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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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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설수 오르면 실력도 오르나

등록 2001-10-25 00:00 수정 2020-05-03 04:22

그라운드의 악동으로 통하는 스포츠 스타들… 팬들은 그들의 돌출행동을 즐기기도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스타플레이어 고종수(23·수원 삼성)가 밤을 새워 술을 먹다가 폭력혐의로 입건돼 이른 새벽 경찰서에서 만취상태로 소란을 피운 사건이 지난 10월16일에 있었다. 고종수는 이날 오전 6시20분께 서울 강남구 논현동 논현역 근처 포장마차에서 전날 여수에서 올라온 고향친구 2명과 어울려 술을 마시다가 옆 좌석에 있던 조아무개(21)씨 등 일행 5명과 시비가 붙어 폭력을 휘두른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사건은 피해자들이 처벌을 원치 않아 별탈없이 마무리됐지만 고종수의 명예에는 큰 흠집이 났다.

독일에서 무릎 수술을 받고 재활치료 중에 이같은 잘못을 저지른 고종수는 돌이킬 수 없는 과오를 남긴 셈이다. 특히 2002한·일월드컵을 앞두고 한국 축구대표팀에서 국가와 개인의 명예를 위해 뛰어야 할 선수가, 그것도 부상 중에 저지른 일이라 쉽게 용서될 수 없을 것이다.

부상 치료중에 폭력 휘두른 고종수

럭비공처럼 예측을 불허하는 고종수의 행동은 이번만이 아니다. 그는 2000시드니올림픽을 앞두고 올림픽대표팀에 있을 때도 몇 가지 사건을 일으켰다. 당시 올림픽대표팀이 머무르던 타워호텔에는 밤마다 고종수를 앞세운 한 무리의 선수들이 숙소를 빠져나가 이태원 등지에서 밤거리를 헤매고 다닌다는 얘기들이 나돌았다. 고종수는 99년 6월19일 잠실에서 열린 코리아컵 크로아티아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자신의 유니폼을 갖고 오지 않아 구설수에 오른 적도 있다. 게다가 그날 밤 숙소인 타워호텔마저 무단 이탈, 선수단 전체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뛰어난 재능과는 달리 튀는 행동은 ‘못 말리는 수준’이었다. 과연 ‘앙팡 테리블’, 무서운 아이였다.

고종수가 그라운드에서 보여주던 환상적인 왼발 프리킥과 왼발 슛을 못 본다는 것은 그는 물론이고 팬들, 크게는 한국 축구에 이만저만 손해가 아닐 수 없다. 결국 한국의 ‘술 권하는 사회’가 문제인가. 선수들의 사건·사고에는 으레 술이 따라가게 마련이다.

올림픽대표팀 얘기가 나왔으니 정대훈(24·포항) 사건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이영표(안양 LG)가 두각을 나타내기 전까지 박진섭(상무)과 함께 올림픽대표팀의 윙백으로 99년 2월 베트남 던힐컵에서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그런 그이지만 99년 12월24일 울산에서 훈련을 하고 있던 올림픽대표팀의 숙소를 무단으로 이탈해 대표팀에서 탈락했고, 3개월의 출전정지 징계를 받았다. 정대훈은 이날 코칭스태프의 허락없이 선수단 숙소를 이탈해 친구들과 생일모임을 갖고 다음날 아침 복귀한 사실이 드러나 곧바로 귀가조치됐다. 그의 이름은 지금 프로리그에서조차 완전히 잊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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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예로는 2001 POSCO 프로축구 K-리그를 앞둔 8월1일 안양 LG의 간판 스타인 정광민(26)이 뜻하지 않게 임의탈퇴로 공시된 일이 있다. 역시 음주파문이 이유였다. 조광래 안양감독은 술을 먹고 훈련을 태만히 하던 정광민을 일벌백계 차원에서 선수단 훈련에서 제외시켰다. 정광민은 2개월 동안 근신과 자숙의 시간을 갖고 ‘금주’를 약속한 뒤 지난 10일 팀훈련에 합류해 지난 14일 포항전에서 K-리그 첫 출전을 했다.

해외로 눈을 돌려도, ‘그라운드의 악동’은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다. 먼저 일본의 야나기사와(24·가시마)가 있다. 고종수가 유니폼과 숙소 이탈 사건으로 구설수에 오른 99년 6월, 야나기사와도 네팔과의 시드니올림픽 1차 예선을 마치고 합숙장소인 도쿄의 한 호텔을 몰래 빠져 나왔다. 그는 4년 연상의 탤런트와 데이트를 즐기다가 발각이 돼 대표팀에서 탈락하는 비운을 맛봤다. 퇴출당한 야나기사와는 한동안 일본대표팀 유니폼을 입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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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잉글랜드의 데이비드 베컴(26·맨체스터 유나이티드)도 영화배우 같은 준수한 얼굴 때문인지, 언제나 뉴스메이커로 한몫을 한다. 무엇보다 영국의 여성 3인조 인기 댄스그룹 ‘스파이스 걸스’의 멤버였던 빅토리아 애덤스와의 결혼은 전세계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뿐만 아니다. 금빛 머리를 자르고 나치 헤어누드족 같은 헤어스타일을 선보여 한때 화제를 낳기도 했다. 또 이번에는 그의 여동생 조앤 베컴이 잉글랜드 21살 이하 축구대표인 19살의 흑인선수 저메인 데포(웨스트햄)와 교제를 하고 있다고 해서 잉글랜드 팬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한마디로 ‘못 말리는 집안’인 셈이다.

