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무지개다리를 건넜지만, 내게도 고양이가 있었다. 초등학생 때 고양이와 단둘이 있을 때면 설득에 나서곤 했다. “나는 네가 인간의 말을 하는 걸 알고 있어. 나한테만 얘기해줘. 서커스를 시키거나 언론에 알리거나 하지 않을게.” 고양이는 대체로 ‘무슨 개소리냐’는 심드렁한 표정이었으나, 나는 그조차 ‘내 말을 알아듣긴 했구나’라고 해석했다. 굳은 믿음이었다.
미국 생태학자 칼 사피나가 이런 내 경험을 들으면 “이런 인간 나르시시스트!”라고 꾸짖을 것이다. 그는 (김병화 옮김, 돌베개 펴냄)에서 인간중심적 ‘마음 이론’을 정면 반박한다. 마음 이론은 인간이 자신과 타인을 분리해 인식하며 자신의 사고·믿음·의도·감정을 토대로 타인의 그것들을 추론한다고 믿는 능력을 말한다. 침팬지나 돌고래 언어 실험을 통해 이들 종이 ‘인간처럼’ 마음이 있다고 주장하는 이론도 있다.
사피나는 어째서 인간 마음을 기준으로, 특히 인간이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인 인간 언어를 기준으로 동물을 판단하느냐고 묻는다. 책은 저자가 코끼리·늑대·범고래를 관찰해 동물들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다른’ 방법을 깨우친 기록이다. 원제는 ‘Beyond Words’인데, ‘Beyond Human’으로 봐도 무방하다. ‘인간의 울타리에서만 생각하는 관점을 벗어나자’ ‘인간이 동물과 분리되는 고유 능력을 지녔다는 인간 예외주의를 거부하자’, 이런 주장이다.
사피나는 인간에게 다른 종이 “고등학생 때는 알고 지냈지만 이후 멀어진 친구들과 비슷하다”고 본다. 인간도 동물이다. 인간의 언어를 강요하지 않고 그들의 마음 표현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면 얼마든지 소통 가능하다. 인간이 다른 종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극단에 있다”는 것. 인간은 가장 정의로우면서 가장 잔인하다. 노아의 방주 속 동물이 현재 모두 생사가 위태로운 상황인데, 인간은 다른 종에게 노아가 아니라 홍수에 가깝다. TED 강연에 사피나의 19분짜리 발표 영상이 올라와 있다(한국어 자막도 있다). 700여 쪽에 이르는 책이 부담스러우면 영상을 먼저 볼 것을 추천한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http://bit.ly/2neDMO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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