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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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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들갑을 떨어서라도 단단히 물에 대비하라

큰 물길 잡기 위해 가져다부은 바위
잡목뿌리보다 못해, 작은 물길 잡는 데는
배수로가 최고
등록 2013-09-13 08:51 수정 2020-05-02 19:27

남향(南向)과 배산임수(背山臨水)는 고래로 우리네 집터 잡기의 제일 덕목이었다. 야트막하게 남으로 트인 산자락에 문전옥답(門前沃畓)이 있고 여기에 물을 댈 개울이 있는 곳이면 최고의 집터였다. 살아보니 다 맞는 말인데 그래도 배산(背山)에 관하여는 좀 주의가 필요함을 절실하게 느껴 유경험자의 호들갑을 노파심 삼아 소개할까 한다. 신록 봄길 어슬렁 산책에 썩은 가지들 주워 난방도 돕고 산나물 모아 찬거리도 좋지만 한여름 지나보면 공짜는 없다는 말이다.

작은 물길 잡는 데는 역시 배수로 설치가 최고다. 나의 도사급 일 친구들과 만든 가로 40cm에 높이 20cm의 물길. 기와를 얹어 멋을 좀 부렸다.

작은 물길 잡는 데는 역시 배수로 설치가 최고다. 나의 도사급 일 친구들과 만든 가로 40cm에 높이 20cm의 물길. 기와를 얹어 멋을 좀 부렸다.

최근 들어 게릴라성 집중호우가 이곳저곳에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하는 바람에 집 뒤에 산이 있는 곳이라면 물길 내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게 되었다. 이 정도면 괜찮겠거니 하면 안 된다. 지진이나 해일보다 규모는 작을지언정 물 피해도 큰 것 한 방이 문제다. 물이 한 번 ‘왕창’ 흘러 물길을 내놓으면 그다음부터는 비의 규모에 상관없이 피해가 커진다. 그러니 좀 호들갑을 떤다 할 정도로 단단히 대비하는 것이 필수다. 주섬주섬 내 경험을 바탕으로 요약하니 댓글로 집단지성의 완성을 촉구한다.

우선 큰 물길 잡기부터 보자. 뒷산 계곡을 타고 내리는 급류는 막으려다가는 큰코다친다. 물은 잘 흐르도록 물길을 터줘야 하고 흐를 때 옆면이 무너지지 않도록 잡아줘야 한다. 그러니 계곡 옆면의 잡목이나 바위를 함부로 들쑤시면 안 된다. 굴착기로 집채만 한 돌을 힘들여 가져다놓아도 빼곡하고 끈질긴 잡목 뿌리만 못하다. 뿌리를 제거하지 말고 보강해주는 것이 순리다. 나는 우연히 접한 영국 하천관리를 흉내 내어 이른 겨울 버드나무 가지를 잘라 천변에 박아놓은 버드나무 말뚝에 발 엮듯이 엮고 배후를 흙으로 메꾸어 방죽을 만들어놓았는데 몇 년 지나니 뿌리가 내리고 무성해 세찬 폭우를 아직까지 잘 견뎌내고 있다. 관심 있는 분들은 ‘Willow Spiling’(버드나무 말뚝)으로 검색하시면 예상외의 수확도 가능할 것이다.

또한 물은 땅 아래가 아닌 땅 위로 흐르도록 두어야 한다. 물길 매설은 보기에는 좋아도 막히면 물이 그대로 집으로 들이치니 끝장이다. 피치 못하게 매설했다면 집중호우시 수시로 살펴야 한다. 나뭇가지 하나가 배수구에 걸리면 엎치고 덮쳐 순식간에 막혀버린다. 또 하나 조심할 곳이 축대 쌓은 곳이다. 배수를 위해 축대 뒷면에 잡석을 부은 곳이라면 축대 하부 배수로 설치가 필수다. 축대가 야트막해 물 고임이 많지 않다면 유공관이라고 하는 구멍 숭숭 뚫린 주름관을 망사 종류로 둘러싸서 묻어 배수구로 연결하면 도움이 된다.

작은 물길 잡기는 역시 배수로 설치가 최고다. 나는 방학 동안 시간을 내어 나의 도사급 일 친구들과 시멘트를 개어 돌로 산 아래에 물길을 만들어놓았는데 이끼가 끼고 세월의 더께가 얹히니 맨들맨들한 관급공사 시멘트 물길은 저리 가라다. 그 밖의 작은 물길은 집 안팎의 배수구와 지붕 위에 있다. 장마철이 다가오면 배수구에 막힌 곳이 없는지, 맨홀 근처가 부실해 지반 침하가 없는지 살펴야 한다. 특히 지붕 위의 빗물받이는 필수 점검 코스다. 낙엽과 오물로 물 흐름이 막히면 빗물이 그대로 집으로 들이치니 미리 손볼 일이다. 물받이 홈통 또한 새들이 집을 짓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으니 새들에게는 미안하지만 필수 점검 코스다.

마지막으로 고인 물 빼주기도 고려 사항이다. 지대가 낮아 배수로 연결이 어렵다면 벙어리 하수도를 통한 자연 배수도 고려할 만하다. 물이 괴어 자주 질척해지는 곳을 넓고 깊게 파서 다량의 잡석을 넣어놓으면 물이 이곳에 모여 있다가 서서히 땅속으로 스며드는 구조다.

사족 하나 달아 변명으로 글을 마친다. 지진이 나면 피해 입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지진계를 부수는 일이라는 우스개가 있다. 지진계는 사후 설명은 해주지만 사전 예방은 못해주기 때문이란다. 나의 경험 소개는 지진계와 같은 것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강명구 아주대 사회과학대학 행정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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