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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중력 청소년들은 유유자적하기도 하지

사회적 기업 ‘유자살롱’ 사람들 “과거의 나를 돕는다는 느낌으로 일해요”…세상에 맞추지 않은 자신의 템포를 찾아 ‘이유는 모르겠는데 왠지 잘될 것 같은’ 기분으로
등록 2015-02-08 05:15 수정 2020-05-02 19:27

‘무중력 버뮤다 삼각지대’를 아세요?
‘외로움-우울-무력감’의 악순환이 계속되는 그곳에 빠졌지만 구조 신호도 보내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세상은 이들을 일본어 ‘히키코모리’로 부르다가 언젠가부터 ‘은둔형 외톨이’라고 부른다. 자기만의 방에 갇힌 이들을 없는 존재로 여기던 세상은 가끔씩 호들갑을 떨며 외친다. “외로운 늑대가 나타났다!” ‘황산 테러’라든가, ‘이슬람국가’라든가, 요즘 사건이 터질 때마다 울려퍼지는 늑대소년의 외침이다. 늑대소년 같은 세상에서 늑대의 탈을 쓰고 살지 않으려 애쓰는 이들도 있다. 자신을 찌르는 선인장 같은 방에 갇힌 이들을 ‘딩가딩가’ 하며 만나온 ‘유유자적살롱’(이하 유자살롱)이다. 이들은 그들을 ‘무중력 청소년’이라고 부른다.

이미 충분히 외로운 사람들, 뭐라 부를까
유유자적살롱이 여는 직딩예대 은근기타반은 ‘잘하지 않아도 된다’는 격려를 받는다. 직딩예대는 기타를 배울 뿐 아니라 자신과 비슷한 이들의 ‘부족’을 만나는 기회가 된다. 유유자적살롱 제공

유유자적살롱이 여는 직딩예대 은근기타반은 ‘잘하지 않아도 된다’는 격려를 받는다. 직딩예대는 기타를 배울 뿐 아니라 자신과 비슷한 이들의 ‘부족’을 만나는 기회가 된다. 유유자적살롱 제공

“‘이미 충분히 외로운 사람을 외톨이라고 부르는 건 그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이라는 생각과 단어의 이면에 스민 사람들의 경멸 섞인 태도 때문이다. 다른 좋은 말이 없을까 생각하던 어느 날, 칠흑 같은 우주 한복판에 홀로 둥둥 떠 있던 나의 어릴 적 이미지가 떠올랐다. …우울함에 젖은 채 가만히 누워 눈을 감으면 내 존재가 무중력의 바다를 표류하는 우주인처럼 느껴졌다. 나를 끌어당기는 힘도 미는 힘도 없었다. 그야말로 ‘무중력’ 속에 있었다. …유자살롱은 자퇴 뒤 아무 활동도 하지 않는 ‘탈학교 비활동 청소년’을 ‘무중력 청소년’이라고 칭하기 시작했다.”

유자살롱 이충한(아키) 공동대표는 최근에 쓴 (SOYO PROJECT 펴냄)에 그렇게 적었다. 그의 책을 읽고 유자살롱을 찾아가 얘기를 나눴다. 이날 공동대표 전조가 아키와 함께 말했고, 다른 멤버인 후멍과 하즈는 다른 일로 바빴다. 언젠가 사회적 기업 유자살롱에 관할 세무서에서 전화가 왔다. “왜 유흥업소 등록을 안 하세요?” 세무서가 주문한 사업 외에 다양한 일을 하는 유자살롱의 사업 내역은 이렇다. 일단 무중력 청소년 전문 프로그램 ‘집 밖에서 유유자적 프로젝트’(유유자적), 낮에는 돈 벌고 밤에는 예술하자(晝耕夜藝)는 음악 프로젝트 ‘직딩예대’를 운영한다. 그리고 음악을 만들고 공연을 하는 밴드 ‘유자사운드’로 변신한다. 음악중심 변신전문 유자살롱은 2009년 설립돼 자립에 성공한 ‘중견’ 사회적 기업이다.

공동대표님들은 무척 조심스럽게 얘기했다. 전조는 “한 사람을 키워내는 사회가 얼마나 결핍투성이인지를 드러내는 사건이었지만, 다들 이런 면에는 주목하지 않더라”고 말했다. 아키는 “자신을 향해서 칼을 휘두르는 것도 자살폭탄인데 이것에 대해선 말하지 않아요”라고 말을 이었다. 최근에 벌어진 그 사건들을 둘러싸고 이 사회가 보이는 반응에 대한 반응이다. 무중력 청소년을 만나는 우연한 선구자, 필연적 존재로 살아온 이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무중력 개인이 아니라 무중력 사회가 문제”라고. 아키의 책에는 “유자살롱이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무중력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이 문제가 몇몇 멘탈이 약한 사람들의 개인적 어려움이 아니라, 보다 광범위한 경향성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라고 쓰여 있다.

