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음반 시장의 몰락과 맞물려 두각을 드러냈던 편집 음반들이 있다. 의 히트와 함께 니 이니 하는 편집 음반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했다. 이런 편집 음반의 흥행은 음반 시장 몰락의 전조였다. 농부는 굶어 죽어도 종자를 베고 죽는다는 옛말이 있다. 하지만 음반업계는 당장의 이익을 위해 자신들의 종자라 할 수 있는 음악들을 헐값에 내놓기 시작했다. 이 히트하자 후속 주자들은 한 장의 음반값에 두 장, 네 장씩 음반을 묶어 팔았다. 선곡에는 어떤 철학이나 기준도 없었다. 그저 귀에 듣기 좋은 뻔한 노래들을 엮어 팔았을 뿐이다. ‘길보드’ 리어카가 하던 일을 대형 음반사들이 시작한 것이다. 음악의 가치는 한없이 떨어졌고, MP3로 들어도 큰 차이 없는 그런 편집 음반들을 점점 사지 않게 됐다.
편집 음반. 영어로는 보통 컴필레이션 음반이라 하고, 과거 옴니버스 음반이라 부르던 시절도 있었다. 앞에서 언급한 질 낮은 컴필레이션 음반들의 범람으로 그 이미지는 무척이나 낮아졌다. 시장의 몰락 속에서 값싼 상품이라는 이미지가 박혔고 그 안의 노래들도 함께 도매금으로 싸게 넘어갔다. 이제 수십 장의 음반을 몇만원이면 살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이 한없이 가치가 낮아진 음악의 시대에 꾸준하게 양질의 음반을 만들며 컴필레이션 음반이 가진 장점과 미덕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이가 있다. 누군가에게는 교회 목사로, 누군가에게는 월드뮤직 전도사로, 또 누군가에게는 여행가로 기억될 임의진이다. 임의진이라는 이의 삶의 이력은 흥미롭다. 그는 작은 교단의 목사로 생활하다 지금은 그 무거운 옷을 벗었고, 전세계를 떠돌며 자신의 마음을 움직인 노래들을 수집해 음반에 담는다. 그렇게 십수 종의 음반이 만들어졌다.
음악 애호가들에게 처음 임의진이란 이름을 알린 건 첫 컴필레이션 음반 이었다. 이어서 연작이 발표되며 그는 믿음직한 월드뮤직 수집가로 자리할 수 있게 됐다. 음반 제목들에서 알 수 있듯 그의 선곡을 관통하는 일관된 주제는 ‘여행’이다. 스스로를 ‘떠돌이별’이라 부르는 그는 여행에 어울릴 법한 전세계 곳곳의 노래들을 모아 한 장의 음반에 수록한다. 음악 듣기를 업으로 하는 나에게도 낯선 노래들이 음반에 빼곡히 자리했지만 대부분 이내 그 노래들을 좋아하게 될 만큼 그의 선곡은 믿음직스러웠다. ‘선곡’과 ‘발견’이라는, 그동안 잊고 있던 컴필레이션 음반의 미덕을 임의진의 음반들에서 다시 발견할 수 있었고, 컴필레이션 음반을 듣는 즐거움을 다시 찾을 수 있게 됐다.
그는 국경을 넘나들었고 주제와 소재 또한 넓혀나갔다. 이 나왔고 이 나왔고 이 나왔다. 이 나왔고 이 나왔고 이 나왔다. 이 다양해진 기획 앞에서, 또 너무 자주 나오는 음반들 앞에서 습관처럼 구매하던 손길이 멀어져갔음을 고백해야겠다. 격조해진 사이 그는 국내 여행지로 눈길을 돌렸고 전남 담양을 주제로 한 을 내고 있던 참이었다. 두 번째 담양 여행을 담은 를 오랜만에 들으며 그는 여전하고 내가 변했음을 인정해야 했다.
그는 우직하게 때부터 해오던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전세계의 좋은 노래들을 발견하는 것. 그리고 그 노래들을 알맞게 음반에 담는 것. 에는 캐나다부터 미국, 영국, 아일랜드, 러시아, 노르웨이, 그리스, 포르투갈 그리고 한국까지 곳곳의 알려지지 않은 가수들의 보석 같은 노래가 가득하다. 처음 듣는 노래들이지만 한없이 편안하면서 충만함을 준다. 음반 속지에 쓰인 대로 “천천히 느리게 걷는 당신의 순례를 축복”해줄 수 있는 노래들이다. 여행길에 그의 음반 한 장이 있다면 그 여정은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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