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드는 일을 하다보니 종종 ‘이 책은 잘 만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잘 만든 것 같다’는 건 단순히 ‘좋다’ ‘재밌다’ ‘예쁘다’라는 게 아니라 책이 전하려는 내용과 그 책의 형식(제목·카피·디자인·장정 등)이 조화를 이룬 것처럼 보인다는 뜻에 가깝다. 무언가 전하려는 메시지를 위해 그걸 담은 여러 요소가 일사불란하게 조직된 느낌이랄까? 물론 이 경우를 일컬어 ‘잘 만들었다’고 하는 건 그렇게 만들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어떨 땐 책의 여러 요소가 충돌하고 어딘가 균형을 이루지 못하는 모습이 더 흥미롭기도 하다.
등으로 인기 작가가 된 카피라이터 김민철의 첫 책 도 내게 그런 책이다. 부제는 ‘아이디어가 진화하는 회의의 기술’, 띠지 메인 카피는 ‘박웅현과 TBWA\KOREA의 100억짜리 아이디어는 어디서 오는가?’, 띠지 서브 카피는 ‘세상의 모든 회의를 위한 회의 제대로 하는 법!’ 전형적인 비즈니스 실용서의 느낌이다. 그런데 출판사를 보니 사이언스북스! 과학서 분야의 독보적 존재감을 가진 출판사가 이런 책을?
의문을 갖고 책을 펼쳐봤다. 곧바로 박웅현 크리에이티브디렉터와 장대익 교수의 추천사가 나온다. 흥미롭게도 추천사와 함께 추천자의 프로필 사진이 컬러로 한쪽 꽉 차게 들어 있다. 내용을 보니 장대익 교수가 ‘박웅현팀’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고 그 팀의 회의록 담당자가 이 책의 저자다. 진화학 분야에서 주목받는 학자인 장대익 교수라면 사이언스북스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사이언스북스-장대익-박웅현-김민철. ‘아하, 그런 연결고리를 통해 이 책이 이 출판사에서 나왔겠군!’
이어 본격적으로 저자의 글이 펼쳐진다. 책은 ‘SK텔레콤: 생활의 중심’ ‘LG엑스캔버스: 엑스캔버스하다’ ‘SK브로드밴드: See the Unseen’ ‘대림 e편한세상: 진심이 짓는다’, 네 개의 프로젝트가 어떻게 진행됐는지 흥미진진하게 전한다. 그런데 다 읽고 나니 실용서 느낌은 아니었다. 굳이 장르를 말하면 ‘메모어’(Memoir·서구에선 굉장히 인기 있는 장르다. 그러나 직역해서 ‘회고록’이라고 하면 뭔가 다른 느낌이 된다)라고 해야 할까? 각 편은 기승전결 구조이고 주요 등장인물의 캐릭터도 매력적이다. 그래서 소설이나 드라마를 보는 듯했다. 단박에 ‘회의의 기술’이나 ‘100억짜리 아이디어’를 손에 넣기는 어려웠지만, 광고회사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최고의 크리에이티브를 자랑하는 팀은 어떤 사람들로 구성돼 일을 진행하는지 생생히 엿볼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더 바랄 게 없었다.
과학 전문 출판사, 광고회사를 배경으로 한 흥미로운 드라마 같은 원고, 100억짜리 아이디어가 나오는 회의의 기술을 전해주겠다는 표지 등에서 느껴지는 전략. 어쩌면 이 묘한 부조화 때문에 내가 이 책을 더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이 책을 어떤 콘셉트로 ‘포장’해야 하는지 갑론을박했을 편집회의 광경을 상상하며 미소짓는다.
정회엽 한겨레출판 인문팀장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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