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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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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의 청년들이 떴다!

일베적 멘털 드러내다 힘겨웠던 환경을 노래하며 동정표 얻은 블랙넛과 잉여로운 태도로 빈곤 문제의 잔인함을 내지르는 중식이 밴드의 등장에서 보는 지금, 여기 청년의 현실
등록 2015-09-05 07:08 수정 2020-05-03 04:28
<쇼미더머니 4>에서 화제의 중심이 된 래퍼 블랙넛(왼쪽), <슈퍼스타K 7>에서 주목받는 중식이 밴드. Mnet 제공, 중식이 페이스북 페이지 갈무리

<쇼미더머니 4>에서 화제의 중심이 된 래퍼 블랙넛(왼쪽), <슈퍼스타K 7>에서 주목받는 중식이 밴드. Mnet 제공, 중식이 페이스북 페이지 갈무리

지금 여기의 청년이 어떤 모습으로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떻게 고생하고 얼마나 행복하게 사는지, 우리는 알지만 모른다. 무정형의 청년들과 제한된 만남을 통해 겨우 만나고 얘기를 듣고 분석을 할 뿐이다. 정작 ‘청년 문제’를 말하지만 ‘청년 현실’은 저마다의 논리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용되기 십상이다.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처럼 애타게 청년의 현실을 알고 싶지만, 당사자의 목소리를 듣기란 쉽지 않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흔해진 지 오래돼서 피로감을 느낀 지도 오래됐다. 그렇게 시효를 다한 것처럼 보이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여전히 유용한 구석도 있다. 오디션에 도전하는 청년들의 군상을 통해 청년의 현실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비록 포장되거나 심지어 일부 조작된 이미지라 할지라도, 무작위의 청년들이 도전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은 ‘오늘날 평균적인 청년들’의 일면을 드러내는 구실을 한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보는 청년의 일면

올해로 시즌4를 맞은 엠넷의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 는 시즌을 더할수록 관심을 끌고 있다. “한국 힙합의 역사는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표현은, 해석은 다를지라도 부정하긴 어렵다. 시즌4를 맞은 화제의 중심엔 블랙넛이라는 래퍼가 있다.

블랙넛은 <쇼미더머니 4>에서 하의 탈의 퍼포먼스로 등장해 각종 논란을 일으키고 자전적 가사를 담은 <내가 할 수 있는 건>을 마지막 노래로 남겼다. Mnet 화면 갈무리, Mnet 제공

블랙넛은 <쇼미더머니 4>에서 하의 탈의 퍼포먼스로 등장해 각종 논란을 일으키고 자전적 가사를 담은 <내가 할 수 있는 건>을 마지막 노래로 남겼다. Mnet 화면 갈무리, Mnet 제공

체육관에서 벌어진 1차 오디션, 심사위원 앞에서 랩을 하다가 바지를 내리는 것으로 블랙넛은 대중에게 존재를 알렸다. 그렇게 시작된 논란은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그가 탈락하면서 뜨겁게 달아올랐다. 프로듀서 ‘버벌진트, 산이’는 경연에서 가사를 잊어버린 ‘한해’가 아니라 블랙넛을 탈락시켰다. 무대공포증이 있는 블랙넛이 선글라스를 끼고 랩을 한다는 이유였지만, 한해가 ‘버벌진트, 산이’와 같은 소속사이기 때문에 편파 판정을 했다는 혐의를 벗어나기 어려웠다. 결국 경연의 룰을 어기고 탈락자를 바꾸는 사태로 이어졌다. 블랙넛은 ‘버벌진트, 산이’의 면전에서 이들을 디스하는 랩을 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억울한 탈락과 극적인 구제를 통해 그는 반전의 기회를 얻었다.

