다는 것’‘어떤’ 존재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간단한 일 아니겠느냐” “뻔한 일 아니겠느냐” 등)인 경우도 있지만, “꼭 이 집이어야만 했던”처럼 등장인물 멘시키의 목소리(상황 설명보다 하루키의 의도로 보이는)인 때도 있다. 심지어 “굉장히 굉장히” 같은 굉장히만으로도 굉장히 과한 표현도 있다.
에는 하루키가 2006년 심리학자 가와이 하야오와의 대담에서 언급한 커미트먼트(참여, 헌신)의 태도가 녹아들었다는 점도 지나칠 수 없다. 1937년 난징대학살과 같은 시기에 오스트리아에서 벌어진 나치의 만행은 극적 구성의 주요 장치로 기능한다. 물론 과거 역사 논쟁에 관해 하루키는 “역사에서 순수하게 흑백을 가리는 판단은 있을 수 없다”는 소신을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전쟁은 안 된다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사실 이것만으로 충분하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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