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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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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다꼬, 다들 그래 뛰가야 됩니꺼

느긋하고 헐렁한 일상을 공유하는 <힘 빼기의 기술>
등록 2017-10-04 10:20 수정 2020-05-03 04:28
<힘 빼기의 기술> 김하나 지음/ 시공사 펴냄/ 1만3500원

<힘 빼기의 기술> 김하나 지음/ 시공사 펴냄/ 1만3500원

여름휴가 때 발가락이 부러졌다. 물이 고작 가슴팍에서 찰랑이는 수영장에서 가라앉지 않겠다고 버둥대다 수영장 바닥을 축구공 차듯 뻥 차버렸다. 이 모습을 김하나 작가가 봤다면 이렇게 말했겠지. ‘만다꼬, 그래 힘쓰노. 힘 빼면 물에 뜰 낀데.’

‘죽기 전에 꼭 해봐야 할’ 시리즈가 SNS에서 인기글로 떠돌고, 자기계발서는 더 힘내라고, 더 돈 벌라고, 더 공부하라고 강요하는 시대에 ‘만다꼬’를 가훈 삼아 사는 이들이 있다. 네이버 ‘세상의 모든 지식’ 등 수많은 히트 광고의 카피를 쓴 김하나는 에서 ‘만다꼬’ 정신을 바탕으로 사는 느긋하고 헐렁한 일상을 공유했다.

‘만다꼬’는 ‘뭐하러’ ‘뭐한다고’에 해당하는 경상도 사투리다. 살짝 핀잔 주는 뉘앙스엔 결연한 의지를 푹 꺾는 힘이 있다. 지은이는 어린 시절 가훈을 적어오라는 숙제에 아버지의 지시로 ‘화목’이라고 적었지만 ‘만다꼬?’가 진짜 가훈인 것 같다는 고백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유연한 일상 거드는 말랑말랑한 감정선

“나는 한동안 ‘만다꼬’가 싫었다. 내가 생활에 꼭 필요하지 않은 뭔가를 해보고 싶다고 말하면 부모님은 여지없이 ‘만다꼬?’라고 되물었다. (…) 그러나 나이가 더 들어서 독립을 하고 나니 ‘만다꼬’는 인생에 있어 중요한 질문이었다. (…) 내 안에 내재된 ‘만다꼬?’에 대한 대답을 찾으면서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 짚어보게 되는 거였다.”

남미 여행도 마찬가지였다. 자동차를 살까 고민하던 지은이는 “가만있자, 그 돈이면…?” 휴대전화도 없이, 돌아오는 항공편도 없이 떠났다. “여기까지 왔는데 거길 안 보면 안 되지” 같은 말에 “만다꼬?”라고 응수하며 ‘쿠쿠루쿠쿠 팔로마’로 유명한 카에타누 벨로주의 공연을 보러 가거나, 아르헨티나에서 스페인어 학원에 다니고(여행자가 학원이라니), 헌책방 주인과 얕은 스페인어로 농담 따먹기를 하며 뿌듯해한다. ‘사진 찍고, 명소 찍고’ 경쟁하듯 여행하지 않고, 생활자처럼 느리고 게으르게 반년을 지냈다.

말랑말랑한 감정선도 지은이의 유연한 일상을 거든다. 호기심이 많은 반려묘 티거가 외출 뒤 돌아오지 않았을 때, 어퍼컷을 치는 돌풍에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겨우 당도한 파타고니아 호수를 발견했을 때 지은이는 ‘울어버리’고 만다. 그에 반해 겁이 많은 반려묘 하쿠가 처음 자신에게 맘을 열고 그르릉거렸을 때, 말로만 듣던 이구아수 폭포를 목격했을 땐 “우와→우우와아→우우우와아아→우우우우와아아아”와 같은 ‘4단 고음’을 내지른다. 조용하고 작은 행위에 울고 들뜨는 이야말로 슬렁슬렁한 삶을 살 수 있는 법이다.

‘힘 빼는 것이 힘든’ 분도 긴장감 무장해제

책 제목은 얼핏 실용서처럼 보이지만 “멋진 낮잠을 자는 법, 걷기 좋은 길을 발견하는 법, 근사한 여행 루트를 짜는 법” 같은 건 알려주지 않는다. 그저, 시시콜콜하지만 시시하지 않은 50개의 일상을 따라가다보면, 머리를 감으려 미용실 의자에 누웠을 때 목에 ‘힘 빼는 것이 힘든’ 사람도 긴장을 풀 만하다. 책의 1부는 지은이가 기고하고 틈틈이 써놓은 수필, 2부는 남미 여행에서 지인들에게 아직 살아 있음을 신고하기 위해 블로그에 썼던 글을 추렸다.

추석 연휴가 단군 이래 최장기간이라는 호들갑을 듣고 보니 대다수의 항공 노선과 시간대는 ‘no flight’. 괜히 손가락에 불나도록 항공사 앱을 두드려대지 말고, ‘만다꼬’ 정신으로 쉼표 한번 찍어보시라. ‘만다꼬, 다들 그래 뛰가야 됩니꺼. 힘내지 말고 힘 좀 빼보입시더.’

장수경 편집3팀 기자 flying71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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