그에게는 끝없이 일베 논란이 따라붙었다. 그가 출연 이전에 발표한 노래는 다른 래퍼에 대한 공격과 여성 비하로 얼룩져 있다. 최근 발표한 (Higher Than E-Sens)에는 “~ 마누라 껀 딱히/ 내 미래에 비하면 아스팔트 위의 껌딱지”라는 가사가 있다. 그가 이전에 썼던 이름인 ‘기형아’ 시절 발표한 랩에는 차마 인용하기도 어려운 가사가 가득하다. 성폭행, 살해, 욕설이 난무한다. ‘기형아’에서 ‘블랙넛’으로 활동 이름을 바꾸면서 정체성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그의 방송 출연 자체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시작부터 있었다.

블랙넛은 출연 중에도 끝없는 논란을 일으켰다. “어차피 우승은 송민호!”라고 그가 반복하고 관객이 따라하는 가사는 시즌4가 남길 최후의 한마디임이 확실하다. 대형 기획사 YG엔터테인먼트 소속 아이돌 그룹 ‘위너’ 멤버인 송민호는 에서 그렇게 디스당하면서 찬양되었다. 블랙넛이 자신의 외모를 드러낸 한마디는 “대중들은 몰라. 왜 양상국이 왔지?”였다.

그렇게 그는 스스로 자신의 외모와 대학 중퇴 학력을 드러내며 ‘찌질남’으로 정체화한다. 마치 ‘김치녀’를 비하하는 일베처럼 여성에 대한 비하적 시선도 숨기지 않는다. 그가 팀 배틀에서 했던 죽부인 퍼포먼스는 송민호가 이전에 했던 랩을 염두에 둔 것이라 할지라도 여성을 불쾌하게 하는 성적 묘사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그러나 하필이면 부당한 이유로 탈락의 위기에 몰렸던 것까지 겹쳐서 그의 피해자 포지션은 더욱 공고해졌다.

블랙넛의 마지막 무대는 ‘한 번의 무대로 이미지를 완전히 뒤집었다’고 할 만큼 동정표를 얻고 지지자를 늘렸다.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본 의 랩을 통해 그가 겪어온 일들이 사연을 몰랐던 이들에게 알려졌다. 왜소한 체격 탓에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던 어린 시절, 부모님이 하는 주점에서 중학교 때부터 서빙을 해야 했던 성장 과정, 골방에 틀어박혀 랩에만 몰두했던 사정을 들으며 그의 공격성이 ‘한 번에 이해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정확히 들리지 않았던 블랙넛의 가사들을 활자로 정확히 확인하는 순간에, ‘이건 아닌데, 선을 넘었군’ 같은 고민에 또다시 빠진다.

블랙넛 아닌 일베에 대한 판단 문제

그래서 차우진 대중음악평론가는 묻는다. “우리가 물어야 하는 것은 ‘블랙넛을 수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라 ‘일베란 무엇인가’ 아닌가요?” 블랙넛이 일베적 멘털의 문화적 표현이라면, 결국 그것은 일베에 대한 판단의 문제란 것이다. 블랙넛을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지는 이유도 일베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모호한 상황이 반영돼 있다. 과연 일베가 얼마나 나쁜지, 일베 사용자에게 얼마큼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풍문처럼 떠도는 일베의 실체에 대한 것만으로 판단하기에 무언가 충분치 않다는 느낌적인 느낌이 있다. ‘블랙넛이 방송에 나오는 것이 위험한가’는 일베 유저로 밝혀진 ‘KBS 기자가 뉴스를 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논란과 겹친다.

하여튼 블랙넛은 ‘공격적 찌질이’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높였다. 누가 에서 우승을 하든 시즌4의 위너는 블랙넛이 되었다. 찌질함에 바탕한 공격성을 영민하거나 영악하게 상품화한 그에게 힙합팬 일부는 “갓대웅”이라고 호응한다(그의 본명은 김대웅이다). 차우진 평론가는 블랙넛의 등장에 대해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자기 정체성과 붙어서 나온 결과물”이라며 “온라인 게시판을 통해 성장한 토착화된 문화의 등장”이라고 말했다. 블랙넛은 온라인 힙합동호회 등에 테이프에 녹음한 랩을 올리며 성장했다.

