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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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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클·3호선, 있어줘서 고마워

20년을 살아낸 두 인디 전설의 합동공연…

따로 또 같이 앞으로도 잘해보자
등록 2017-07-26 13:56 수정 2020-05-02 19:28
대표적 인디밴드인 허클베리핀과 3호선 버터플라이가 7월15일 첫 합동공연을 했다. 그들은 여전했고, 앞으로도 여전할 것이다. 하이람 피스키텔 제공

대표적 인디밴드인 허클베리핀과 3호선 버터플라이가 7월15일 첫 합동공연을 했다. 그들은 여전했고, 앞으로도 여전할 것이다. 하이람 피스키텔 제공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7월15일 저녁, 서울 이태원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 공연장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한국 인디 음악계를 대표하는 두 밴드 허클베리핀과 3호선 버터플라이의 합동공연을 보러 온 이들이었다. 두 밴드의 결성 이후 활동 햇수를 더하면 38년. 홍익대 앞에서 활동한 지 각각 20년, 18년 된 두 밴드가 함께 무대에 선 건 놀랍게도 이번이 처음이다.

스무 살 허클베리핀·열여덟 3호선 버터플라이

허클베리핀은 1997년 이기용(기타·보컬), 남상아(보컬·기타), 김상우(드럼)로 결성됐다. 이듬해인 1998년 발표한 데뷔음반 은 깊고 어두운 내면을 때론 서정적으로 때론 거친 분노로 표출한 명반으로 꼽힌다. 하지만 1998년 겨울 공연을 마지막으로 멤버들은 갈라섰다. 이후 이기용은 이소영(보컬·기타), 김윤태(드럼)를 받아들여 밴드를 재편했고 2001년 2집 , 2004년 3집 등 한국 대중음악사에 남을 명반을 줄줄이 발표했다. 허클베리핀은 현재 이기용, 이소영, 성장규(기타)로 활동하고 있다.

허클베리핀을 나온 남상아, 김상우는 성기완(기타), 박현준(베이스)과 함께 1999년 3호선 버터플라이를 결성했다. 멤버들의 집이 모두 지하철 3호선 역 근처여서 정한 이름이었다. 2000년 데뷔음반 (Self-Titled Obsession)을 발표했고, 2002년에는 드라마 OST에 참여하며 대중에게 이름을 널리 알렸다. 2016년 주축 멤버인 성기완이 밴드를 나가 현재 남상아, 김남윤(베이스), 서현정(드럼)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렇게 간단히 쓰고 보니 두 밴드 모두 순탄하게 활동해온 것 같지만, 그럴 리 없다. 허클베리핀은 자체 레이블 ‘샤’를 만들고 홍대 앞 상수동에 같은 이름의 음악바도 냈다. 한국에서 인디 밴드가 오롯이 음악만 하며 산다는 건 판타지와도 같았다. 음악바 ‘샤’가 나름 입소문을 타고 자리잡을 즈음 폭등하는 임대료를 감당하기 버거워졌다. 인근 연남동으로 옮겼지만 근심, 걱정은 끊이지 않았다.

음악을 위해 살아남았다

서울에서의 팍팍한 삶에 환멸을 느낀 이기용은 2014년 홀연히 제주도로 갔다. 하늘과 바다가 아름다운 김녕마을에서 펜션을 임대해 운영하기로 했다. 가족을 서울에 남기고 홀로 제주로 간 그는 펜션 안에 설치한 컨테이너에서 지냈다. 비가 새고 거센 바람에 흔들리는 그곳에서 지내며 그는 불안한 삶에 대한 인식을 점차 바꿔나갔다. 곧 친구인 영화감독 최창환이 제주로 따라 내려왔다. 요리 실력도 빼어난 최 감독은 펜션에서 식당 ‘샤키친’을 열어 이기용과 펜션 ‘샤스테이’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이젠 허클베리핀의 보컬 이소영과 키보드를 연주하며 매니저 구실도 하는 정나리까지 제주도에 정착했다. 성산일출봉 근처에 터전을 잡은 이들은 자동차로 30분 거리인 샤스테이를 수시로 오간다. 이들의 합류로 샤스테이 지하에 공연장 ‘샤스페이스’를 만들고 정기 공연을 할 수 있게 됐다. 여름철엔 펜션 운영으로 한창 바쁘지만, 가을이 되면 새 음반 작업에 박차를 가해 내년 초엔 6집을 내놓으려 한다.

