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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그림에서 무엇이 보이나요

옛그림 속에 담긴 의미와 상징의 세계를 재미있게 풀어낸 허균의 <옛그림을 보는 법>
등록 2013-08-29 13:55 수정 2020-05-03 04:27

“우리 선조들은 대상을 바라보되 외형에 집착하지 않고 일정 거리를 두고 주관적 감성으로써 관조했다. 예컨대 소나무를 두고도 외관의 아름다움보다는 한겨울에도 푸른 생태적 속성을 사랑했고, 소나무에서 옛 성현들의 환영(幻影)을 찾는 데 더 관심을 두었다. 이와 같은 사고 구조는 개인적 차원의 것이 아니라 당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을 숭상하고 무엇을 꿈꿨는가

여기, 조선 초기 선비 화가인 강희안의 (高士觀水圖·사진)가 있다. 물을 쳐다보는 한 선비의 모습에서 무엇이 보이는가. 선비는 그저 수변의 경치를 구경하는 것일까? 허균 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은 ‘그림의 주인공이 주시하는 것은 물가의 경치가 아니라 도체(道體)로서의 물’이라고 말한다. 산수화에서 자연과 인간의 본성을 비춰주는 거울 같은 물을 통해 자연의 이치를 관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강희안의 , 15세기경, 종이에 수묵, 국립중앙박물관. 허균 소장은 “그림의 선비는 물가의 풍경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이치를 물을 통해 관조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돌베개 제공

강희안의 , 15세기경, 종이에 수묵, 국립중앙박물관. 허균 소장은 “그림의 선비는 물가의 풍경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이치를 물을 통해 관조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돌베개 제공

역시 아는 만큼 보이는 법. 이름하여 ‘안목’이다. 허 소장의 (돌베개 펴냄)은 우리 옛그림을 모두 13장의 주제로 나눈 뒤, 그것을 드러내는 대표 작품을 선별해 그 속에 담긴 의미와 상징의 세계를 풀어낸 책이다. 그림에 담긴 ‘상징’을 매개로 한 이 책은, 우리 옛 미술품에 관심은 있지만 어떻게 봐야 할지 몰랐던 독자가 쉽게 우리 그림의 특징을 이해하고, 나아가 그림을 제대로 즐길 수 있게 해준다.

지금 우리가 주로 보는 옛그림은 대개 선비들이 남긴 작품이다. 선비들은 어떤 것을 그리고 싶었을까. 그들은 고대 성현의 행적과 정신세계를 흠모했다. 이런 마음은 중국 고사에 등장하는 일화, 성현이 남긴 시문의 내용 등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방식으로 드러났고, 차츰 자신의 선대 전반을 미화하는 경향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조선 선비들이 많이 남긴 산수인물화, 고사인물화, 시의화(詩意畵) 등을 이해하려면 그들이 무엇을 숭상하고, 그림을 통해 무엇을 꿈꿨는지 아는 것이 먼저다. 이 책에서는 그림의 모태가 되는 다양한 고사와 일화, 시문 등이 상세하게 소개돼 있다. 곁들인 원문은 좀더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엄숙한 유교적 정신 문화도 인간의 본능적 욕구를 모두 제어하진 못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인간의 공통된 세속적 욕구는 많은 자손을 거느리고 부귀와 안락을 누리며 병 없이 오래 살고 싶은 것일 터. 이러한 욕망은 길상(吉祥) 장식미술의 발달을 가져왔고, 구체적 기원은 여러 가지 상징형을 통해 표출됐다. 아들 낳기를 바라는 마음은 석류·수박·포도 등 씨앗이 많은 소과(蔬果)류나 남아의 성기를 닮은 오이·가지 등을 통해 표현됐고, 장수에 대한 욕망은 수성노인도·십장생도 등에 의탁됐으며, 집안 평안, 부귀에의 소망은 모란꽃·화조화 등에 담겼다.

우리 옛그림의 다양한 화풍

이 책에는 그림을 다룬 책답게 많은 도판이 수록돼 있다.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드러낸 대표작을 엄선해 이 책의 도판들만 일별해도 우리 옛미술의 특징을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그동안 익히 보아온 산수화나 사군자화 또는 대중적으로 익숙한 화가들의 작품을 넘어서서 미처 접해보지 못했던 우리 옛그림의 다양한 화풍을 접할 수 있는 것이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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