“나사가 하나씩 빠진”, 강사의 핵심 자질

“멘탈은 붕괴!”라고 씨엘(CL)이 랩하기 전부터 ‘멘붕’의 시대였다. CL도 아는 멘붕 사회를 부모는 모른다. “왜 그러니?” “해보지도 않고!” 노력이 성공으로 보상받는 시대를 살았던 산업화·민주화 세대 부모는 애써 변한 현실을 외면한다. 그리고 자녀를 ‘쪼기만’ 한다. 가난한 아이는 외로워서, 과보호 아이는 부담스러워서, 무중력의 세계로 떨어진다. 전조는 이렇게 말했다. “무중력 청소년을 어떤 예외적 경험을 하고 떨어져나온 사람들이라고 보지 않아요. 연속된 스펙트럼이 있는데, 지지 기반이 약한 아이들부터 무너져 허공에 떠도는 거죠. 누구나 그렇게 될지 모르는 상황인 거죠.”

바람직한 청년들이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목마른 사슴이 우물을 찾듯이 자신의 결핍을 채우려 했을 뿐이다. 단지 어제의 나를 외면하지 못했을 뿐이다. 유자살롱은 원래 지속 가능한 음악 활동을 모색하는 뮤지션들이 만든 사회적 기업이다. 그런데 우연인지 운명인지 무중력 청소년들을 만났다. 아키는 “유자살롱 멤버들 대부분이 무중력한 상황에서 오랫동안 괴로웠던 경험이 있다”며 “과거의 나를 돕는다는 느낌으로 일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어딘가 나사가 하나씩 빠진”은 유유자적 강사의 핵심 자질이다. 그렇게 무언가 하나가 빠져야 무중력 상태에 빠진 청소년을 만나서 마음이 통한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 ‘형들’이 건네는 인사는 “네 잘못이 아니야”다. 세상 탓만 하자는 게 아니라 그렇게 만든 세상을 보아야 무중력에서 나올 용기가 생긴다는 것이다.

기댈 언덕이 되는 이들을 만나는 ‘부족파티’는 해마다 6월과 12월, 두 번 열린다. 부족파티에서 유자사운드가 공연하고 있다(왼쪽). ‘집 밖에서 유유자적 프로젝트’에서 몸으로 느끼고, 손으로 그리는 CA(Club Activity)는 때로 음악보다 중요한 구실을 한다. 유유자적살롱 제공

기댈 언덕이 되는 이들을 만나는 ‘부족파티’는 해마다 6월과 12월, 두 번 열린다. 부족파티에서 유자사운드가 공연하고 있다(왼쪽). ‘집 밖에서 유유자적 프로젝트’에서 몸으로 느끼고, 손으로 그리는 CA(Club Activity)는 때로 음악보다 중요한 구실을 한다. 유유자적살롱 제공

의 원빈은 “얼마면 돼?”라고 말했지만, 경남 통영의 태우 아버지는 “수강료는 얼마면 될까요?”라고 물었다. 초저가 기타 강습을 하던 유자살롱 뮤지션들은 그렇게 운명의 ‘탱 프로젝트’를 만났다. 탈학교 청소년 태우를 맡아서 가르치다, 그와 같이 놀 친구를 찾다보니 자연스레 ‘유유자적 프로젝트’가 탄생했다. 마침 서태지 팬클럽으로 어딘가 기부를 하려던 ‘매니아기빙서클’도 만났다. 이들의 지원금 1천만원. 공금의 유용처는 아키의 책에 나온다. “어디에 쓸까?” 하다가 초대 사장인 세옹이 탱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한 해에 자퇴하는 청소년의 수가 7만 명인데, 그중에 대안학교에 가는 비율은 10%밖에 안 된다는 얘기였다. 그렇다면 나머지 90%의 아이들은 어디에 숨어 있는 걸까?”

90% 아이들은 어디에 숨어 있을까

그렇게 전국 최초의 무중력 청소년 대상 전문 프로그램 ‘집 밖에서 유유자적 프로젝트’는 시작됐다. 지금까지 8기에 걸쳐 한 기수마다 5~8명의 청소년이 거쳐간 유유자적은 철저한 1대1 강습으로 시작한다. 사전 상담으로 얻은 정보를 통해 궁합이 맞는 강사가 배치되고 처음 3주 동안은 1대1 악기 연습을 한다. 아키가 책에서 전하는 모습은 대충 이렇다. “어떻게 살았니, 난 이렇게 살았어, 어떤 음악 좋아해?” 이야기도 하고, “이야~ 날씨 좋은데? 나가서 아이스크림이라도 사 먹을까?” 하고, “아저씨 연주하는 거 본 적 있어? 유튜브에서 한번 찾아보자” 하는 식으로 레슨을 이끈다. 참 유유자적한 방식이다.

