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29일 토요일, 시민들이 광장에 모였다. 바람이 차고 거세질수록 촛불은 몸집을 불리고 거대해졌다. 환하게 타오른 광장에서 누구는 열망을 보고, 변화를 기대하고, 위안을 얻고, 과거를 곱씹었다. 그리고 그 장소와 시간이 훗날 역사책에 2016년을 기록할 한 장면으로 새겨지리라는 것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2016년 가장 극적인 토요일의 풍경들을 직접 추려서 사진집을 만들자고 뭉친 이들이 있다. 신문과 방송 뉴스에 나온 보도사진이 아닌, 같은 마음으로 한 장소에 모인 당사자들이 직접 기록한 사진들을 정리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한다. 김정인(29), 류소현(27), 손영주(27), 조순영(37), 조아름(26)씨가 그들이다.
<font size="4"><font color="#C21A1A"> 과 손잡고 스토리펀딩에 연재</font></font>팀 이름이 있느냐고 묻자, “그냥 친구들”이라고 대답했다. “건너 건너 알게 된 사이”라고 했는데 자세히 들어보니 정말 그렇다. 미국 드라마 팬으로, 대학 동기로, 친자매 사이로, 친구의 친구로 엮인 이들의 관계는 즐겁고 느슨하게 이어진 연대다. “굳이 팀 이름을 붙이자면 카카오톡 단체방 이름인 ‘당근농장’”이라고 했다.
“채찍과 당근의 그 당근이에요. 채찍만 가득한 더러운 세상, 우리끼린 당근만 주면서 살자, 이런 의미입니다. 칭찬하고 띄워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서요. 정확하고 엄밀한 칭찬에서 의욕과 동력을 얻거든요.” 정인씨가 말했다. 순영씨는 손발이 잘 맞는 멤버들을 ‘당근즈’라고 불렀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고 여전히 촛불이 이어지던 어느 날, 정인씨가 동생 아름씨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촛불 사진집을 만들면 재미있지 않을까?” 자매인 이들은 세월호 1주기 때 시민들이 온·오프라인으로 보낸 편지를 엮은 ‘리멤버레터’라는 편지집을 만들어 유가족에게 304권을 전달한 프로젝트를 함께했다. 아름씨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고 곧장 당근농장 카톡방에 같은 질문을 던졌다. “하자, 하자” 정인씨가 부추겼다(정인씨는 팀 내에서 “불쏘시개 역할을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책이 펼쳐졌을 때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사진집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나도 저곳에 있었다는 것, 희망을 발견했다는 것, 그것을 잊지 않게 만드는 책”을 갖고 싶었다. “우리가 갖고 싶다면 그날, 그 장소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그럴 것”이라는 믿음도 있었다. 그날 사람들이 찍은 사진을 모아서 펼쳐놓으면 어떤 마음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다시 보고, 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므로 굳이 전문가들이 찍은 사진이 아니어도 괜찮다.
여러 논의 끝에 카카오 스토리펀딩을 통해 사진을 공모하고, 제작비 마련을 위한 후원금을 모으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 과도 뜻이 맞아 프로젝트를 함께 하기로 했다. 기획과 제작은 당근농장 사람들이 맡고, 은 이들의 제작기를 2월8일부터 스토리펀딩에 연재한다.
<font size="4"><font color="#C21A1A"> 928쪽 필리버스터 책 펴내</font></font>이들에겐 이전에도 “하자 하자” “그래 그래” 하면서 시작과 끝을 맺은 작업이 있다. 아름씨를 제외한 네 사람은 이번 사진집 프로젝트에 앞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요약집 을 펴낸 적이 있다. 2016년 2월23일부터 3월2일까지 테러방지법 저지를 위해 진행된 필리버스터를 정돈해 928쪽의 책을 만들었다.
