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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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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의 ‘결점적 순간’

‘40대 후반의 회사원’ 한창민씨가 트위터에 올린 60여 점 사진 건 전시회 ‘지난 일년’
등록 2013-03-16 14:32 수정 2020-05-03 04:27

첫 번째 사진전이다. 사진전인데, 작가는 사진을 한 번도 배운 적 없다. 작가에겐 카메라도 없다. 이 정도 전시라면 기대는 접어야 맞다. 하지만 한창민의 사진전이 열리는 서울 효자동 서촌갤러리를 한 바퀴 돌았을 때 든 생각은, 사진을 배우지 않은 이가, 그것도 아이폰으로 찍어낸 이 사진들이 만만치 않게 시선을 잡아챈다는 점이다. 볕이 잘 드는 전시장 벽에 놓인 사진 60여 점은 모두 한창민의 트위터 계정(@tWITasWIT)에 올라와 있던 이미지다.
하루에 10장, 연간 1만 장을 ‘트친’에게

왼쪽부터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에 헌정, 겨울의 얼굴, 마지막_잎새, 공중_부양, 눈을 들어 하늘을 보니

왼쪽부터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에 헌정, 겨울의 얼굴, 마지막_잎새, 공중_부양, 눈을 들어 하늘을 보니

그의 사진은 한 가지 주제나 대상으로 모이지 않는다. 대신 매일매일의 다른 발견과 포착이 있다. 빨간 벽 위의 나뭇잎, 눈 오는 날의 하얀 벽, 흐린 날 비친 그림자, 앞에 마주한 여인의 모습, 전봇대를 피해 그려진 노란 차선까지. 사진으로 적어내린 순간의 일기를 훔쳐보는 기분이다. ‘지난 일년’이라는 전시 제목은 한창민의 사진처럼 솔직하다. 별 거창한 일이 아니라는 듯 아이폰을 손에 든 사진가는 “트위터를 2년 정도 하다보니 새로운 놀잇거리가 필요해졌다”고 말한다. 놀잇거리라고 하기엔 집중한, 집착의 예술이라고 하기엔 큰 욕심이 보이지 않는 사진을 그는 1년간 무려 3500장이나 ‘인스타그램’(이미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다. 온라인상에 올리지 않은 사진까지 포함하면 연간 1만여 장을 찍었고, 하루에만 10장 정도의 사진을 ‘트친’(트위터 친구)들에게 선보인 셈이다.

“우스갯소리로 항공촬영과 수중촬영 빼고는 다 해봤다고 사람들에게 말한다”는 게 정답이다. 그의 사진은 생활에서 시작해 우주 끝까지 담아낼 요량인 듯 소재 불문, 주제 불문이다. 날씨가 기막히게 좋았던 4월의 어느 일요일 그가 찍은 포도주잔은 으로 트위터에 올라왔고, 사무실 부근에서 두 번 마주친 노부부의 뒷모습이나 여행을 떠난 제주도에서의 풍광은 한 사람의 눈에 투사된 장면이라기엔 놀랄 만큼 다채로운 리얼리티의 거리를 조망한다.

사진이나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40대 후반의 회사원으로’ 자신을 설명하는 한창민씨는 사실 편집장,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사무국장 등으로도 일하며 텍스트나 콘텐츠 편집, 정보기술(IT)과 그리 멀지 않은 일을 해왔다. 그래도 전시를 연다는 일은 그에게 상상치 못한 일이었다. “서촌갤러리 장영승 대표가 친구인데 트위터에 올린 사진들을 보고 어느 날 ‘너 빛을 좀 읽는구나’라는 말을 했다.” 그 뒤로 전시하라는 말을 여기저기에서 듣곤 했는데 계속 빼기만 하다가 친구가 서촌갤러리를 개관하며 전시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왼쪽부터 레모네이드, 찍을 땐 몰랐는데 잠자리가… 그림자까지 두 마리, 해와 구름과 나무를 삼킨 못, 저 버스를 탈 수 있으려나, 깔_맞춤, 예수_냥이, 도찰=길거리 촬영 오늘 우연히 사진전 포스터_2로 쓸 만한 장면을 건졌다…

왼쪽부터 레모네이드, 찍을 땐 몰랐는데 잠자리가… 그림자까지 두 마리, 해와 구름과 나무를 삼킨 못, 저 버스를 탈 수 있으려나, 깔_맞춤, 예수_냥이, 도찰=길거리 촬영 오늘 우연히 사진전 포스터_2로 쓸 만한 장면을 건졌다…

아이폰 4S로 찍은 사진들은 그가 거리를 이동하며 발견한 생활의 풍경이 대다수다. 여기에서 각도를 잡고 거리를 조정하고 상황을 잡아채는 그의 섬세한 감각이 발휘된다.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고개를 살짝 돌려 찍은 장면, 비 오는 날 창에 ‘반사된’ 나뭇잎, 맛난 음식을 가까이서 찍어 담아낸 추상화 같은 이미지까지 ‘한 손으로’ 찍을 수 있다는 아이폰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한 ‘순간 포착’이 눈부시다.

그는 대상을 발견해 찍는 순간 사진이 스스로 자라나 변신하는 것을 또 한 번 발견한다. 이를테면 지난해 5월 17일 촬영한 사진 는 바닥의 거울 파편을 촬영했지만 나중에 보니 사진을 찍는 자신의 모습이 담긴 독특한 자화상이 돼 있다. 이라 이름 붙인 사진은 이동하는 한 남자의 모습을 아래로 내려다보며 찍은 것인데, 남자 바로 곁에는 ‘걷는 동작의 조각상’이 있어 위트 넘치는 도시 풍경이 된다. “수서역을 지나는데 한 번도 이용해본 적 없는 출구를 걸으며 지나가는 남자를 내려다보았고 그 순간 스마트폰을 꺼내 즉각적으로 찍은 장면이다. 브레송이 ‘결정적 순간’을 찍었다면 난 ‘결점적 순간’을 찍는 것 같다. (웃음)” 그가 아이폰으로 인상 깊은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가 시시각각 변하는 생활의 여러 장면에 눈과 손을 열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 형님에게 감사를”

한창민은 트위터에 올린 사진을 인화하려고 수천 장의 사진을 고르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너무 많이 찍었구나” 생각했단다. 지난 1년 동안 그의 사진을 자라게 한 것은 트위터에 올라오는 사진들에 대한 반응이었다. 전시가 열린 뒤에도 트위터상에 계속되는 ‘한창민 형’에 대한 사람들의 뜨거운 애정과 전시평은 그가 어떤 눈으로 세상을 바라봐왔는지 짐작하게 한다. “나 같은 회사원이 전시를 하게 된 것, 첫째로 스티브 잡스 형님에게 감사를 보낸다. 모든 게 IT 기술 때문이니까. 또 SNS로 나를 향해 보내는 즉각적인 반응 때문에 신나서 더 찍게 됐다.”

전시장에서 온라인에 올라 있던 사진을 다시 보는 경험 자체가 그에게는 의미 있다. 전시장에서 사진을 본 이들은 먼저 사진의 크기에 ‘깜놀’한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오래 산보하듯 한창민의 사진 곁을 서성인다. 액정과 모니터에서 걸어나온 사진을 본 뒤 계속 그 사진들이 눈에 아른거린다는 트친들의 응답이 뜨겁다.

글 현시원 독립 큐레이터ㆍ사진 한창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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