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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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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것이 사는 것이다

죽음의 두려움 떨치고 삶을 더 예찬하기 위한 죽음 안내서
리샤르 벨리보·드니 쟁그라의 <삶을 위한 죽음 오디세이>
등록 2014-01-18 06:15 수정 2020-05-02 19:27

죽음은 보편적이다.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순 없다. 또한 죽음은 개별적이다. 지인과 가족이 우리 곁을 떠날 때 죽음은 비로소 인식되지만, 그 고통은 온전히 각자의 몫이다. 자신에게나 타인에게나 죽음은 위로되지 않는다.

죽음으로 인해 인간은 더 인간다워져

저자들이 이 책에서 전하려는 얘기는 ‘죽음이 없으면 삶도 없다’는 간단한 메시지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삶과 죽음>(일부).궁리 제공

저자들이 이 책에서 전하려는 얘기는 ‘죽음이 없으면 삶도 없다’는 간단한 메시지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삶과 죽음>(일부).궁리 제공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 나는 태어나기 전 몇십억 년 동안 죽어 있었으며, 그 때문에 괴로웠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는 마크 트웨인의 이 호언은, 죽음에 대해 숨겨둔 우리의 두려움을 되레 확인시켜준다. 죽음은 알 수 없어 두렵고, 경험되지 않아 무섭다. 내가 언젠가 죽는다는 엄연한 사실을 인정하는 일은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죽음이 누구에게나 평등한 사태라는 점을 받아들일 때, 삶이 허망해지는 건 그래서다.

사실 ‘존재의 덧없음에 대한 예리한 인식은 인간이라는 종’만이 가진 특질이다. 삶의 유한성에 대한 두려움은, 영원에 대한 동경으로서의 종교를 낳았고 육체 너머 불멸로서의 철학을 분만했다. 죽음(에 대한 인식)으로 인해 인간은 더 인간다워졌다.

캐나다 퀘벡에서 각각 생화학과 생리학을 연구해온 의학자 리샤르 벨리보와 드니 쟁그라의 (양영란 옮김, 궁리 펴냄)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고 삶을 한층 더 예찬하기 위한 안내서다. 죽음을 거부하는 것이 인간의 무의식적인 습성이라지만, 두 공저자는 죽음을 알아야 삶을 더 잘 알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두 저자는 인간이 왜 죽는지, 그 생물학적인 과정을 알기 쉽게 풀어놓는다. 이를테면 암, 뇌출혈, 독감 바이러스 등의 질병이 어떠한 이유로 발생하는지 풍부한 시각자료를 곁들어 제시한다. 더구나 인간이 죽는 방식에는 자연스러운 노화나 질병도 있지만, 고문, 전쟁, 할복자살, 교통사고, 벼락사, 독극물 사망, 일산화탄소 중독 같은 예외적이고 충격적인 죽음도 있다.

‘과학’이 책을 이끄는 큰 줄기지만, 두 저자는 과학뿐만 아니라 철학·인류학·문화사를 종횡무진 넘나들며 죽음의 의미와 인간이라는 존재를 통섭적으로 성찰한다. “인간의 삶이, 지금으로부터 30억 년 전에 출현한 하나의 원시세포에서 시작된 경이롭기 그지없는 모험”이라는 사실에 감탄하는가 하면, “원시사회에서 현대사회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역사는 수많은 대량학살,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의식, 고문, 전쟁 참극에서 보듯이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광기의 역사이기도 했다고 전한다.

잘 살기 위해서 죽는 법을 배워야

그럼에도 저자들이 이 책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죽음이 없으면 삶도 없다’는 간단한 법칙이다. 죽음은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부정적이거나 부당한 종말이 아니다. 인간이라는 종이 지구상에 출현하기까지, ‘나’라는 유일무이한 존재가 나타나기까지에는 필연적으로 셀 수 없이 많은 죽음이 있어야 했다. 삶은 끊임없이 죽음으로 이어지고, 죽음은 끊임없이 삶으로 이어진다. 두 저자는 말한다.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죽음을 이해해야 하며, 삶과 죽음을 갈라놓는 모호한 경계선 위에서 일상적으로 줄을 타보아야 한다”고. 결국 잘 살기 위해서라도 죽는 법을 배워야 하는 셈이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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