국회 홈페이지에 업로드된 필리버스터 전문을 수차례 읽고 비문과 중복된 내용을 덜어내고, 덧붙일 자료를 정리하는 작업을 한 달여 만에 뚝딱 해냈다. 제작비는 트위터에서 비슷한 뜻을 지닌 이들에게 펀딩을 받아 충당했다. 192시간의 기록을 보기 좋게 정리한 책을 만들고 싶다는 기획을 공유하자 후원자 700명이 모였다.
충만한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방대한 기록을 정리하는 작업은 중노동에 가까웠다. 너무 고돼서 “이런 책이 또 나올 일이 없길 바란다”는 후기를 썼다. 각자 생업이 있는 상태에서 밤과 주말 시간을 헐어 진행한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2월3일 저녁 8시,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이들을 만나기 전에도 사전 취재차 몇 차례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대체로 해가 지고 나서 혹은 주말에나 소통이 자유로웠다. 패션 마케터로 일하다 잠시 쉬고 있는 순영씨를 제외하고는 모두 낮에 바쁘다. 정인씨와 영주씨는 홍보 관련 일을 하고, 아름씨는 사회적기업을 운영한다. 소현씨는 학원에서 영어 강사로 일한다. 낮에는 생업에 매진하고 밤과 주말 시간을 쪼개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에너지는 어디에서 비롯했을까.
<font size="4"><font color="#C21A1A"> 아날로그를 사랑하는 어벤저스</font></font>영주씨와 정인씨는 평범한 직장인으로 일하면서 때때로 느껴지는 무력감을 떨치기 위해 자꾸만 의미 있고 재미있는 일을 도모한다.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자기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확신하기 어렵고 자신감을 잃게 되잖아요. (필리버스터 책 제작하면서) 내가 한 일이 이렇게 도움이 되었구나 생각이 들어서 좋았어요. 그게 이번 기획으로도 이어진 거고요.” 영주씨가 말했다.
무엇보다 멤버 모두 “그냥 이 풍경을 기록해두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다. “누군가의 기록이기도 하지만 저에겐 친구들과 함께 만든 추억이고 우리의 목소리이기도 해요.”(손영주)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한 덩이의 빛 뭉치로만 합쳐져버리는 건 아깝잖아요. 거리란 장소가 사실 구석구석 얼마나 다양한가요. 건물 모퉁이, 대로변, 뒷골목 식당, 지하철역 출구…. (그 공간과 시간에 쌓인) 개인의 추억이기도 해요.”(김정인) 순영씨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일단 저부터 필리버스터와 촛불집회에 대한 책을 갖고 싶었어요. 필리버스터는 ‘말’이었으니 ‘글’로 정리하고, 촛불집회는 ‘모습’이었으니 ‘사진’으로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2016년 겨울 촛불 광장을 기록하는 여러 방법 가운데 사진집을 선택한 이유는 멤버 모두 “아날로그를 좋아해서”다. 종이의 질감, 잉크 냄새, 책의 크기와 두께, 주변 풍경과 어울리는 디자인 등 모든 감각을 동원할 수 있는 매체라는 점에서 이들은 공통적으로 종이책에 애정을 갖고 있다. 압도적인 장면을 텍스트로 기록했을 때 직관적으로 다가오지 않을 것 같다는 판단도 있었다.
책은 시민들의 사진을 공모해 엮는다. 펀딩 금액에 따라 리워드(보상)로 주어지기 때문에 책의 품질을 보장하기 위해 좋은 사진을 우선 선별한다. 하지만 “참여한 시민 모두 그날, 그 장소에서 직접 보고 찍었다는 의미가 중요하므로” 최대한 많이 실어 ‘우리들의 사진첩’이란 의미를 살리기로 했다.
