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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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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난 혼자 ‘이시다’

서울에서 홀로 사는 20대 여성의 삶 <혼자를 기르는 법>
등록 2017-10-03 00:27 수정 2020-05-03 04:28
<혼자를 기르는 법 1> 김정연 글·그림/ 창비 펴냄/ 1만6천원

<혼자를 기르는 법 1> 김정연 글·그림/ 창비 펴냄/ 1만6천원

20대 사회초년생 이시다는 서울에서 혼자 산다. 작은 인테리어 회사에 다니는 그는 “‘1일 작업 8시간’ 중장비보다 오래 일”한다. 피곤에 찌들어 집에 돌아온 뒤 햄스터 ‘쥐윤발’을 돌본다. 그는 읊조린다. “견딜 만큼은 불행해도 괜찮은가봐.”

김정연 작가의 만화 은 ‘1인 가구’ 이시다를 통해 도시 속 ‘혼자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2015년 12월부터 포털 사이트 다음 웹툰에 연재된 만화는 현재를 살아가는 쓸쓸한 청춘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6년 ‘오늘의 우리만화상’을 받았다.

팍팍한 도시 생활의 건조함

은 흑백톤의 그림체와 냉소적인 대사로 도시 독립생활자의 삶을 담아낸다. 시다의 아버지는 ‘훌륭한 분이시다, 귀한 몸이시다’의 ‘이시다’를 따 이름을 지었다. 그러나 실상의 ‘시다’는 ‘시다바리’로 산다. 20대 무산자 여성의 도시 삶은 건조하고 서늘하다. 그 밑바탕에는 어려운 사회 상황에서 포기할 것이 많아진 ‘N포 세대’ 청년의 정서가 깔려 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돈을 모아도 부모 도움 없이는 평생 집 한 채 마련할 수 없고, 아무리 열심히 공부하고 스펙을 쌓아도 원하는 일을 하긴 쉽지 않다.

시다처럼 20대 삶을 사는 김 작가는 현재 주거문제, 노동문제를 겪는 청년으로서 느끼는 “사회 시스템에 대한 불만족” 때문에 이 만화를 그리게 됐다. 20대 여성인 작가 자신이 이 시대의 또래 여성 이야기를 그린 셈이다. 그만큼 만화에는 작가가 현실에서 경험했을 만한 에피소드가 넘쳐난다.

만화는 20대 여성의 독립과 성장 이야기이다. 가족과 함께 사는 것이 팝업창이 끊임없이 뜨는 사이트를 시작페이지로 설정한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을 때 혼자 살기로 결심한 이야기, “자정을 넘긴 딸들만이 아는” 골목길에서 성추행을 당할 뻔한 일 등을 들려준다. 독립 뒤 시다는 소동물 ‘쥐윤발’을 키우는 경험을 통해 자신의 삶과 주변 사람들로 시선을 확장해간다.

만화 속 앵글은 위에서 아래를 보여준다. 김 작가가 리빙박스 안 햄스터를 보는 구도다. 의도된 시선으로 찬찬히 만화를 들여다보면, 120리터 플라스틱 리빙박스 안에 있는 햄스터 쥐윤발과 자신의 모습을 비교하는 시다를 볼 때 울컥하게 된다. 기침 소리가 들릴 정도로 다닥다닥 붙은 고시원에 살다 작은 원룸으로 옮긴 시다는 계속되는 야근과 낮은 임금을 감수한다. 눈앞에 닥친 삶을 살아내다보니, 더 나은 삶을 꿈꾸는 게 어려워진다. 김 작가는 시다를 이렇게 그렸다. “공간 꾸미기를 좋아하고 취향이 분명한 시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 내 것은 없고 무언가 쌓이는 것도 없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걱정한다.”

상자 안 햄스터처럼

무심한 듯 내뱉는 이시다의 독백은 슬프고도 서늘하다. “전 저의 인생이 필름 없는 카메라 앞에서 취하는 포즈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제가 이 땅에 태어났을 때 이미 모든 것이 끝나 있었습니다.” “오늘도 모두가 치사량까진 아닌 밤을 넘기고 있습니다.” 그런 그를 위로하는 건 따뜻한 코코아와 백허그 해주는 카디건.

그래도 이시다는 집에 돌아와 스스로 자신을 길러낸다. 그렇게 오늘을 꿋꿋하게 살아낸다. “개인의 삶이란 결국 자기 스스로를 잘 운용해나가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오늘의 내가 매일의 승리를 쟁취하는 편이 좀더 나은 삶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든 감정은 오늘의 나만이 지니고 있으니까요.”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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