그러나 ‘기형아’ 시절에 도저히 수용하기 어려운 랩들을 쏟아낸 그에겐 제도 안에 안착하기 위한 통과의례가 필요하다. 자신의 이야기를 성찰적으로 풀어낸 을 통해 1차 관문을 통과한 것처럼 보이고, 에서 그가 퇴장하며 남긴 말은 다음의 통과의례를 예고한다. “저는 이제 다시 작업실로 찌그러져서 좋은 음악들 많이 만들고 착하게 살겠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욕설 방송을 했던 김구라가 방송에 안착하기 위해 했던 사과를 떠올리게 된다.

시즌을 거듭하며 이제는 ‘약발’이 떨어진 것으로 의심받는 엠넷 의 시즌7 첫 방송을 구원한 밴드가 있다. 서울 황학동 벼룩시장에서 3천원쯤 주고 샀을 몸뻬를 입고 등장한 중식이 밴드다. 이들이 헐렁한 셔츠를 흔들며 선보인 는 오늘의 청년 빈곤을 적나라한 가사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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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를 낳고 싶다니, 그 무슨 말이 그러니… 나는 고졸이고 너는 지방대야, 계산을 좀 해봐, 너랑 나 지금 먹고살기도 힘들어….” 오포세대의 현실을 가사에 담고 헐렁한 외모로 구현한 중식이 밴드는 ‘촌스락’(촌스러운 록음악)을 한다고 자신들을 소개했다. “애가 커서 대학에 갈 때쯤 나는 세상에 없겠지. 그때 나의 보험금 탔을 때 그 돈으로 둘이 먹고 살겠지.” 노래의 마지막 가사를 지나친 비약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섬뜩한 현실 묘사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다.

가 비판받아온 ‘사연 팔이’ 반복의 혐의를 지우긴 어려우나, 밴드의 보컬인 정중식은 생계를 위해 ‘자전거 참치 배달’을 하는 청년으로 소개됐다. 여기에 호랑이 같은 심사위원들이 평가를 하는 와중에도 집중하지 않고 딴짓을 한 태도까지 더해졌다. 이로써 ‘잉여로운 청년’ 이미지를 음악, 외모, 태도의 3종 세트로 구비한 밴드가 등장했다.

가끔 놀라울 때가 있다. 사회과학적 분석이 문화적으로 현현하는 경우다. 어언 10여 년이 지났다. ‘청년이 빈곤하다니’라는 우려가 등장하고 심화가 우려되던 시점 말이다. 우리가 상상하는 ‘오포세대’의 이미지를 총체적으로 재현한 중식이 밴드의 등장에, 인디음악에 익숙한 이들은 “뻔하다 뻔해”라고 할지 모른다. 그런 밴드가 처음이 아니고, 홍대 앞에는 널렸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전 국민 오디션’을 자처하는 를 통해 이들을 접한 이들에게 중식이 밴드는 못 보던 존재의 출현이다. 그것이 비록 밴드 장미여관의 청년 버전쯤으로 보인다 할지라도. 유자사운드밴드 멤버인 아키(이충한)는 “장미여관이 사회문제를 직설적으로 다루진 않는다”고 차이를 말했다. 중식이 밴드가 유튜브 등을 통해 발표한 노래로 세월호 참사를 연상케 하는 , 일하기 싫지만 일터로 가야만 하는 이들의 저주를 담은 도 있다.

중식이 밴드 같은 밴드는 널렸다?

이렇게 마침내 ‘헬조선’의 청년들이 브라운관에 현현하기 시작했다. 때로는 랩으로, 때로는 록으로. 사실 이들이 완전한 신인은 아니다. 중식이 밴드는 홍대 앞에서 활동해왔고, 블랙넛도 힙합신에서 꽤나 알려진 래퍼였다. 하지만 청년 빈곤을 구현한 밴드, 찌질한 공격성을 무기로 삼는 래퍼가 인디신을 넘어 대중적 호응을 얻기 시작한 국면은 또 다르다. 청년 문제가 오죽 심각하면 이런 문화적 현상이 등장하고 대중이 호응할까, 싶은 것이다. 이들이 구현하는 이미지는 지금 여기서 그치지 않고 앞으로 반복해 등장할 어떤 흐름의 시작으로 보인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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