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첫 건전가요는 였다. 이문세를 좋아한 누나들 덕에 나도 함께 이문세의 4집 카세트테이프를 열심히 들었다. 마지막 곡인 의 극적인 마무리 뒤에는 어김없이 가 흘러나왔다. 해바라기의 앨범에도, 시나위의 앨범에도 건전가요라는 것이 들어 있었다. 음악가를 가리지 않았고 장르를 가리지 않았다. 시나위의 첫 앨범에는 A면 마지막에 이 있어 들을 때마다 흐름을 깼다. 간단한 기술을 이용해 카세트테이프에서 아예 건전가요를 지워버리는 이들도 있었다.
1979년 공연윤리위원회가 ‘건전가요 음반 삽입의무제’를 시행하면서부터 각 앨범에는 건전가요가 들어갔다. 관의 주도로 새롭게 창작한 노래도 있었고 군가나 동요가 삽입되기도 했다. 홍삼트리오는 건전가요계의 맹주라 할 만했는데, 이들이 부른 나 혜은이와 함께한 은 자신들의 대표곡인 보다도 더 많이 대중에게 알려졌다. 1980년대를 살았던 이들이라면 지금도 자연스레 따라 부를 수 있을 만큼 많은 앨범에 삽입됐다.
의도의 불순함은 제쳐두더라도 이 건전가요는 하나의 앨범이 구현할 수 있는 예술성까지 해쳤다. 시나위의 을 들으며 ‘록’과 ‘젊음’을 만끽하다가 느닷없이 이 튀어나올 때의 황망함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여기에서 어떻게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앨범의 전체적인 흐름을 박살내버리는, 조국까지 원망하게 만드는 이 불건전한 트랙들은 앨범마다 지뢰처럼 박혀 있었다. 그래서 들국화나 작은하늘 같은 밴드들은 아예 자신들이 직접 을 불렀고, 앞서 언급한 이문세 역시 자신의 목소리로 를 부르며 앨범의 마무리를 지었다.
1990년대 초반 의무제가 폐지되면서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던 건전가요가 20여 년 만에 다시 소환됐다. 정부가 청소년 언어 문제가 심각하다며 청소년의 언어 순화를 위한 건전가요를 만들어 보급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철저하게 기성세대의 입장에서 만들어진 이 시대착오적인 정책에 많은 비판이 따랐고 또 실효성에도 의문이 제기됐지만, 더 해괴한 건 작곡가로 부활의 김태원을 내정하면서 한 말이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청소년이 좋아하는 댄스곡 형태가 되도록 김태원씨와 논의할 계획”이라며 “중·고교생의 관심을 최대한 끌도록 아이돌 가수가 노래를 부르게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말을 이렇게 바꿔보면 어떨까? “청소년이 좋아하는 EDM(일렉트로닉 댄스뮤직) 형태가 되도록 심수봉씨와 논의할 계획” 또는 “청소년이 좋아하는 힙합 형태가 되도록 조수미씨와 논의할 계획”. 김태원은 30여 년 동안 록(발라드) 음악만을 만들어온 작곡가다. 그런 그에게 청소년이 좋아하는 댄스곡을 논의하자는 건 심수봉에게 EDM곡을 의뢰하고 조수미에게 힙합곡을 의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결국 여기에서 중요한 건 ‘음악’이 아니다. 지시가 내려왔고 따를 뿐이다. 아름다운 노랫말을 쓰는 창작자가 누가 있을까 생각하다 김태원이 떠올랐고, 청소년이 좋아하는 음악은 아이돌 댄스곡이니 그냥 이 둘을 합쳤을 뿐이다. 어떻게든 결과를 만들어내야 한다면 기존에 있던 건전가요를 다시 가져와도 될 일이다. 굳이 예산을 더 쓸 필요도 없고, 곡 자체도 나쁘지 않다. 이문세가 직접 부른 는 좋은 포크곡이고, “아아~ 믿음 속 상거래로 만들자 밝고 따뜻한 사회”만큼 희망차고 신뢰가 가는 노랫말도 찾기 어렵다. 아이유도 리메이크 앨범 에서 를 다시 불러 호응을 얻기도 했다. 그 노래들을 다시 쓰는 건 촌스럽고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된다. 단언컨대 지금 정부의 행태보다 시대착오적이고 촌스러운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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