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은 본질적으로 불안한 존재이고, 또 불안해야 할 존재이다. 지식인과 안정은 양립하지 않는다. 자신의 존재론적 근거를 묻지 못하는 지식인은 다른 사람들의 삶에 개입할 수 없다.”
2001년 자신이 편집주간으로 있는 가을호 권두언에서 김명인 인하대 교수(국문과)는 지식인의 존재론적 숙명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로부터 11년이 지났지만, 2007년 평론집 이후 5년 만에 펴낸 새 책 (돌베개 펴냄)를 보면 그는, 여전히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며 불안해 보인다.
1970~80년대 군부독재에 저항하다 두 번이나 감옥살이를 한 학생운동가였고, ‘광주’를 공론화한 와 박노해의 등을 펴낸 출판사의 편집장이었으며, 1980년대 후반에는 힘있는 문체로 문학을 통해 세상을 바꾸고자 한 민중문학평론가였던 그가 영국 런던에서 방문교수로 6개월 동안 머무르며 기록한 사적인 이야기를 책으로 묶었다. 1997년 그가 펴낸 독일기행기 처럼 인문학적인 시선이 담긴 여행 이야기를 기대했지만, 책은 “마음길을 따라 걸었던 기행문”에 가까웠다.
그 무렵 급격히 나빠진 건강 탓에 런던에서 보낸 6개월은 요양의 시간, 혹은 오롯이 나만의 세계에 침잠하는 “자발적 유폐의 시간”이었다. 이 일기에는 홀로 “먹고 자고 읽고 아프고 견디고 했던 나날의 일상이 들어 있고, 삶을 끝없이 옥죄고 가두고 벌주는 오래된 기억들이 언뜻언뜻 드리워져 있으며, 그 일상과 기억들과 나머지 이리저리 얽힌 삶의 가닥들에 대한 계통 없는 생각들”이 펼쳐져 있다. 그는 이곳에서 “격별과 유적(流謫)의 시간”을 보냈고, 그간의 삶을 돌아보며 뒤엉킨 가닥들을 매만졌다. 여기에는 지나온 시간을 상기시키는 깊숙하고 아릿한 마주침이 있다. 런던으로 떠나기 전부터, 오랜만에 혼자라는 사실은 30년 전 2년8개월 동안의 감옥살이 독방 시절을 되살렸다. 런던에서 S형과 만날 약속을 하고, 조악한 등사기로 인쇄한 유인물을 옷깃에 감추고 신림동·봉천동 골목길을 함께 떠돌던 시절을 떠올렸다. 테리 이글턴의 책을 읽으며 죄르지 루카치와 뤼시앵 골드망을 경전처럼 읽던 시절을, 집 안에서 김 서린 창문을 바라보며 감옥 시절 창살 바깥으로 내다보던 “흰 바람벽과 검은 지붕과 잿빛 하늘”을, ‘근태 형’의 부음을 듣고는 31년 전 바로 이맘때 남영동에서 보낸 치욕의 시간을 떠올린다. 런던의 작은 방에서 자꾸만 맴돌며, 아련한 노스탤지어와 슬픔과 부채감에 휩싸여 홀린 듯이 과거로 되돌아간다. 31년 전의 감옥살이, 바로 지금 그의 삶이 출발한 곳이다.
“그 순간 나는 몇 겹의 시간의 장막을 뚫고 31년 전 바로 이맘때의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 515호로 잠시 돌아갈 수 있었다. 그 치욕의 시간, 그 치욕의 장소. 나는 거기서 죽음의 공포를 겪었고 예수를 세 번 부정한 베드로처럼 내 양심을, 내 의지를 부정해야 했다. 하지만 근태 형은 더 이상 그 공포와 치욕을 모면할 수단을 갖지 못했다. 나는 근태 형을 비롯해 이미 저들이 잘 알고 있 는 명망 있는 선배 운동가들을 팔 수 있었지만, 그에겐 더 이상 팔 누군가가 없었다. 그는 내가 살아났던 그 515 호실에서 그 치욕과 공포를 고스란히 견뎌야 했고, 그것 은 모든 것을 그의 목숨과 바꾸는 일이었다. 그의 죽음 은 그때 시작되었고 2011년 12월30일에 끝난 것이다. 나 는 그의 영전에 가서 수백 번도 더 뉘우쳐야 했다.”
1970~80년대 기억 둘러싼 힘겨운 싸움
은 젊은 날의 열망과 다짐, 옳다 고 믿는 ‘신념’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이의 ‘실존적 투쟁’의 기록이다. 이 책은 지금의 그를 형성한 1970~80년대의 기억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힘겨운 싸움을 담고 있다. 그 는 젊은 시절 경험한 생의 충격으로 이런 방식으로밖에 살 수 없었다고 말한다. “경찰에게 개처럼 끌려가던 선배 들” “공장과 거리에서 비참하게 살아가던 동년배들”의 모 습을 보며 “저 사람들을 두고 내가 행복하게 살 수는 없 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안락하고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것에 대한 유혹, 아니 그것까지는 아니더라도 문제를 회 피하거나 적당히 넘어가고 싶은 유혹, 혹은 온건하고 균 형 잡힌 사람 소리 들으면서 살고 싶은 유혹, 나의 지식 과 인맥 등에 적당히 기대서 명성이나 쌓고 미시권력이 나 누리며 살다 가고 싶은 유혹”에 늘 시달리지만, 그를 지탱한 것은 자신의 말에 대한 책임, 함께 살아가는 사 람들에 대한 책임이었다.
“여전히 진보와 희망을 얘기하는 사람들 가운데 다수 는 좌파의 완장을 자랑스럽게 두른 채 아무런 자의식 없 이 힘센 극우 신문과 혼숙함으로써 자신들의 신념을, 자 신들의 언어를 우스꽝스럽게 만들고 있다. 그런데 그 친 구는 그러지 않았다. 아마 혁명의 열정은 버렸겠지만, 그 에게는 여전히 더 나은 사회에 대한 꿈이 있다. 10년 전 에 그랬듯이 그의 글은 지금도 여전히 사회적 소수파를 옹호하고 기존의 굳은 권력 관계에 저항하며 사회를 조 금씩, 앞으로 밀어내고 있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그를 좌파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고종석의 김명인에 대한 이런 표현처럼 클래식과 오디 오에 대한 남다른 애착과 책의 곳곳에서 드러나는 소비 욕에도 불구하고 그를 좌파라 부르지 않을 순 없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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