3호선 버터플라이는 그동안 수많은 멤버가 거쳐갔다. 오랫동안 밴드를 이끌어온 성기완을 비롯해 박현준, 김규형, 김상우, 휘루, 손경호, 최창우, 이호진 등이 한때 몸담았다 떠나갔다. 꽤 긴 세월 동력 잃고 활동을 중단한 때도 있었다. 그래도 3호선 버터플라이는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왔다. 올 초 무려 5년 만에 발표한 정규음반 5집 (Divided By Zero)는 이들의 여전한 존재감을 증명해냈다. 기존 색깔과 달라진 사운드로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이번 합동공연은 허클베리핀의 제안으로 이뤄졌다. 앞으로 다른 밴드와 다양한 합동공연 시리즈를 펼치기로 마음먹은 이기용은 ‘첫 파트너는 무조건 3호선 버터플라이여야 한다’고 진작부터 점찍어두었다. “상아랑 허클베리핀 1집 활동도 같이 했고, 데뷔 시기와 음악적 성향이 비슷한 두 밴드가 늘 함께 거론됐는데 이상하게도 같이 공연한 적이 한 번도 없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 무조건 함께하자고 결심했죠.”

합동공연은 크게 세 대목으로 진행됐다. 먼저 3호선 버터플라이가 1시간 동안 자신들의 무대를 선보였다. 이후 허클베리핀이 1시간 동안 공연했다. 두 밴드가 각자 자신만의 곡들을 들려주고 끝내긴 아쉬웠을 터다. 마지막 순서에서 두 밴드가 함께 무대에 섰다. 허클베리핀의 이기용(기타), 이소영(보컬), 성장규(기타)와 3호선 버터플라이의 남상아(보컬·기타), 김남윤(베이스), 서현정(드럼)이 애초 한 밴드였던 것처럼 호흡을 맞췄다. 그렇게 한 몸이 된 두 밴드는 허클베리핀의 곡 (I Know), 와 3호선 버터플라이의 곡 를 합주했다. 그러고는 무대 뒤로 사라졌다.

는 죽였다

그들을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 객석에선 “앙코르”를 외쳤고, 곧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연주한 곡은 . 남상아가 허클베리핀에 몸담은 시절 발표한 1집의 마지막 수록곡이었다. 남상아가 1998년 겨울 허클베리핀에서 마지막 공연을 했던 무대의 마지막 곡이기도 했다. 바로 그 곡이 19년 만에 성사된 두 밴드의 합동공연 마지막을 장식했다.

“더렵혀진 거리를/ 헤매이는 멋진 청년/ 주머니 속 송곳은/ 어딜 향해 있는 거야/ 자신 있게 말해봐/ 충분히 난 깨달았어/ 태양은 떠올라/ 우리의 지도를 그릴 것”

연주 도중 기타를 든 이기용이 남상아에게 다가갔다. 둘은 마주 보고 기타를 후려갈겼다. 이기용이 오른손을 뻗어 남상아의 기타를 치기도 했다. 이어 둘은 등을 맞대고 기타를 쳤다. 마치 오랜 세월 한 무대에 서온 듯한 모습이었다.

“애초에 연출한 게 아니었어요. 그 곡을 연주하다 격렬해지면서 나도 모르게 상아에게 다가갔어요. 그렇게 마주 서서 또 등을 맞대고 연주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어요. ‘너도 나도 지금까지 비주류 음악을 해오면서 참 애 많이 썼다. 따로 또 같이 잘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잘해보자’고요. 그렇게 서로를 격려하고 싶었어요.”

공연을 마치고 뒤풀이 자리에서 남상아가 이기용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갑자기 나한테 다가와서 놀랐지만, 참 고마웠어.”

1998년 겨울의 무대와 2017년 여름의 무대를 모두 지켜본 대중음악평론가 김작가는 말했다. “그때는 처절하고 어두운 느낌이 가득했는데, 오늘은 즐거워하면서 연주하는 게 느껴졌어요. 세월이 많은 걸 바꿔놓았네요.”

서정민 씨네플레이 대표·전 대중음악 담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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