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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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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에서 온 남자 별이라 불리는 여자

<별은 내 가슴에>와 <별 그대>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등록 2014-01-09 08:33 수정 2020-05-02 19:27
<별에서 온 그대>는 톱스타의 사랑을 다루는 드라마지만, 한편으로 판타지의 외피 아래 편재된 대중의 시선 안에 놓인 여배우의 고충을 드러내기도 한다.SBS 제공

<별에서 온 그대>는 톱스타의 사랑을 다루는 드라마지만, 한편으로 판타지의 외피 아래 편재된 대중의 시선 안에 놓인 여배우의 고충을 드러내기도 한다.SBS 제공

연예인은 곧 스타다. 연예인을 소재로 한 드라마들의 제목에 자주 ‘별’이 들어가는 이유다. 이 분야의 원조인 MBC 가 대표적이고, SBS 도 유명했으며, 최근에는 SBS (이하 )가 그 계보를 이어받았다. 이들은 제목 외에도 톱스타의 사랑을 그린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1997년작 와 사이에는 17년이라는 방영 시차만큼이나 변화된 연예계의 현실이 가로놓여 있다. 에서 소재로 다뤄진 톱 여배우의 우울증과 죽음에서 의 주연이자 톱스타였던 최진실을 비롯한 우울증 연예인들의 슬픈 그림자가 어른거리듯이. 그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관음증과 연민 사이에 선 연예인

1990년대는 스타가 말 그대로 하늘의 별처럼 모두가 우러러보는 신화적 존재와 같았던 시대다. 인터넷이 대중화하기 전이어서 스타에 대한 정보도 부족했고, 톱스타들은 신비주의 전략으로 이미지를 보호할 수 있었다. 이 시기 스타 판타지 드라마는 두 종류로 나뉜다. 평범한 일반인이 톱스타의 사랑을 받거나, 스타라는 꿈을 향해 달리는 스타 탄생기거나. 전자가 백마 탄 왕자의 또 다른 이름인 스타와 결혼하는 변주된 신데렐라 판타지라면, 후자는 개인이 스스로 신분 상승을 이뤄낼 수 있는 성공기 판타지였다.

같은 해 방영된 와 는 그 양쪽을 대표하는 작품들이다. 가령 에서 톱스타 강민(안재욱)이 자신을 동경의 눈으로 바라보는 팬들에 둘러싸인 채 저 높은 무대 위에서 내려와 가난한 연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은 아직까지도 스타 로맨스판타지의 정점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회자된다. 는 스타를 꿈꿨으나 과도한 욕망으로 파멸하는 혜진(황신혜), 야망은 없지만 타고난 미모와 착한 성품으로 스타가 되는 혜원(이승연) 자매를 통해 스타 성공 신화의 양면성을 그려냈다.

2000년대 들어 스타를 둘러싼 환경은 크게 변화한다. 연예매니지먼트 시스템이 정착하며 스타는 탄생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존재가 되었고, 인터넷 대중화와 리얼리티쇼 유행으로 신비주의 시대가 종료됐다. 2003년작 는 이 변화된 시대의 징후를 반영했다. 톱스타와의 사랑, 스타 성공 신화의 양면성을 동시에 그리며 스타판타지 드라마의 두 특징을 계승하면서도, 연예매니지먼트 권력, 스캔들을 확대재생산하는 연예저널리즘의 위력 등 21세기 연예산업의 달라진 환경을 극 안에 녹여냈다.

하지만 연예계에 더 큰 변화를 불러온 사건은 2005년에 일어났다. 바로 ‘연예인 X파일’ 유출과 톱스타 이은주의 자살 사건이다. 온라인 연예 게시판을 통해서나 유통되던 연예계 소문이 집대성된 ‘연예인 X파일’은 인터넷 사용자들과 연예뉴스에 의해 확대 유포되며 당사자인 연예인들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그 여파가 가시기도 전에 이은주의 소식이 이어졌다. 그녀가 평소 우울증을 앓았고 X파일 유출 이후 괴로워했다는 보도는 화려해 보이는 연예계 이면의 현실을 환기시키는 계기가 됐다. 두 사건은 결과적으로 스타에 대한 대중의 이중적 시선을 낳았다. 하나는 ‘연예인 X파일’이 상징하듯 스타에 대한 관음적 태도이고, 또 하나는 그들도 평범하고 연약한 존재라는 연민의 태도다.

화룡점정, 천송이를 연기하는 전지현

이후의 연예인 소재 드라마들이 연예계를 현실적으로 재현하고, 연예인의 고충을 다층적이고 깊이 있게 다루는 방향으로 전환된 것은 이러한 배경이 작용했다. 예컨대 SBS 와 KBS 은 연예계를 판타지나 동경의 대상으로 다루지 않고 사실적으로 접근해 화제를 모았고, MBC 과 MBC 에브리원 는 ‘생계형 연예인’들의 고뇌를 다뤘다.

현재 방영 중인 또한 판타지의 외피 아래 연예인의 고충을 현실적으로 그려내는 작품이다. 특히 과거에 비해 더욱 편재된 대중의 관찰적 시선 안에 놓인 여배우들의 고충이 잘 드러난다. 톱스타 천송이(전지현)는 언제 어디서 사진을 찍힐지 모르는 집단 파파라치 시대의 스트레스와 모공까지 들여다보이는 고화질(HD) TV 시대 외모 관리의 압박감에 늘 시달린다. “하루 사과 한쪽, 양배추 반쪽”만을 먹는 혹독한 다이어트가 일상이고, 맹장이 터져나가기 직전이어도 완벽 치장을 마친 뒤에야 병원을 찾는 이유다.

다시 말해 는 톱스타 천송이의 캐릭터를 통해 변화된 연예계의 현실을 읽을 수 있기에 더 흥미롭다. 그런 점에서 라는 제목은 스타가 평범한 명사로 전락한 시대의 아이러니를 드러낸다. 무엇보다 과거 신비주의 스타의 대명사였던 전지현이 천송이를 연기한다는 것은 실로 의미심장한 화룡점정이라 하겠다.

김선영 TV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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