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를 파면한다!”
2017년 3월10일 오전 11시22분,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대통령 탄핵 인용 선고가 떨어졌다. 일순 서울 광화문광장은 환호에 휩싸였다. 세월호 유가족과 해고노동자들은 물론, 박근혜 퇴진과 시민정부 구성을 위한 예술행동위원회와 광화문 캠핑촌 식구들은 얼싸안았다. 이해성 ‘광장극장 블랙텐트’ 극장장은 “당연한 일”이라며 주먹을 쥐며 기뻐했다. 송경동 시인은 “담담하다”면서도 말을 잇지 못했다. 조재현 광장극장 블랙텐트 운영위원은 “세월호 아이들의 힘으로 탄핵까지 왔다”고 말했다.
“세월호 아이들의 힘으로 탄핵까지 왔다”3개월 전 한겨울 고추바람이 맵차던 1월7일 아침, 광화문광장에 70여 명이 모여들었다. 문화예술인 캠핑촌민, 콜트콜텍·유성기업·기륭전자 해고노동자 등등. 오후 5시까지 뚝딱뚝딱! 10시간의 힘겨운 작업 끝에, 이순신 장군 동상 뒤에 천막극장이 우뚝 솟았다. 폭 8m, 길이 18m, 높이 5.5m의 철골 구조물 위에 진녹색 천막을 덮었다.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맞서, 문화예술계가 만든 ‘광장극장 블랙텐트’였다. 현수막은 선언한다. ‘빼앗긴 극장, 여기 다시 세우다’.
탄핵 국면의 맨 앞, 동시대 현실의 맨 앞에 광장극장 블랙텐트가 있었다. 한겨울 찬바람에도 아랑곳없이 새 시대에 대한 시민들의 열망은 계속됐고, 광장극장 블랙텐트는 촛불의 바다에 뜬 한 척의 돛단배였다. 주중에는 연극·무용·음악·마임 공연이, 주말에는 캠핑촌 자체적으로 다양한 퍼포먼스를 벌였다.
1월16일 극단 고래의 를 시작으로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의 공연, 등 마임 릴레이 공연, 드림플레이 테제21의 , 그리고 등의 음악 공연과 영화 상영이 이어졌다. 추위와 도심의 소음이 파고드는 천막극장임에도 많은 시민이 찾아와 뜨거운 격려를 보냈다.
정권의 눈치를 보는 공공극장이 애써 외면한 세월호는 물론 동시대의 삶과 고통의 여러 모습들은 비가 새고 바람이 부는 광장극장을 통해 시민과 만났다. 2월과 3월에도 연극과 무용 공연이 이어졌다. 그로부터 3개월이 훌쩍 지났다.
탄핵 인용을 하루 앞둔 3월9일, 석 달 이상 계속된 광장극장 블랙텐트의 공식 공연이 막을 내렸다. 블랙텐트 운영위원들은 눈물을 글썽였다. 또 웃었다. 광장의 예술인들은 3월13일부터 시작하는 새로운 주에는 일단 끝장토론을 하며 추가로 ‘마무리 퍼포먼스’를 벌일지 논의 중이다.
“연극인생의 터닝포인트”앞서 3월7일 밤 10시, 광장이 휜히 내려다보이는 3층 커피전문점에서 운영위원회가 열렸다. 운영위는 갑론을박 끝에 다음날 새벽 1시까지 이어졌다. 100일 가까이 블랙텐트를 큰 사고 없이 잘 꾸려냈다. 의견이 엇갈리면 토론을 통해 만장일치를 끌어내고, 그래도 안 되면 다수결로 의사를 결정했다. 운영위원은 이해성 극장장을 비롯해 송경동 시인, 조재현 연출, 김소연 평론가, 임인자 독립기획자, 이양구 연출, 나희경 기획자, 이정훈 마임이스트, 김성구 조명감독, 이사라 캠핑촌 프로그래머, 홍예원 배우다. 이해성 극장장을 광장에서 만났다.
“모두 다 기억에 남는 감동적 공연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윤택 연출의 이 광장에 들어온 것은 조금 다른 결이었어요. 이곳 공연에 저나 저보다 어린 친구들이 주로 참여했다면, 중견 연출가 작품이 들어오면서 폭이 넓어진 것이죠. 공연이 끝난 뒤 밖으로 나가 세월호 분향소에서 관객과 배우가 함께 절을 했잖아요. 광장극장의 의미를 그 행위 하나로 다 설명할 수 있었던 거죠. 1천 일 넘게 천막을 치고 싸워온 유가족에게 위안이 됐습니다. 특히 세월호 가족극단이 광장에서 공연했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였어요. 공공극장이 풀지 못한 동시대의 가장 큰 비극과 현실을 광장극장이 껴안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광장극장 블랙텐트는 처음부터 반대에 부딪혔다.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텐트를 설치하기 이틀 전인 1월5일에야 설치 최종 결론이 났거든요. 퇴진행동과 캠핑촌 식구들까지 반대했어요. 반대 논리는 다양했죠. 텐트가 너무 커서 촛불집회를 가린다며, 열린 광장에 폐쇄된 텐트가 웬 말이냐며, 일단 설치하면 운영이 어려울 거라며, 관객이 들지 않으면 어쩔 거냐며. 예술인들을 주축으로 설득에 나섰지요.”
일단 결론이 나자 그다음은 일사천리였다. 이튿날인 1월6일 아침 7시, 텐트가 있는 경북 청송으로 출발했다. 폐교를 연극공간으로 쓰는 나무닭움직임연구소 장소익 선생에게서 텐트를 받아 7일 아침 7시부터 광화문광장에 텐트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극비였다. 경찰에 알려지면 설치도 하기 전에 압수당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광장은 예술가들을 훌쩍 성장하게 했다. 광장의 맵찬 비바람은 머리로만 고민했던 그를 호되게 후려쳤다. “공연 전 노동자 한 분씩 나와 발언을 합니다.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자리였습니다. 극장과 노동이 광장에서 극적으로 만나 손을 잡는 소중한 경험이었어요. 제가 광장에서 텐트 생활을 한 게 3월10일로 100일입니다. 이번 광장 체험은 연극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됐습니다. 세월호 가족, 노동자와 만나면서 관념에 머물렀던 의식이 이제 몸속으로 들어왔습니다. 출강 중인 청주대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도 도움이 될 겁니다.”
가슴속에 남을 뜨거운 연대그런데 극장이 없어진다니 서운하고 쓸쓸하기조차 하다. “이 극장이 없어지더라도 블랙리스트에 맞서 싸운 블랙텐트의 가치와 정신은 대학로나 우리 생활 속에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블랙텐트를 통해 느꼈던 뜨거운 연대는 물리적이든 정신적이든 연극인을 비롯한 문화예술인의 가슴속에 남을 겁니다.”
블랙텐트의 모태가 된 것은 젊은 연극인 모임 ‘대학로엑스(X)포럼’이다. 이들은 2014년 서울연극제 대관 심사 탈락에 항의하고 이어 2015년 문화예술인 검열 사태에 저항했으며, 마침내 2016년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를 정조준했다. 지난해 12월12일 문화예술인들은 박영수 특별검사 사무실 앞에서 ‘블랙리스트 고발 회견’을 열어 블랙리스트 사태의 철저한 수사를 요구했다. 이들의 투쟁은 대통령 탄핵 인용과 김종덕·조윤선 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구속 등으로 이어졌다.
손준현 대중문화팀 기자 dust@hani.co.kr▶http://bit.ly/2neDMO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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