멤버들은 각자의 주특기를 살려 역할을 맡았다. 재미있어 하고 잘하는 부분이 절묘하게 각각 나뉘어 이 프로젝트를 위한 ‘어벤저스’처럼 보이기도 한다. 공모 요강은 국제공모전과 공모선정작 상품화를 진행한 경험이 있는 영주씨와 기업 마케팅 화보를 책임진 경험이 있는 순영씨가 맡아 정리했다. 정인씨는 전반적인 기획과 사진 취합을 맡고, 아름씨는 트렌드를 분석하고 여러 채널에 홍보하기로 했다. 전체 편집은 순영씨가, 편집디자인은 독립언론 편집장 경험이 있는 소현씨가 한다.
<font size="4"><font color="#C21A1A"> 같고도 다른 촛불의 풍경들</font></font>다섯 명이 함께 촛불집회에 나가본 적은 없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보고 느낀 촛불의 기억이 있다. 순영씨는 그곳에서 “(함께 저항하지만) 집단주의에 매몰되지 않는 개인들의 힘”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아름씨는 집회에 참여해 유쾌하게 목소리를 내던 평범한 사람들을 기억한다.
정인씨는 “지난해 11월5일 세종문화회관 옆에서 엄마와 점심 식사를 하고 카페에 앉아 있었는데 어느 순간 그 넓은 삼일대로 8차선이 환히 비더니 사람들이 하나둘 걷기 시작하고, 지하철역에서 쏟아져 나오는 인파를 마주한 기억”이 인상적이라고 했다. 수천, 수만 명의 사람들이 천천히 길을 메우던 그 순간 그는 “이번엔 잘될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현씨는 파도처럼 넘실대던 사람들과 반짝이는 세월호의 노란 리본이 마음에 각인됐다. 영주씨는 서울 광화문광장에 100만 명이 모인 날, 미국대사관 옥상에서 몇 시간 동안 광장을 지켜보던 누군가를 기억한다. “불 꺼진 대사관 옥상에서, 시민들을 촬영하는 것 같지는 않고, 광장에 나온 사람들을 하염없이 지켜보는 사람은 누구일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지금도 궁금해요.”
그들은 이런 구체적인 장면들 사이에서 패배주의와 냉소가 걷히는 모습, 희망과 낙관의 가능성, 무엇에나 질문하는 사람들, 시민사회의 다양성을 발견했다. 그래서 멤버들은 더 많은 촛불 시민들의 마음에 새겨진 장면들을 듣고, 보고 싶었다. 크게 보면 하나였지만 쪼개서 보면 천만 개인 불빛의 면면을 사진집을 통해 더 넓고 깊게 들여다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이들의 얼굴에서 일렁였다.
은 시민들의 사진을 모아 시민들이 펴내는 사진집입니다. 2016~2017년 전국 곳곳에서 촛불을 밝힌 박근혜 대통령 퇴진 집회 현장 사진을 카메라 속에 묻어두지 말고, 나눠 볼 수 있게 꺼내주세요.
공모는 2월8일부터 3월5일까지 진행되며 총 4개의 카테고리로 구분해 응모할 수 있습니다. 함께 구호를 외친 사람들, 집회 현장을 촬영하는 취재진, 집회를 마무리하는 사람들을 찍은 ‘인물’ 부문, 집회 현장에 출현한 재기발랄한 응원 문구와 유인물, 유쾌한 ‘아무말’ 깃발들을 담은 ‘깃발·유인물’ 부문, 전국 각지의 집회 현장 모습을 담은 ‘지역’ 부문, 현장 안팎을 스케치한 ‘풍경’ 부문으로 나눠 공모를 받습니다.
사진 제출과 문의 사항은 전자우편(<font color="#C21A1A">2016winterphoto@gmail.com</font>)을 통해서만 받습니다. 공모와 관련해 더 자세한 사항은 카카오 스토리펀딩 한겨레21 페이지(<font color="#C21A1A">storyfunding.daum.net/project/13199</font>)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font color="#C21A1A">http://bit.ly/1HZ0DmD</font>
카톡 선물하기▶ <font color="#C21A1A">http://bit.ly/1UELpok</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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