염문 뿌리고 다니는 미남 스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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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썽꾸러기’하면 이탈리아의 말총머리 로베르토 바조(34·이탈리아 브레시아)를 빼놓을 수 없다. 바조는 94미국월드컵에서 이탈리아를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98프랑스월드컵을 앞두고는 체자레 말디니 감독의 지도방침에 반발하며 팀워크를 해치는 행동을 일삼아 결국 대표팀에서 제외됐다가 본선을 앞두고 뒤늦게 합류했다. 그 여파는 아직까지 남아 있다. 최근 지오반니 트라파토니 이탈리아 감독이 2002월드컵을 대비해 노장 로베르토 바조를 중용할 뜻을 밝히자 후배들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특히 공격수 프란체스코 토티(AS로마)는 “나중에 문제가 일지 않도록 모든 일을 확실히 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성 메시지를 던졌다. 이같은 반응은 98프랑스월드컵 당시 바조가 유별난 행동과 특유의 ‘말총머리’ 스타일로 동료들과 불협화음을 일으킨 것과 무관하지 않다. 대표팀 수비수 카나바로도 “4년 전 바조의 복귀로 우리 팀엔 깊은 시름이 있었다. 바조 탓에 델 피에로도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며 뜻을 같이했다. 어디에서나 튀는 행동은 크게 환영을 받지 못하는 형편이다.

‘악동그룹’에 프랑스대표팀의 스트라이커 아넬카(파리생제르맹)를 뺀다면 화를 낼지도 모른다. 그도 누구 못지않은 ‘악행’의 전과가 있다. 아넬카는 지난 1월 훈련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취재차 그에게 접근하던 프랑스의 스포츠일간지 <레퀴프>의 축구담당 기자인 타랑고의 얼굴을 때린 뒤 차에 올라탔다. 타랑고는 즉각 아넬카를 경찰에 고소했고, 다른 구단 출입기자들도 아넬카에 대한 징계를 요구하며 이날 예정된 기자회견을 보이콧했다. 아넬카는 99년 잉글랜드 아스날에서 득점왕에 오를 때도 감독과 동료들과의 불화로 결국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고 스페인에서도 화합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 본국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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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하면 떠오르는 전설 같은 두 인물, 펠레(브라질)와 마라도나(아르헨티나)도 구설수에 오른 것만을 따지면 어느 말썽꾸러기 못지않다. 마라도나는 기자들과 싸움을 벌이는 것은 다반사이고, 2년 전 쿠바에서 마약중독 치료를 받을 때도 기자들을 향해 총을 쏘는 등 ‘엽기적인’ 행동을 곧잘 보였다. 그는 또 지난 15일 자메이카 킹스턴에서 열린 자선 경기에 몸이 아프다며 출전하지 않아 관중의 거센 항의를 불렀고, 대회조직위는 입장권 가격을 낮추는 소동을 벌였다.

펠레는 95년부터 4년 동안 브라질 체육장관을 지내는 등 누구보다 성공적인 생활을 했지만 그늘도 없지 않았다. 지난 4월 브라질 검찰이 펠레의 탈세혐의를 포착해 수사를 벌인 적이 있다. 펠레가 체육장관 시절, ‘스포츠 & 마케팅’사를 운영하면서 탈세를 저지른 혐의를 잡고 지난해부터 축구계 비리 척결을 위한 청문회를 진행해온 의회에 협조를 받아 수사를 했다. 이에 펠레는 브라질 의회의 축구계 전반 비리 의혹 조사와 관련해 자신이 운영하는 ‘스포츠 & 마케팅’의 명예가 훼손됐다며 정부와 의회를 상대로 5천만달러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었다.

코트의 악동, 로드먼이 그리운 까닭

스타들의 ‘악동 이미지’는 야누스적인 측면이 있다. 사회적이고 교육적인 측면에서는 당연히 이해할 수 없는 나쁜 요소지만 뭔가를 바라는 많은 팬들에게 흥미와 재미, 스트레스 해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80년대 테니스 코트에서 심판에게 강한 항의를 하면서 라켓을 던지던 존 매켄로나 미국 프로농구의 악동 데니스 로드먼이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지 않았는가. 그들이 가끔 그리운 것도 사실이다. 또 하나, 구설수에 오르는 악동들은 모두 스타플레이어라는 점이다. 그들이 뛰어난 자질과 실력을 갖춘 스타가 아니라면 그들에게 시선은 집중되지 않을 것이고 사건과 사고도 비켜갔을 것이다.

박정욱/ 스포츠서울 체육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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