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책방을 살릴 길은 무엇일까.’
서울 노원구에 자리한 동네책방 ‘51페이지’의 김종원 대표와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가 올해 초부터 머리를 맞댔다. 수많은 대화를 통해 나온 아이디어는 ‘동네책방에서만 파는 책’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대형서점과 인터넷서점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판매 관행을 근본적으로 뒤바꾸려는 시도였다. 김 대표는 함께할 동네책방지기를 모았고, 민음사 대표였던 장 대표는 민음사에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생존을 위한 절박함에서 나온 아이디어를 통해 특별한 책이 출간됐다. 지난 7월 출간된 ‘민음쏜살X동네서점 에디션’이다. 이 기획의 첫 성과물은 김승옥의 과 다자이 오사무의 이다. 현재 두 책은 동네서점에서만 살 수 있다. 책을 판매하는 동네서점은 전국 170곳에 이른다.
동네책방에서만 파는 책‘걱정 반 기대 반’으로 시작한 동네책방 특별판 프로젝트는 대성공이다. 조아란 민음사 콘텐츠기획팀장은 “1쇄 2천 부를 찍었고 한 달 사이 3쇄 4천 부를 찍었다. 동네서점에서만 팔았는데도 다른 쏜살문고 시리즈와 비교해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민음사는 앞으로도 동네책방과 함께하는 기획을 이어갈 예정이다.
대형 출판사 문학동네도 동네책방과 손을 잡았다. 김애란의 , 무라카미 하루키의 등을 출간하면서 동네서점을 통해 예약판매를 받았다. 이전에는 인터넷서점을 중심으로 예약판매를 했다.
대형서점과 인터넷서점에 밀려 설 자리를 잃어가던 동네책방의 부흥기가 온 걸까. 한동안 급격히 감소하던 동네책방 수가 최근 1~2년 사이 반등에 성공했다. 계간 을 발행하는 애플리케이션(앱) 개발업체 ‘퍼니플랜’의 전국 동네서점 현황 조사에 따르면, 2015년 9월1일부터 2017년 7월31일까지 동네서점 277곳이 새로 문을 열었다. 이 중 20곳(7.2%)이 문을 닫아 현재 257곳이 운영 중이다. 통계에 잡힌 서점 가운데 올해 개점한 동네서점은 31곳이다. 일주일에 1곳씩 동네서점이 새로 생겨난 것이다.
술 파는 서점, 고양이 전문 서점새롭게 문을 연 동네책방은 살아남기 위해 다양한 변신을 시도했다. 소박하고 아날로그적인 분위기가 풍기지만 참고서를 팔던 옛날 서점과는 다르다. 흐름을 주도하는 건 술 파는 서점 ‘북바이북’, 그림책 전문 서점 ‘책방 피노키오’, 추리소설 전문 서점 ‘미스터리 유니온’, 고양이 전문 서점 ‘슈뢰딩거’ 등이다. 취향을 중요하게 여기는 20∼30대가 동네책방의 주 고객층이다.
동네책방은 한발 더 나아가 각 지역의 ‘문화·소통 거점 공간’ 구실도 톡톡히 한다. 대형서점에선 보기 어려운 다양한 독립출판 서적을 만나는 것은 물론 편안한 쉼터이자 독서모임, 낭독회, 저자와의 만남 등이 열리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장은수 대표는 “이제 서점은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공간이 되었다. 서점에서 취향이 같은 친구를 만나고 서점 주인과 책 이야기를 나누며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즐긴다”고 말했다.
지역주민과 스킨십을 늘려라‘51페이지’의 김종원 대표는 “지역주민이나 손님들과 ‘스킨십’을 늘리는 기획을 하는 게 책방지기의 중요 업무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일요일 아침에 모여 특별한 주제 없이 각자 고민을 말하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 모임 ‘아주 특별한 물음표’, 특정 상황을 레고 블록으로 표현하는 모임 등을 이끌고 있다. 지역 도서관과 협력하는 프로그램도 진행 중이다.
물론 현실은 녹록지 않다. 상당수의 책방이 경영난을 겪다 1∼2년 사이에 사라진다. 영세 자본으로 출발한 동네책방은 출판시장에 불황이 오면 직격탄을 맞는다. 장은수 대표는 “동네책방을 지원하는 공적 시스템이 필요하다. 독립서점들도 지역 공동체와 다양한 연대를 모색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 서점원이 쓴 책 에서도 ‘서점의 미래’를 지역과 연대에서 찾았다. “지역과 책의 접점으로 존재할 수 있다면 서점의 필요성은 확실해진다.” 독서 문화의 실핏줄인 동네서점은 변신에 성공할 수 있을까.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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