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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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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복에 여자들끼리만 세 번 가는 피서

<생떡 미역국> 장바위 폭포 옆에서 솥단지로 끓여 먹는 ‘약’, 훌훌 먹은 뒤
땀이 들어가기 전에 폭포수 맞으면 바람병이 말끔히 낫는다네
등록 2014-08-02 05:37 수정 2020-05-02 19:27
농촌진흥청 제공

농촌진흥청 제공

삼복더위에 주진 장바위 폭포를 세 번만 맞으면 여자들이 산후조리를 못해 생긴 바람병이 말끔히 낫는다고 합니다. 영험하기로 소문나서 인근 각처에서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에 일찍 가지 않으면 터 잡기가 어렵습니다. 부인병에 좋다 하니 약수를 맞으러 갈 때는 우리 큰어두니골과 작은어두니골 여자들은 어린아이까지 데리고 갑니다. 남자들도 가고 싶지만 집을 봐야 합니다.

모든 준비는 분담해서 합니다. 장날이면 미역도 사다놓고 황태도 두어 마리 준비합니다. 저녁 늦게 우리 집에 모두 모여 준비물을 챙기고 같이 잡니다. 저녁에 쌀을 물에 담가 불렸다가 새벽에 호야불을 밝히고 디딜방아에 찧어 쌀가루를 만듭니다. 새벽밥을 해먹고 어둠이 가시기도 전에 떠납니다. 나뭇단을 이고 가는 사람, 솥단지를 이고 가는 사람, 각종 양념과 준비한 쌀가루와 미역을 가져가는 사람, 각자 갈아입을 옷도 싸들고 줄을 서서 피난민처럼 갑니다. 한참을 가다보니 국그릇과 수저를 담은 대야를 빼먹고 와서 도로 돌아가 가지고 갑니다. 옥고개를 넘어 후평 입구까지 갔을 때 미리 부른 트럭이 와서 20리가 넘는 장바위골 어귀까지 금세 데려다줍니다. 서둘러 온 보람이 있어 사람들이 오기 전 폭포 옆 가장 좋은 자리를 잡고 점심 준비를 합니다.

쌀가루를 대야에 담고 팔팔 끓는 물로 익반죽을 해 작은 그릇에 옮겨놓고, 그 대야에 미역을 담가 불립니다. 원 이렇게 그릇이 귀해서야 어디 해먹겠나, 그러면서 미역이 붇는 동안 밥을 해서 바가지에 퍼놓습니다. 밥했던 솥을 씻어 달궈 들기름을 두르고 ‘치지직∼’ 소리가 날 때 미역과 황태를 넣고 한참을 볶습니다. 미역이 차분해지면 조선간장을 넣고 잠시 더 볶다가 약수를 붓고 푹 끓입니다. 국물이 뽀얗게 우러나면 찧은 마늘을 넣고 모두들 둘러서서 미리 해놓은 떡 반죽을 손으로 꼭꼭 주물러 가래떡처럼 만들어 손바닥에 올려놓고 칼로 도톰하게 잘라 넣습니다. 그냥 미역국보다 엄청 더 뜨겁습니다. 쫄깃하고 투명하고 매끌매끌한 생떡 미역국을 장아찌와 함께 땀을 뻘뻘 흘리며 한 그릇씩 먹습니다. 약수를 많이 먹을 욕심에 장아찌 한 대접을 다 먹었습니다.

땀이 들어가기 전에 폭포물에 들어가 물을 맞습니다. 시원하다 못해 뼈가 저려 오래 있을 수 없습니다. 어른 키 두 배쯤 되는 벼랑 위에서 시원스럽게 철철 흘러 떨어지는 물줄기에 머리를 들이대면 아프면서도 시원시원한 것이 아주 기분이 좋아집니다. 팔을 들지 못하도록 아픈 어깨에 폭포가 ‘투두둑둑툭’ 떨어지면 손으로 주무르는 것보다 시원하고 팔이 올라갑니다. 아이들도 안아올려 너무 큰 물줄기를 피해 폭포물을 맞게 하고 물도 받아먹도록 합니다.

평소 늘 화난 사람같이 웃음이라고 없이 지내던 강릉댁이 허리가 너무 아프니 사람들에게 자기 팔다리를 들어 허리에 폭포물을 맞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한참을 들고 섰는데도 그만하라고 하지 않아서 서로 눈짓을 하며 웅덩이에 풍덩 집어넣어버렸습니다. 한참을 허우적거리며 물가로 나가기에 화가 많이 난 줄 알았는데 바가지를 들고 와서는 큰소리로 깔깔거리며 이 사람 저 사람 닥치는 대로 물을 퍼부었습니다. “앗, 차가워!” 다 같이 소리치고 웃으면서 이리저리 뛰며 서로 손으로 물을 끼얹다가 나중에는 대야며 대접이며 그릇을 있는 대로 들고 와서 물을 서로 퍼부었습니다.

한바탕 물놀이를 하고는 해바라기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로 모처럼 한가한 시간을 보냅니다. 옥순이 엄마는 자기는 큰아들 낳고 미역 다섯 올(10올은 1단)이나 먹었다고 자랑했습니다. 읍내 부잣집 마나님은 미역을 한 단이나 끓여 먹고 석 달이나 산후조리를 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 시절 미역은 거의 약으로 먹었습니다. 대관령 아흔아홉 굽이를 트럭을 타고 평창까지 온 미역은 비싸서 시골 사람들이 옥수수 두어 말 팔아야 겨우 한 올 살 수 있었습니다. 미역 한 올을 사면 손바닥만큼씩 떼어 불려 들기름 넣고 쌀뜨물 받아 넣고 훌훌하게 끓여 먹었습니다. 몸살이 나 으슬으슬 춥고 아플 때 북어 넣은 미역국 한 그릇을 먹고 뜨거운 아랫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땀을 내면 거뜬히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좀 늦은 시간에 남은 미역국을 데워 먹고 있는데 비실비실한 젊은 여자가 간장만 들고 와 물에 타서 마시고 병을 고치겠다고 폭포물로 들어갔습니다. 딱하게 여긴 어른들이 생떡 미역국 한 그릇을 먹였더니 자기는 은인들을 만났다고 분명히 오늘 병이 다 나을 거라고 좋아했습니다.

전순예 1945년생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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