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용감한 여행자, 숨겨진 역사

미국의 트랜스젠더 운동의 이론, 역사, 정치 담은 <트랜스젠더의 역사>
등록 2016-04-09 07:45 수정 2020-05-02 19:28

한쪽에선 동전을 던졌고, 한쪽에선 도넛을 던졌다. 모두 부당한 단속을 하는 경찰을 향해 던졌다. 1950~60년대 미국에서 벌어진 일이다. 싸웠던 사실은 같지만, 한쪽은 알려진 역사가 되었고 한쪽은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았다. 1969년 미국 뉴욕의 스톤월 바를 습격한 경찰에 저항해 성소수자들이 ‘동전’을 던진 사건은 현대적 동성애자운동의 출발로 널리 알려지고 오래 기념됐다. 성소수자 운동사 1장 1절에 ‘태초에 스톤월 항쟁이 있었다’는 구절이 나온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러나 1959년 로스앤젤레스에서 벌어진 사건은 달랐다. “1959년 5월의 어느 날 밤 경찰이 쿠퍼스 도넛에 들이닥쳐 제멋대로 드랙퀸을 체포하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경찰에게 도넛을 던지는 행위로 시작해 거리에서 벌어진 싸움으로” 번졌다. 1966년 샌프란시스코 컴튼스 카페테리아에서 벌어진 저항도 ‘쿠퍼스 소동’과 다르지 않았다.

수잔 스트라이커가 (이매진 펴냄·2016)를 통해 트랜스젠더 해방의 역사로 기록하기 전까지 이런 사건들은 널리 알려지고 맥락화되지 않았다. 스톤월 항쟁은 ‘백인 남성 동성애자’ 중심의 역사였지만, ‘컴튼스 항쟁’은 트랜스젠더 등이 중심이 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옮긴 이들의 말처럼 역사는 ‘발굴’되며, ‘해석’이고, ‘경합’한다. 스트라이커는 현대 미국을 배경으로 이런 작업을 했고, 그 결실이 에 담겼다.

여기서 말하는 트랜스젠더는 태어난 성과 다른 성으로 전환하는 외과적 수술을 받은 사람만을 뜻하지 않는다. “태어날 때 지정받은 젠더를 떠나는 사람, 그 젠더를 규정하고 억제하기 위해 자기들의 문화가 구성한 경계를 가로지르는 사람”을 아우른다. 이성애적 규범에서 벗어나 젠더를 실천하는 모두의 이름이라 해도 좋겠다. 자신을 밀어내는 문화에 순응하지 않고 “떠나는” 사람은 젠더를 실천하는 여행을 하게 된다. 그 문화가 지정하는 좌석에 앉지 않아서 혼란을 부추긴다고 공권력의 괴롭힘을 당하거나 옆자리 시민에게 폭행을 당하는, 위험천만한 여행이다. 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서 기꺼이 목숨을 건 여행을 떠난 이들을 역사로 기록한다.

성소수자를 영어 약자로 LGBT(Lesbain·Gay·Bisexual·Transgender)라고 쓴다. 흔히 동성애자로 엮이는 ‘LGB’와 때로 이성애적 정체성으로 폄하당한 ‘T’가 어떻게 결합하고 갈등하고 결별하고 재결합했는지, 는 미국의 역사 안에서 해석한다. 1970~80년대의 암흑기를 거쳐 1990년대 등장한 ‘퀴어’ 개념을 통해 다시 강하게 연대하게 된 과정은 현재형으로 흥미롭다.

미국 역사를 참조해 한국의 역사를 발굴하고 해석하는 일이 남았다. 옮긴이 제이와 루인은 ‘장애-퀴어 연구 세미나’를 하면서 만난 이 책을 번역했다. 역시나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2015년 11월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가 조용한 출발을 알렸다. 가 한국의 역사를 기록하는 일의 밑절미가 될 것이라고 기대되는 이유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카카오톡에서 을 선물하세요 :) ▶ 바로가기 (모바일에서만 가능합니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