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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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팅커벨의 집처럼

아이 위한 요정 세상으로 가는 문

‘페어리 도어’ 해외 직구 삼매경
등록 2017-01-11 11:53 수정 2020-05-02 19:28
우리는 ‘페어리 도어’를 만들기로 했다. 요정들이 사는 문을 꼬마들 방 어딘가에 붙여주기만 하면 된다. 꼬마들이 스스로 요정과 만날 것이다.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 갈무리

우리는 ‘페어리 도어’를 만들기로 했다. 요정들이 사는 문을 꼬마들 방 어딘가에 붙여주기만 하면 된다. 꼬마들이 스스로 요정과 만날 것이다.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 갈무리

영국 잉글랜드 남서부 서머싯셔 웨이포드 숲에 수백 개의 ‘페어리 도어’(fairy door)가 실재한다. ‘페어리’는 마법을 부릴 줄 아는 요정이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에 등장하는 ‘트롤’이나 영화 의 레골라스 같은 ‘엘프’를 떠올리면 된다.

페어리 도어는 말 그대로 요정이 사는 세상과 통하는 ‘문’이다.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작은 문 모양을 만들어 나무 둥치나 아이방의 벽 같은 곳에 붙여주면 된다. 크기는 대개 손바닥만 하다. 마치 진짜 요정이 살 것처럼 원목 재질에 빨강, 초록으로 알록달록 색칠한 것이 예쁘다. 문 앞에 동화 속 요정 이름을 빌려 ‘팅커벨의 집’이나 어린아이 이름을 따 ‘재인·재아의 집’이라고 써도 좋다. 요정의 집 느낌을 디테일하게 살리려면 문 위에 지붕을 달거나, 계단을 만들면 된다. 페어리 도어 주변에 꽃 같은 걸로 조그만 동그라미를 그려 ‘페어리 링’을 만들 수도 있다. 동그라미 안은 요정들이 노는 공간인데 원래는 버섯으로 만들어야 한다.

웨이포드 숲 페어리 도어 가운데는 요정들이 놀기 좋게 주변에 그네, 미끄럼틀을 비롯해 놀이터 시설까지 갖춘 경우도 있었다. 이 때문에 당국이 요정들의 집 철거에 나서겠다고 밝혀 화제가 되었다. 어른들에게는 조금 번거로운 일이지만, 아이들은 페어리 도어를 열고 매일 요정들과 만날 것이다.

우리도 페어리 도어를 만들기로 했다.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라 해외 직구(국외 인터넷 쇼핑몰에서 직접 수입 구매)를 하기로 했다. 미국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을 보면, 우리돈 5천원부터 몇만원에 이르는 엄청난 양의 페어리 도어가 나온다. 나무 둥치 아래 진짜 있을 법한 ‘버섯 느낌’의 문을 찾고 있다. 큰아이 방에는 복층 침대 구석 어디가에 두면 좋을 것 같다. 작은아이는 초록색이 들어간 문이 좋겠다. 눈에 띌 듯 말 듯한 곳에 두면 ‘요정’과 둘째가 은밀한 비밀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착공 2개월이 지난 때, 우리 가족은 해외 직구 삼매경이다. 완공까지 한 달 반가량 남은 이즈음은 건축주들이 인터넷 쇼핑을 즐기기 좋은, 집 짓는 과정으로서는 조금 심심한 시기다. 건축 초기만 해도 매주 1개층씩 집의 뼈대가 쭉쭉 올라가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건축 후반부에는 ‘실제 사는 집’에 가깝게 내부 인테리어를 채워나가는 즐거움이 살갑다고들 한다. 그러나 완공까지 반환점을 막 지난 시점에는 건물 내부에서 바닥 온돌, 단열재, 전기공사, 내부 목구조 작업이 집중적으로 진행된다. 집의 내구성을 좌우할 중요한 과정이지만, 건축 비전문가인 이들에게는 살짝 지루한 시간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직구를 열심히 하고 있다. 페어리 도어 같은 액세서리뿐 아니라 주방에서 가스레인지 대신 쓰는 인덕션, 싱크볼, 수전, 프로젝터 같은 덩치 큰 것들도 있다. 인덕션의 경우, 냄비에 찬물을 넣은 뒤 20여 초 만에 라면을 넣을 만큼 물이 팔팔 끓는 모습에 반했다. 국내에서 수입·판매하는 것들이 수백만원에 이르는 반면, 똑같은 제품을 직구하면 배송·설치비를 포함해 60만원 정도로 해결할 수 있다.

듀플렉스 하우스를 짓는 만큼, 옆집까지 늘 2개씩 제품을 사야 한다. 직구라는 게 꽤 번거롭고 약간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지만 상당한 비용 절감이 된다고 판단했다. 싱크볼이나 수전은 국내에서 찾기 어려운 디자인들 때문에 직구를 하기로 했다. 이것들도 대개 국내 수입 판매 제품의 절반 정도 가격이다. 뼈대와 살갗만 있던 집은, 크고 작은 물건들이 채워지면서 근육을 만들어가고 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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