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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서양 고전’을 다시 읽다

오스트리아 작가 아우구스테 레히너가 쓴 고전 5권 <일리아스> 외
등록 2017-10-04 10:23 수정 2020-05-03 04:28
<일리아스> 호메로스·아우구스테 레히너 지음/ 김은애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 1만3천원

<일리아스> 호메로스·아우구스테 레히너 지음/ 김은애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 1만3천원

어렴풋한 옛 추억 속, ‘서양 고전’ 하면 떠오르는 것은 1974년 초판이 공개된 금성출판사의 30권짜리 ‘칼라명작 소년소녀 세계문학’ 전집이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삽화가 포함된 이 문학 전집을 통해 어린 시절 등 온갖 서양 고전소설을 마음껏 읽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를 만든 ‘팔 할’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이 문학 전집을 통해 접했던 다양한 소설들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 전집을 기억하는 40대 이상 독자라면 공감하겠지만, 마땅한 어린이용 도서가 부족했던 1970~80년대 이 소설집은 한국 사회에 쏟아진 ‘벼락같은 축복’이었다(그러나 이 전집은 일본 쇼가쿠칸의 ‘올 칼라판 세계 동화’의 카피본이었다).

손에서 놓기 힘든 그의 작품

오스트리아의 대표적 청소년문학 작가인 아우구스테 레히너(1905~2000)의 대표작 5권을 한데 묶은 문학과지성사의 연속 기획물을 보며 느낀 기분도 비슷했다. 이 기획물엔 많은 사람이 알고는 있지만 제대로 읽을 기회가 없었던 서양 고전 호메로스의 와 , 로마의 위대한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 게르만 민족 최고의 대서사시라 불리는 등 다섯 작품이 포함돼 있다.

이 연속 기획물은 원전이 아닌 오스트리아의 청소년문학가 레히너가 청소년을 위해 독일어로 각색한 작품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레히너는 인스브루크에서 태어나 인스브루크대학에서 철학과 역사학을 전공했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망한 뒤 본격적으로 청소년문학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연속 기획물의 대부분을 번역한 김은애씨는 각 권 마지막에 달린 ‘옮긴이 해설’에서 레히너가 쓴 책은 “독일어권에서만 발행 부수가 수백만 부가 넘으며, 현재까지도 유럽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청소년 도서로 꼽히고 있다”고 설명했다.

원작보다 정확하고 간명하게

이 책이 한국 독자들과 만난 계기가 흥미롭다. 김씨에게 번역을 권한 것은 은사인 독일 마인츠대학의 고전어 전공 교수 안드레라스 슈피라였다. “난 고전어 전공 교수이고 수업 시간에 고전어로 된 원전들을 학생들과 함께 강독한다. 그러나 작품 전체를 다 읽혀야 할 때에는 학생들에게 레히너의 책들을 추천한다. 한국 독자에게 꼭 소개됐으면 한다. 그의 작품들은 원작의 내용이나 뉘앙스를 해치지 않으면서 적절한 분량과 문체로 원작 이상의 감동을 준다. 유일한 단점은 한번 손에 잡으면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손에서 놓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레히너 각색본의 특징은 뭘까. 의 클라이맥스는 사랑하는 헥토르를 허무하게 잃은 트로이의 늙은 왕 프리아모스가 아들을 살해한 아킬레우스의 막사를 찾아가 주검을 되돌려달라고 간청하는 부분이다. “그는 노인의 백발을 내려다보았다. 아킬레우스의 손을 꽉 움켜쥐고 있는 노인의 두 손이 심하게 떨렸다. (중략) 바로 그 순간 아킬레우스의 마음을 굳게 닫고 있던 빗장이 풀렸다. 커다란 동정심이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났다.” 실제 원전을 찾아보면 이 부분은 “아아, 불쌍하신 분이여! 그대는~”(, 천병희 옮김, 숨 펴냄)이라는 말로 시작하는 아킬레우스의 장광설로 구성돼 있다. 레히너는 프리아모스의 방문에 큰 감동을 받은 아킬레우스의 심경을 원작보다 정확하고 간명하게 포착해낸 것이다.

길윤형 편집장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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