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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 관한 철학을 권함

일과 ‘나다움’에 대한 인문학적 통찰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
등록 2017-10-04 10:16 수정 2020-05-03 04:28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 강상중 지음/ 노수경 옮김/ 사계절 펴냄/ 1만2천원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 강상중 지음/ 노수경 옮김/ 사계절 펴냄/ 1만2천원

두 사람이 있다. A는 일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고 싶다. B는 일을 통한 자아실현은 애초에 실현 불가능한 환상이라고 믿는다. A는 B를 냉소주의자라며 애써 무시하고, B는 A를 ‘피터팬’(어른 아이)이라고 쉽게 비웃는다. A와 B에게 일의 의미는 서로 다르다. 둘은 생각의 접점을 찾을 수 있을까.

“제가 일을 하고 싶었던 것은 역시나 이 사회에서 ‘내가 있을 자리’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강상중 도쿄대 명예교수는 일을 ‘사회로 들어가는 입장권’이라고 규정한다. 재일한국인 최초 도쿄대 정교수라는 ‘화려한’ 이력을 보유한 올해 67살의 학자가 새삼 일의 의미를 고찰한 계기가 있다. 그는 재일조선인 2세로 1970년대 일본 주류 사회에 진입하기까지 자기 안팎의 편견과 장벽에 맞닥뜨려야 했다. 그의 경험은 2017년 일본과 한국의 청년들에게 보편적 경험이 됐다. 그는 이런 상황을 ‘일본 사회의 자이니치(재일조선인)화’라고 표현한 적 있다.

“일단 입장권부터 얻으라”

‘입장권’ 획득 다음에 또 다른 난제가 있다. “자리가 완성되면 이제는 거기에 있는 모두와 동일하지 않은 나, 자기만의 개성과 장점을 내세우기 시작합니다. …단지 입장권을 얻는 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면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는지는 상관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일을 통해서 ‘나다움’도 표현하고자 하기 때문에 어려워지는 것이지요.” ‘나다움’의 표현, 바로 A와 B가 갈라서는 지점이다. 이 시대에 ‘나다움’을 표현하며 일하는 것은 가능한가.

국제정치학자인 강 교수는 시대적 조건을 먼저 짚는다. 1990년대 일본 ‘거품 경제’의 붕괴와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고용시장을 포함한 사회 전체가 불확실성 시대로 진입했다. ‘나다움’을 표현할 여유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의 제안은 현실적이다. “나다움에 지나치게 얽매일 필요 없이 일단 한 걸음 내디뎌 입장권부터 얻으라.” 단, 주의사항이 있다. 곁눈질 않고 하나의 일에 매진하는 태도가 더 이상 미덕일 수 없는 불확실성의 시대이므로, 스스로를 하나의 영역에 100% 내맡기지 말 것.

그렇다고 이것저것 다 하라는 뜻은 아니다. 강 교수는 ‘자기실현 권하는 사회’에서 “지엽적인 부분에서 필사적으로 겨루고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보자는 욕심은 스스로를 더욱 궁지로 몰아넣을 뿐”이라고 말한다.

‘나다움’을 표현, 우회로는 없다

결론은 다소 원론적이다. 그 어려운 길, ‘나다움’을 표현하는 데 우회로는 없다. 강 교수가 ‘자연스러움’이라고 표현하는 ‘나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이 시작이다. 스스로에게 목적의식과 뜻이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 그는 ‘자연스러운’ 내면의 동기와 가치를 찾는 과정에서 인문지식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인문학은 인간이 추구하는 의미와 목적의식을 다루기 때문이다.

강 교수가 지은 의 원제는 ‘역경으로부터의 시고토학(일에 관한 철학)’이다. NHK 교육방송 프로그램 에 강 교수가 출연해 풀어낸 이야기를 엮었다. A와 B가 정독한다면, 합의에 이르진 못해도 상대의 현실감각과 욕망은 인정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바야흐로 ‘일’이 없어 ‘일에 관한 철학’이 필요한 시대다.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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