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시장이 안 좋기도 하고 음악 할 맛도 안 나서 고향에 내려가 개나 키우려고 했는데, 집에 가지 말고 음악 하라는 뜻으로 알고 더 열심히 매진하겠습니다.” 지금은 예능 대세가 된 데프콘이 지금으로부터 꼭 10년 전, 제1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장에서 한 수상 수감이다. 그는 그해 ‘최우수 힙합’ 부문의 수상자였다. 지금 데프콘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회에서 상을 줬을 때의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유명해지긴 했지만, 어쨌거나 그가 전북 전주로 귀향해 집에서 개를 키우는 대신 에 나와 노를 젓고 에 나와 야외 취침을 하는 데 자그마한 역할을 한 셈이다. 물론 그사이에 그는 계속 음반을 발표하고 랩을 해왔다.
음악 중심에 두고 대중음악 평가하자한국대중음악상의 시작 의도는 데프콘의 예에서 보듯 그리 거창한 게 아니었다. “한국의 그래미상을 꿈꾼다”는 원대한 포부가 있긴 했지만, 미디어와 대중에게 소외받는 음악가들에게 균등하고 정당한 평가를 통해 힘을 주자는 게 우선이었다. 방송사 중심이 아니라 ‘음악’ 혹은 ‘음악인’에 중심을 두고 대중음악을 평가하는 시상식을 만들어보자는 소박한 취지였다. 한국대중음악상의 시작을 알리는 첫 기자회견에서 (지금은 선정위원에 참여하지 않는) 한 음악평론가의 “이효리도 없고 비도 내리지 않는다”는 돌출 발언이 문제가 되기도 했지만 그건 기존 가요 시상식과의 차별성을 강조하려다 튀어나온, 말 그대로의 돌출 발언이었을 뿐이다. 예나 지금이나 음악만 훌륭하다면 비가 아니라 우박이 떨어져도 상관없다.
주류와 비주류를 가르지 않고, 한편으론 장르별로 시상해 비주류 장르 음악가들이 소외받지 않게 하려 했다. 수많은 가요 시상식이 존재하지만 그 가운데 제대로 장르를 나누고 거기에 맞춰 상을 주는 시상식이 하나도 없다는 건 이상하지 않은가? 기껏 장르라고 나눈 것이 ‘베스트 댄스 퍼포먼스 남자 솔로’나 ‘베스트 보컬 퍼포먼스 여자’인 건 괴상해 보이기까지 한다. 한국대중음악상은 해외의 유명 시상식들이 그런 것처럼 (당연하게) 장르를 구분하고, 첫해에 코코어(록), 데프콘(힙합), 윤건(R&B), 나윤선(재즈) 등에게 상을 줬다. 지금이야 누구보다 유명한 이름이 됐지만, 당시만 해도 데프콘은 ‘듣보잡’ 힙합 음악가였을 뿐이다. 코코어 역시 마찬가지였고, 나윤선도 결코 지금과 같은 위상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수상자가 TV와 라디오를 통해서만 음악을 듣는 이들에겐 생소한 이름들이었다.
일반 대중은 잘 모르는 음악가들에게 상을 주는 시상식. 결국 대중적인 관심은 연말의 방송사 시상식이나 거대 자본을 앞세운 케이블방송의 시상식보다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방송에 주로 모습을 보이는 인기 가수들은 시상식에 불참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비슷비슷한 성격의 시상식들 가운데 이런 시상식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으로 10년 넘게 시상식을 꾸려왔다. 대중의 관심이 부족하다보니 늘 후원사를 찾기 어려웠고 후원 여부에 따라 시상식 규모는 매년 달라졌다. 2009년에는 시상식을 코앞에 두고 문화체육관광부가 약속한 지원을 일방적으로 취소해 파행이 되기도 했다. 얄궂게도 한국대중음악상이 언론과 대중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게 이때였다.
“상은 우리가 주고 싶은 데 준다”이런 부침 속에서도 10년이라는 역사가 쌓였다. 그 역사만큼 권위도 조금씩은 생겨나 “이 상을 받고 싶어서 음반을 만들었다”(박선주)거나 “집에 트로피가 굉장히 많지만 오늘 받은 이 트로피가 최고로 의미 있는 트로피”(엄정화) 같은 수상 소감을 들을 수 있었다. “누군가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수고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 기분이 참 좋다”는 수상 소감을 전했던 이승열씨의 말처럼 거꾸로 선정위원들의 어깨에 손을 얹고서 수고했다고 말해주는 것 같은 흐뭇한 장면들이었다. 물론 모든 이들이 한국대중음악상에 호의적인 것은 아니다. 여전히 같은 폄하와 오해의 말도 넘쳐난다. 특히 후보 발표가 있은 뒤에는 더 많은 말이 생겨난다. 매해 있어온 일이지만 올해는 그런 경향이 더 두드러졌다. 많은 음악가나 음악 관계자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불만을 표출했다.
가장 직접적인 포문은 시나위의 리더인 신대철씨가 열었다. 신대철씨는 페이스북을 통해 장문의 글을 이틀에 걸쳐 게재했다. 신대철씨는 후보 발표 기자회견에서 나온 “특히 이번 후보 선정에는 음반이나 음원 판매량, 방송 횟수 등은 전혀 반영하지 않고 음악 자체만 반영했다”는 말이 기분 나쁘다며 그 ‘음악 자체’의 근거를 제시하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 근거를 제시할 수 없다면 “상은 우리가 주고 싶은 데에다 준다”는 걸 자인하고 ‘한국평론가취향음악상’으로 이름을 바꾸라는 권유까지 해줬다. 하지만 이건 굳이 자인할 필요가 없는 ‘사실’이었다. 지금까지 한국대중음악상은 늘 선정위원회가 주고 싶은 후보에게 상을 줘왔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알리는 데 어떤 거리낌도 없었다. 대체 그렇지 않은 시상식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래미상이나 브릿어워즈에는 어떤 ‘객관적’인 기준이 있는지 묻고 싶지만 여기에 쉽게 답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래도 없을 것 같다.
