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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도 속고 몸도 속고

팔굽혀펴기 1분에 1개씩 늘리기 ‘너무 쉬운 것 아닌가’ 했다가 ‘의문의 연패’
등록 2016-06-03 02:01 수정 2020-05-02 19:28
운동이 끝나면 다음날 근육통을 염려해 마사지를 꼭 한다. 김완 기자

운동이 끝나면 다음날 근육통을 염려해 마사지를 꼭 한다. 김완 기자

공부는 엉덩이로 하고 운동은 머리로 한다는 말을 믿었다. 축구나 농구처럼 경기 상대가 있는 운동에서 이기려면 머리를 써야 하고, 경기 중 움직이는 센스(감각)도 결국 머리에서 나온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였을까. 웨이트트레이닝이나 조깅처럼 혼자 하는 운동에서도 머리를 쓰려고 했다. 경기 상대가 없으니 머리는 운동 자체를 이겨먹으려 했다. 예를 들어, 지금 당장 30분 운동하는 것보다는 30분 휴식을 취하는 것이 간 건강에 좋을 거라고 스스로 그럴싸한 근거를 마련한다. 갑자기 과한 운동을 하면 몸이 다칠 수 있으니 애초 30분 운동 계획을 5분 운동으로 급격히 줄인다.

그런 잔머리에 크로스핏은 ‘의문의 연패’를 안겼다. 4월19일. 하루치 운동 종목을 뜻하는 ‘와드’(WOD·Workout of the Day)가 단 하나로 정해졌다. 15분간 팔굽혀펴기 래더(ladder·사다리). 래더는 1분에 1개씩 횟수를 늘리는 운동법이다. 처음 1분 동안 팔굽혀펴기 1개, 다음 1분 동안 2개, 그다음엔 3개… 15분째엔 15개. 이날 와드를 정한 김완 디지털팀장이 운동 시작 직전 말했다. “1분에 하나만 하고 남은 시간엔 쉬면 돼.” “오늘 운동 너무 쉬운 거 아닌가?”라고 묻자, 그는 “한번 해봐”라고 가볍게 말했다.

순조로운 시작. 5초 안에 1개 하고 55초를 쉬었고, 무난히 5분을 넘겼다. 이후부턴 쉬는 시간이 좀처럼 확보되지 않았다. 낑낑대며 9개(9분째)까지 하고, 그다음부턴 나도 모르게 엎드린 채 오른쪽 허벅지로 바닥을 살짝 밀기 시작했다. 그래야 간신히 팔을 펼 수 있었다. 11개째부턴 팔이 도저히 펴지지 않았다. “5개만 더! 하나만 더!” 고함을 지르는 김 팀장도 내가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오늘 운동 실패. 크로스핏은 와드를 수행 못하면 그날 운동을 안 한 걸로 간주한다고 한다. ‘너무 쉬운 거 아니냐고나 하지 말걸.’ 등차수열 합의 공식만 기억하고 있었더라도 그리 쉽게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1+2+3+4+…15=? 120개다. 이건 운동이 아니라 ‘사기’다.

5월18일. 20년 전 중학교 운동장에서 훈련하던 레슬링부 선수들을 따라해봤다. 휴대전화 폭 정도의 고무밴드를 배에 걸고 앞으로 전력질주하는 운동이다. 한 사람이 뒤에 앉아서 고무밴드를 잡아준다. 20초 전력질주와 10초 휴식을 4세트 반복했다. 원칙대로면 8세트를 해야 하지만, 김 팀장은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며 절반만 하자고 했다. 아무 말도 쉽게 할 수 없었지만 초 단위 짧은 운동에 휴식까지 주어진 매력적인 운동처럼 보였다.

처음 해보는 운동에 반쯤 설레 전력질주. ‘허벅지를 최대한 들어올려 전력질주하라’는데 배는 땅기고 다리 힘은 점점 풀렸다. 고무밴드 탄성에 뒤로 날아갈 뻔한 걸 배와 다리 힘으로 가까스로 버텼다. 달리는 건지 걷는 건지 모르겠다는 듯 옆에선 “달려, 달려!”를 외쳤다. 달리는 20초는 너무 길고 쉬는 10초는 너무 짧았다. 4세트를 완주하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모든 걸 털린 기분이었다. 20초 전력질주를 4번 했으니, 100m 전력질주를 4번 한 꼴이다. 단 2분간의 운동이다.

크로스핏에서 20초 ‘전력’ 운동·10초 휴식 8세트 운동을 ‘타바타’(Tabata)라고 부른다. 이 운동법을 정립한 일본 체육학자 이즈미 타바타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20초 전력으로 운동하고 나면 이어 10초를 쉬는 동안 몸이 전력 운동할 때와 유사하게 작동한다는 것. 짧은 운동으로 선수의 머리를 속이고, 전력질주로 몸을 속이는 셈이다. 이제 운동할 때 생각 따윈 땅에 내려놓기로.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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