3주가 지나면, 아이들 사이에 격벽을 열어 합주를 한다. 서로 말을 섞고 음악을 나누며 아이들은 달라지기 시작한다(자세한 과정은 아키의 책에 나오니 궁금한 분들은 참고하시라). 아키는 책에 “가장 큰 도전 과제는 최대 정지 마찰력을 넘어서는 것이다. 그 역치를 넘길 수 있도록 우리는 ‘충분히 좋은 것’을 주기만 하면 된다”고 썼다. 이렇게 하나의 경험이 많은 것을 바꾸기 시작한다. 아키는 “아이들 마음에 이미 커다란 바퀴가 있고”, “한번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다음에는 다른 것도 굴릴 수 있다”고 전한다. 무기력과 자책 사이에서 서성이던 아이들은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사람들 곁에서, 자신과 비슷한 아픔을 겪는 친구들 속에서 마음의 근육을 키운다. 유자살롱에 도착하기 전까지 평균 2년6개월쯤 무중력의 터널을 지나온 아이들이다.

3개월 과정의 끝에는 ‘부족파티’가 열린다. 가족과 유유자적 선배들, 직딩예대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한다. 무대 중앙에 서로를 마주 보며 연주하는 아이들이 서고, 이들을 유유자적 프로젝트를 통해 만난 부족들이 둘러싼다. 3개월의 유유자적 프로젝트를 통해서 무중력 청소년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마음 둘 수 있는 곳”인 나의 부족을 만난다. 그렇게 만들어진 커뮤니티가 아이들을 가르치고 키운다. 유자살롱 뮤지션들은 “이유는 모르겠는데, 넌 왠지 잘될 것 같아” 하면서 그저 안내할 뿐이다. 물론 중도에 그만두는 아이들도 있고, 과정이 끝나면 무중력 상태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언제든지 돌아와도 좋아”라고 말해주는 사람을 얻은 아이들의 이후는 이전과 다르다. 부족은 관계의 중력으로 아이들을 땅에 세우는 중력이 된다.

진로가 정해진 것 태풍뿐

아키의 책에는 “요즘 시대에 진로가 정해진 것은 태풍밖에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과중력 노동과 무중력 소외가 겹친 세상에서 유자살롱의 진로도 정해질 리 만무하다. 무중력 청소년을 만나는 일은 갈수록 어렵고, 음반을 내면서 바닥을 드러낸 회사의 잔고는 쉽게 채워지지 않는다. 그러나 근거 있는 자신감 하나는 있다. 전조는 “우리처럼 사회적 기업과 청소년 교육과 문화예술 분야를 두루 경험한 이들이 없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관계적 고립감, 정서적 우울함, 일과 일상에서 무력함’이 버뮤다 삼각지대를 이루는 세상에서 이들은 “해결책을 알기 위해선 문제를 알아야 하는데, 문제를 열심히 보는 집단이란 정체성을 가지고 살았다”고 자부한다. 그렇다고 과노동은 금물이다. 이들이 가진 ‘무중력 탈출 레시피’에는 ‘너무 잘하려 하지 않을 것. 그냥 즐길 것’이라고, ‘목표하는 것의 60%만 달성하려고 노력하자’고 적혀 있다. 100%를 하려다 스트레스를 받아 포기하거나 자괴감에 빠지지 말자는 것이다.

‘올 이즈 웰’(All is well), 인도 영화 에서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나왔던 대사다. 2013년 유자사운드가 발표한 앨범 제목이기도 하다. ‘미남 밴드’ 유자사운드는 사업도 음악도 생활도 함께 묶여 있는 진정한 의미의 ‘밴드’(Band)다. 전조는 “매일 같은 사무실로 출근하는 밴드가 있을까”라며 “음악적 성향으로 보면 동서남북같이 다른 사람들이 생활을 같이 하면서 결국 공통점을 찾아 음악을 만든다”고 말했다. 그래서 “생활의 한 부분을 음악으로 내보이는 느낌이 최상”이란 것이다. 그렇게 정신 나간 세상의 속도에 맞추지 않고, 자신의 템포를 찾는 것이 유유자적이다. 이들은 “비를 맞으며 해온 작업이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아키는 “우리가 ‘유유자적 0.5 혹은 0.8’을 했다면, 무중력 청소년 당사자가 하는 ‘유유자적 1.0’은 시작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애초에 무중력 사회만이 있을 뿐

끝으로 “유자살롱은 이렇게도 주장한다”를 전한다. “청소년들은 모두 어느 정도의 긍정적인 무중력 상태, 즉 유유자적 상태를 경험해야 한다고. 그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고, 그들에게서 자율, 고민, 미결정 등의 특성을 제거시키려 할 때, 아이들은 일하는 기계로 자라나거나 부적절한 무중력 상태에 빠진다. 이런 의미에서 어쩌면 무중력 청소년이라는 건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아이들을 대기권 밖으로 내쫓는 무중력 사회만 있을 뿐.” 무중력 사회에서 “음악이 인간에게 할 일은 계속 있을 거니까”, 아니 더 많을 거니까, 유자살롱은 음악을 한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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