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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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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의 제국을 폭로한 ‘러시아의 양심’

반푸틴 외치다 의문의 죽음을 맞은 언론인의 최후 기록

안나 폴릿콥스카야의 <러시안 다이어리>
등록 2014-04-19 07:10 수정 2020-05-02 19:27

“우리 민주정치는 계속 기울어가고 있다. 러시아에서는 아무것도 국민에게 의존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푸틴의 손에 달려 있다. 권력의 중심화, 관료집단의 주도력 상실은 점점 더 커져가고 있다.”
러시아 신문 의 기자였던 안나 폴릿콥스카야는 블라디미르 푸틴의 안보정책과 체첸 분쟁에 관한 비판적인 기사를 썼다. 글을 통해 체첸 분쟁이 민간인을 얼마나 잔인하게 학살하고 고통을 줬는지 폭로했다. 그러나 푸틴의 집권 이후 러시아에서 반정부 언론인들이 의문의 죽음을 당한 것처럼, 그 역시 2006년 10월 자신의 집 계단에서 괴한의 총에 맞아 숨졌다. 그날은 푸틴의 54번째 생일이었다.

안나 폴릿콥스카야가 의문의 피살을 당한 지 8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죽음을 둘러싼 의혹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의 묘지에 추모의 꽃다발이 놓여 있다.위키미디어 커먼즈

안나 폴릿콥스카야가 의문의 피살을 당한 지 8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죽음을 둘러싼 의혹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의 묘지에 추모의 꽃다발이 놓여 있다.위키미디어 커먼즈

는 푸틴의 재선을 도운 2003년 12월 하원의원 선거부터 재선에 성공한 푸틴이 인권운동과 민주주의 세력을 무력화해나가는 과정을 폴릿콥스카야가 남긴 하루하루의 기록을 통해 보여준다.

고문과 납치… 짓밟힌 민주주의

2003년 12월과 2004년 3월에 있었던 러시아의 총선과 대선에서 민주 야권은 무너지고 푸틴과 그의 ‘통합 러시아’당은 압승을 거뒀다. 이 선거를 지켜본 폴릿콥스카야는 신분증과 투표용지 위조, 왜곡 보도를 통한 여론 조작 등 대대적인 선거 부정으로 얼룩진 결과였다고 증언한다. 그 뒤 아무런 견제도 받지 않은 푸틴 정권은 높은 지지율을 등에 업고 독재체제를 굳혀나갔다. 테러 방지를 구실로 주지사 직선제는 폐지됐고, 체첸·다게스탄·잉구셰티아 등 분리주의를 외치는 자치공화국들에서는 러시아 보안기관과 친푸틴계 정권에 의한 무차별적인 고문과 납치가 끊이지 않았다. 푸틴 정권은 공포와 위협 분위기를 조성하며 권력을 유지해갔다.

폴릿콥스카야는 푸틴 집권 이후 발생한 테러 사건의 희생자와 유가족들을 취재하고 국가폭력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뛰었다. 이 과정에서 ‘푸틴의 제국’에 사는 러시아 시민들의 짓밟힌 자유와 인권을 마주했다. 그리고 깨닫는다. 테러를 조장하고 사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면서 국민의 생명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것은 테러 집단이 아닌 정부 당국이라고.

독재에 타협하지 말고 저항하라

그는 그런 정권을 눈감아주고 침묵으로 동조하는 시민들 역시 테러의 공모자라고 말한다. “러시아의 밤, 난쟁이들의 어마어마한 그림자를 드리우는 시간” 속에서 지내며 “위험이 닥치더라도 내 집이 안전한 곳에 있는 이상, 걱정을 사서 할 필요는 없다는 듯 철저히 이기적인 모습을 하고 사회주의로부터 빠져나온” 시민들을 향해 날선 비판의 화살을 던진다.

하지만 희망의 움직임도 전한다. 반인권적 병영 문화를 바꾸기 위해 발 벗고 나선 ‘군인 어머니회’. 정권과 타협하지 않고 정당을 결성해 적극적인 정치운동을 하는 그들을 통해 변화를 기대한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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