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밈 전사들이여, 경제학을 점령하라!

주류 경제학을 비판하고 새 패러다임을 찾는, 칼레 라슨의 <문화 유전자 전쟁>
등록 2014-07-05 15:51 수정 2020-05-03 04:27

책은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보여주며 묻는다. “왜 아무것도 없지 않고 무언가가 존재하는가?”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를 보여주며 또 묻는다. “이 땅에 존재하는 생명에는 무슨 의미가 있는가?” 다음 장을 넘기니, 쓰레기 더미에 있는 흑인 아이들의 사진을 배경으로 ‘세계 인구 성장’ 그래프가 나온다. 옆 장에는 마귀의 손을 연상시키는 사진에 ‘세계 총생산’ 그래프가 등장한다.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외쳤던 그들이 모여

2011년 11월 그레고리 맨큐 교수의 경제학 원론 수업을 거부하며 시작된 ‘하버드를 점령하라’ 시위 모습.  액설 코존 제공

2011년 11월 그레고리 맨큐 교수의 경제학 원론 수업을 거부하며 시작된 ‘하버드를 점령하라’ 시위 모습. 액설 코존 제공

도발적인 이미지와 물음을 던지며 시작하는 (열린책들 펴냄)은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운동을 처음 제안한 칼레 라슨과 그가 편집장으로 있는 격월간지 구성원들이 함께 만든 책이다. 완전경쟁 시장을 성소로, 이윤 극대화와 끝없는 성장을 신성불가침의 교리로 떠받드는, 신고전파 경제학으로 대표되는 주류 경제학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신고전파 경제학을 전복하려면 문화 유전자(Meme·모방을 통해 습득되는 문화 요소) 전쟁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바로 ‘경제학을 점령하라’ 운동을 제안한 것.

책은 대학에서 펼쳐지는 문화 유전자 전쟁을 보여준다. “경제학의 양면을 접하고 싶습니다. 단편적인 지식만을 얻은 나 같은 학생들이 경제정책을 주도하게 될까봐 우려스럽습니다.” 2011년 11월, 하버드대생 70명이 신고전파 패러다임을 대표하는 상징적 인물인 그레고리 맨큐 교수의 경제학 원론 수업을 거부하며 ‘하버드를 점령하라’ 시위를 벌였다. 프랑스 파리8대학 경제학과 질 라보 조교수도 “맨큐의 교과서는 교수들이 가르치는 데는 편리하지만, 경제 이론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시장이 인간의 행복을 침해하고 사회에 피해를 주고 지구를 위협할 수 있음을 외면한다”고 지적한다.

더불어 “경제학자들은 규범과 동기를 모형에 다시 추가해야 한다”(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 캠퍼스 교수 조지 애컬로프), “신고전파 경제학은 단지 틀린 게 아니라 위험하다”(웨스턴시드니대학 금융·경제학 부교수 스티브 킨), “아직까지도 우리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양적 성장을 떠벌리는 것은 맹목적 오만이다”(세계은행 경제 자문 허먼 데일리) 등 주류 경제학에 맞서 싸우는 비주류 경제학자들의 목소리를 전한다. 그들을 통해 연대경제, 공공선에 대한 헌신, 사회적 기업 등의 가치를 이야기한다.

생태주의 패러다임으로 전환을

책은 새로운 경제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지구를 인간 경제의 하위 체계로 두고 있는 신고전파 패러다임은 인간 경제가 지구 생물 경제의 부분집합으로 인식되는 생태주의 패러다임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음 세대 경제학자들에게 “경제활동에 들어가는 비용을 모두 계산하고 반영하여 모든 상품의 가격이 생태적 진실을 말하는 세계시장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리고 다시 묻는다. “인류가 역사상 유례없는 티핑 포인트에 접어들어 지구의 미래가 경각에 달렸다고 느낀다면 어떤 관점에서 경제학을 바라보아야 할까? 지구별을 위해 문화 유전자 전쟁을 펼칠 준비가 되었는가? 아니면 라떼 거품이나 쪽쪽 빨고 있을 텐가?”라고.

여러 이미지와 글들이 펼쳐져 산만하다고 느낄 수 있는 경제학책이지만 성장과 경쟁의 사회에 대한 각성의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한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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