논란이 일자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장인 김창남 교수 역시 장문의 글을 페이스북에 남겼다. 어쩌면 신대철씨의 의견을 비롯해 그동안 한국대중음악상에 쏟아졌던 의문과 오해에 두루 답하는 성격의 글이었다. 김 교수는 “음악성을 평가하는 객관적 기준이 있는가? 당연히 없지요”라는 말로 시작해 각기 다른 평가 기준을 가진 선정위원들의 의견을 모아서 여러 사람이 합의할 수 있는 최소한의 교집합을 찾아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평가가 주관적이지 않냐고요? 당연히 주관적이지요. 그런 개개의 주관적 평가들이 모여서 합의 가능한 최소한의 상호주관적인 결론을 도출해내는 것이 저희들의 선정 작업입니다”라는 글은 대부분의 선정위원이 공감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매번 평가회의 통해 문제점 보완해나가결국 이런 논란은 한국대중음악상이 그래미나 브릿어워즈만큼 권위와 역사를 갖지 못해 생긴 문제일 수 있다. 또 다른 불만도 터져나왔다. 이번에는 전문성의 문제였다. 전자음악 전문 매체이자 레이블인 영기획의 하박국 대표는 한국대중음악상의 ‘댄스&일렉트로닉’ 부문 후보를 보고 “화가 난다기보다는 멍해졌다”는 소감을 전했다. 그 어느 해보다 많은 전자음악 음반이 나왔고, “음반이든, 디지털 음원이든, 라이브 공연이든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최선의 방법으로 자신의 결과물을 발표했”음에도 다른 부문보다 후보 한 자리가 부족하고, 그나마 있는 후보들은 거의 아이돌 그룹의 음반인 것에 할 말이 없어졌다는 뜻이었다.
이 문제제기의 이면에는 ‘과연 당신들이 2013년의 전자음악을 제대로 들어보기나 했는가?’란 의문이 내포돼 있다. 이 부분에 문제를 제기한 이들은 ‘댄스&일렉트로닉’ 분과위원들이 제대로 음악을 들어보지 않았을 거라는 확신을 갖고 있는 듯하고, 그런 의문들은 분명 타당해 보인다. 이건 지금의 대중음악상이 갖고 있는 취약점이기도 하고 고쳐나가야 할 부분임이 틀림없다.
몇 년 전을 예로 들자면 한국대중음악상은 ‘한국인디음악상’이란 비아냥으로 불리기도 했다. 물론 이런 오해는 아직도 따라붙고 있지만 예전에 비하면 많이 나아졌다. 거꾸로 지금 ‘댄스&일렉트로닉’ 부문은 주류 가수들이 후보를 점령했고,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는 비주류 전자음악가들이 배제된 셈이다. 이것이 지금 한국 대중음악의 현실을 보여주는 거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수용 가능한 범위 안에서 선정위원들이 계속 변화를 꾀하고 여러 의견을 반영한 결과이기도 하다. 올해 드러난 문제들은 다시 한번 내년 시상식을 위해 적극 수용되고 반영될 것이다.
시작한 지 10년이 되었음에도 ‘한국대중음악상’이란 이름에 문제를 제기하는 이가 여전히 (대다수) 있다는 것은 참 기운 빠지는 일이다. 이것은 ‘대중’음악이 아니라 ‘대중음악’을 대상으로 하는 거라고 10년 전부터 말해왔지만 그들은 늘 듣고 싶은 말만을 들어왔다. 대체 이것이 ‘한국’의 ‘대중음악’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이 지겨운 문답을 계속하고 있다는 건 그만큼 현재 한국대중음악상의 위치나 위상이 부족하다는 뜻일 것이다. 늘 그래왔다. 회의 때마다 후원 이야기가 나오고 그때마다 분위기는 어두워진다. 저기 홍콩이나 싱가포르도 아니고, 서울의 공연장 하나 빌리는 것도 늘 힘에 부쳤다.
2월28일 홍대 근처 무브홀로그럼에도 10년 동안 무보수 명예직으로 선정위원들이 이 상을 이끌어온 건 앞서 얘기했듯 이런 시상식이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공감대 때문이었다(생각해보니 ‘무보수’란 말은 취소하겠다. 올해 난 ‘록&모던록’ 분과장을 맡았는데 수고했다는 의미로 3만원짜리 상품권을 받았다. 10년 만이다). 2003년에 열린 SBS 가요대전 수상자 명단을 찾아봤다. 이효리가 대상을 받았고, 비·신화(인기상), 샤크라(댄스), 마야(록), 은지원(힙합) 등이 상을 받았다. 이 수상자들을 깎아내릴 뜻은 없다. 다만 한국대중음악상은 이들보다 더 많은 장르의 음악가들이 좋은 음악을 만들고 있다는 걸 알리려 한다는 것이다. 한국대중음악상과 관련한 가장 기분 좋은 칭찬은, 매해 후보가 발표되면 모르고 지나쳤던 후보들의 음반을 찾아 듣는 기쁨이 크다는 얘기를 들을 때다. 2월28일 저녁 7시 서울 홍익대 근처에 있는 예스24 무브홀에서 이 다양한 음악가들을 만날 수 있다. 그 무엇도 아닌 지금 ‘한국’의 ‘대중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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