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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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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그스토어, 중심가를 점령하다

중저가 화장품 매장에 밀렸던 드러그스토어, 천연화장품 등 특화로 확장세
온라인 입소문 탄 외국 브랜드 빠르게 수입해 화장품 브랜드 매장과 차별화
등록 2012-11-23 19:37 수정 2020-05-03 04:27

서울 강남역은 대한민국 화장품 쇼핑 지도의 축약형이다. 지하상가의 옷가게들 사이로 중저가형 브랜드가 늘어섰다. 병원과 어학원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땅값 비싼 이곳에선, 분위기 대신 붐비는 길목을 택하는 전략이리라. 그런데 지난 6월 강남역 앞에 991㎡(약 300평) 규모의 대형 매장이 문을 열었다. 신세계 계열의 드러그스토어 ‘분스’다. 두 달 뒤에는 카페베네 계열의 드러그스토어 ‘디셈버24’가 바로 맞은편에서 영업을 시작했다. 강남역에서 역삼역으로 가는 쪽 출구에는 GS그룹의 ‘왓슨스’가 일찌감치 포진해 있던 터다. 10월 말 기준으로 전국에 235개 매장을 가진 ‘CJ올리브영’은 골목골목 숨은 5개 매장으로 역을 둘러싸고 있는 형국이다.

드러그스토어가 3천억원대 시장으로 부상하면서 신세계와 카페베네 등 기업들이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 서울 강남역에 마주 보고 있는 두 드러그스토어 매장, 디셈버24(위 왼쪽)와 분스. 디셈버24 제공, 분스 제공, 분스 제공

드러그스토어가 3천억원대 시장으로 부상하면서 신세계와 카페베네 등 기업들이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 서울 강남역에 마주 보고 있는 두 드러그스토어 매장, 디셈버24(위 왼쪽)와 분스. 디셈버24 제공, 분스 제공, 분스 제공

깨알 같은 취향의 드러그스토어

화장품 쇼핑 지형도가 빠르게 바뀌고 있다. 2000년 중반부터 저가 화장품 브랜드들의 독립매장 시대가 시작됐다. 우리나라 화장품 시장이 백화점을 중심으로 한 고가 매장과 저가의 독립매장으로 양극화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드러그스토어란 약국에서 주로 팔던 일반 의약품이나 건강기능식품 외에도 화장품, 생활용품, 음료 등 다양한 제품을 판매하는 복합 점포를 말한다.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미용 관련 제품이 반 이상을 차지한다. 드러그스토어 원조인 미국의 ‘월그린스’, 일본 최대 체인으로 성장한 ‘마쓰모토 기요시’, 영국 어느 동네에나 있는 ‘부츠’ 등이 저렴한 가격과 다양한 품목을 경쟁력 삼아 경기침체에도 매년 5% 이상씩 매출을 늘릴 동안 우리나라의 드러그스토어는 10년 가까이 고전해왔다. 화장품이나 미용용품이 주력상품인 우리나라의 드러그스토어가 저가 독립 브랜드 매장 사이에서 제자리를 찾기 어려웠던 때문으로 분석된다. 뷰티 칼럼니스트 이나경씨도 “미국은 중저가를 대표하는 브랜드가 적지만, 한국은 저가형 로드숍과 화장품 전문점이 이미 있는 상황에서 그동안 차별화된 드러그스토어 매장이 적었다. 지금 드러그스토어는 미국이나 일본형보다는 세분화된 취향을 노리는 유럽형으로 가고 있는 추세”라고 했다. 유럽의 드러그스토어에서는 아토피, 예민한 피부, 천연화장품 등 특성 있는 브랜드들이 자리잡았다고 한다.

강남역 근처에서 드러그스토어 1라운드를 시작한 분스와 디셈버24를 둘러보니 드러그스토어의 변화가 눈에 띈다. 우선 온라인에서 입소문을 탄 외국 화장품들이 일제히 들어왔다. 디셈버24는 미국의 ‘이집션 매직크림’이나 ‘양키캔들’ 등을, 분스는 병원 피부과에서 팔리던 ‘키너레이즈’나 ‘마리오 바데스쿠’ 제품 등을 들여왔다. 유럽의 유기농 화장품으로 순위를 다투는 ‘벨레다’와 ‘라베라’를 두 드러그스토어가 각각 경쟁적으로 들여온 것도 재미있다. 분스 쪽은 “건강상품을 포함해 총 100개가 넘는 브랜드를 들여왔다”고 한다. 디셈버24 쪽도 “강남역과 사당역 2개 매장에서 200개 브랜드의 5천여 가지 물품을 팔고 있다”고 했다. 강남역 분스 매장에서 보니 여행용 화장품 코너에만 150가지 종류의 상품이 놓여 있었다. 드러그스토어는 깨알 같은 취향의 진열대다.

지금까지 화장품 시장은 또 다른 의미에서 양분돼 있었다. 이미지와 서비스를 등에 업은 백화점과 달리 온라인 화장품 시장은 철저히 입소문과 실용성 위주였다. CJ올리브영과 왓슨스를 포함해 드러그스토어는 온라인의 입소문에 반응하는 속도가 빠르다. 일상적으로 해외 쇼핑을 하는 사람들이 늘자 이들이 전하는 외국 화장품 정보에 우리나라의 드러그스토어가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 것이다. 뷰티 블로그 ‘장윤정의 화장품 이야기’를 운영하는 장윤정씨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똑똑한 사용자는 화장품 성분을 따진다고 했지만 지금은 공장을 따진다. 브랜드가 달라도 우리나라에서 유통되는 화장품 대부분은 공장 2곳에서 만들어진다는 이야기가 있다. 브랜드는 큰 의미가 없다. 우선 믿을 만한 제조원인지를 보고, 그다음에는 가격 대비 성능, 내게 맞는 화장품인지를 살핀다”고 했다. 게다가 남성 화장품 시장이 커진 것도 한몫했다. 장씨는 “올리브영 등 드러그스토어는 생활 편의용품을 팔기 때문에 화장품 매장에 들어가기 꺼리던 남자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고 전한다.

다음 격전지는 홍대 앞

지금 드러그스토어는 3천억원대 시장이다. 드러그스토어들의 2라운드는 서울 홍익대 앞이 될 듯하다. 디셈버24는 12월에 홍대 앞에 매장을 열 예정이다. 분스도 일정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곧 홍대 앞에 매장을 열겠다고 했다. 미샤·스킨푸드·에뛰드·네이처리퍼블릭 등이 한류 쇼핑을 타고 ‘화장품 일번지’ 명동을 점령하고 있는 반면, 드러그스토어는 강남·대학가 등에서 트렌드를 주도하는 안테나숍에 주력하겠다는 전략이다. 화장품 유행의 무게중심이 명동에서 강남으로, 독립 브랜드에서 드러그스토어로 이동하게 될까? 확실한 것은, 오랫동안 권위에 의존했던 화장품 시장은 앞으로 트렌드에 따라 쉽게 요동치는 곳이 되리라는 사실이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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