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는 한국 사회에서 과잉 상태이면서 동시에 과소 상태다. 그들에 대한 (부정적인) 관심과 호명은 그들의 실재에 견줘 분명 차고 넘친다. 사이트를 강제 폐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는 건, 그들이 누군가에게는 현존하는 체제 위협 세력으로 간주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들은 오프라인에 단 한 걸음도 발을 내딛지 않았고, 그럴 의지도 전혀 없을뿐더러, 오히려 그것을 경계한다는 점을 간과했다. 그리고 이런 과잉된 평가는 정작 그들에 대해 한국 사회가 아는 게 별로 없다는 방증이다. 일베를 둘러싼 그동안의 담론은 ‘텅 빈 소음’이 아닐까.
일베, 명사 전에 형용사와 부사사람 매거진 9월호는 일베의 재정의를 시도한다. 접근 방식에서 가장 먼저 발견되는 차이는 일베를 단일한 정체성의 인격 집단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베는 개별자들의 정체성의 합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어떤 성격이 외설적으로 드러나는 징후적 현상이다. 일베는 명사(존재)이기 전에 형용사(상태)이고, 심지어 부사(정도)이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 안에 감춰진 모습의 일부가 반사된 거울상일 수도 있다.” 그러고는 일베에 관한 질문의 구조를 뒤집는다. ‘일베는 누구인가’에서 ‘누가 일베인가’로. 얼핏 동어반복 같아 보이지만, 전자는 일베에 대한 ‘타자화’를 내포하고 후자는 ‘우리 안의 일베’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점에서 대비된다.
일베를 타자화하는 태도는 무엇보다 진영의 시각에 갇히기 쉽다. 은 일베에 대한 이제까지의 분석에 그런 혐의를 두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문제의식에 따라, 일베에 대한 실증적 접근과 계보학적 접근을 동시에 시도한다. 실제 일베 회원(헤비 유저는 아니다)을 만나 장시간 인터뷰를 한다. 서울의 어느 4년제 대학에 다니고 현역 군필자인 그는 나름대로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다. 자신을 보수주의자로 규정하지만, 정작 사고와 행동은 진보·보수 어느 쪽에도 온전히 속하지 않는다. 일베를 철저히 현실과 분리된 가상의 ‘유희 공간’으로만 인식하고, 사회 구성원 각자의 책임을 유난히 중시한다는 점에서 차라리 개인주의자에 가깝다는 게 이 매체의 판단이다. 그렇다면 일베스러움은 오늘날 젊은이들의 세대적 특성일까. 은 다르게 접근한다. 가깝게는 민주·진보 진영 사람들의 언행에서, 멀게는 (다수가 친일파가 된) 구한말 지식인들의 사회진화론에서 기원을 찾는다.
게임의 룰로 대립할 뿐 서로 가역적“구한말 계몽주의 엘리트들의 사회진화론은 100년의 세월을 건너 오늘날 민주·진보 진영에 전승되었다. 후대는 그 알속인 근대적 힘의 논리뿐 아니라 그 부산물인 약자에 대한 대상화·수단화, 우생학까지 승계했다. (…) 같은 힘의 논리를 따르는 친일이나 독재의 대칭적 거울상이기도 하다. 양쪽은 게임의 룰을 놓고 대립할 뿐 서로 가역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면서도 정작 계몽 대상인 약자에게는 철저히 폐쇄적이다.” 일베에 대한 계보학적 접근은 결국 누가 일베의 ‘인큐베이터’인가를 가리키는 화살표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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