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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라마를 와 부산 와서 찍노

부산 올로케이션 드라마 <골든타임> <해운대 연인들>, 장소와 사투리만으로 지역색을 드러내는 건 너무 쉬운 선택 아닐까
등록 2012-07-17 07:56 수정 2020-05-02 19:26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그들은 왜 부산으로 갔을까. 두 편의 드라마가 부산에서 올로케이션 중이다. 7월9일 첫 전파를 탄 MBC 월·화 드라마 출연진과 스태프는 4개월 촬영을 목표로 부산에 머무른다. 8월13일 첫 방송 예정인 KBS 은 7월 둘쨋주부터 촬영에 들어갔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문화가 집중하는 가운데,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드라마가 짧은 시점을 두고 동시에 전편 촬영하는 경우는 드물다.

드라마의 지방 촬영은 으레 지역 정서는 배제한 채 장소만 빌리는 식이 대부분이다. ‘먹튀’하지 않고 지역성을 반영하더라도 장소의 정서를 제대로 읽지 못한 이야기는 자칫 타자화된 시선을 시청자에게 고스란히 전달할 위험이 있다. 그래서 지금 시작한, 그리고 곧 시작할 두 편의 드라마를 대하는 시청자의 시선은 조심스럽다.

부산 올로케이션으로 진행 중인 드라마 <골든타임> 촬영 현장. MBC 제공.

부산 올로케이션으로 진행 중인 드라마 <골든타임> 촬영 현장. MBC 제공.

열악한 의료현실과 최대 피서지

두 드라마는 부산이라는 지역을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은 경제·문화를 넘어 의료 영역까지 서울과 수도권에 밀집한 현실에서 대도시인데도 열악한 의료 현실에 처한 공간이라는 계산을 통해 부산을 채택했다. 은 제목에서부터 장소성을 반영한다.

제작발표회에서 을 연출한 권석장 PD는 “좋지 않은 조건 속에서 의사들이 환자를 소생시키려고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제작 의도를 밝혔다. 그러므로 전체 얼개에서 중요한 곳은 병원이지 지역적인 배경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조연출 김상우 PD는 “이른바 ‘빅5’ 병원은 수도권에 몰려 있고, 그렇잖아도 열악한 중증외상센터가 지역에서는 더 힘들게 운영되고 있다는 데 주목했다”고 말했다. 일각을 다투는 환자들이 선택의 여지가 없어 한 병원으로 몰려 생기는 긴박한 상황을 통해 한국 의료 현실의 문제점을 꼬집고 드라마적 탄력도 얻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런 설명이 없었다면 굳이 왜 부산이어야 하는지는 아직 선명하지 않다. 응급실 장면이 대부분인 탓도 있었겠지만 1·2회에서 장소를 규정하는 것은 ‘말’뿐이다. 7번 국도에서 10중 추돌 사고가 일어났다. 극중에서 중증외상센터가 있는 유일하고도 가까운 병원은 해운대세중병원뿐이다. 신음하는 환자들이 밀려온다. 간호사 신은아(송선미)가 후배를 채근하며 외쳤다. “뭐하노 가시나야, 뛰라.” 현지어를 쓰는 신은아의 외침이 없었다면 시청자는 이곳이 부산인지 서울인지 광주인지 오리무중이다. 그러나 어디랄 것 없이 각지의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병원이라는 장소일 텐데, 말만으로 지역을 규정하는 것은 너무 쉬운 선택 아닐까.

은 조직폭력배를 검거하려고 부산을 찾은 검사(이강우)가 사건에 휘말려 기억을 잃고 조폭의 딸(조여정)과 함께 온갖 해프닝을 겪는 로맨틱코미디 드라마다. KBS 홍보실의 설명은 이렇다. “8월이라는 계절의 특성을 많이 반영했다. 해운대는 우리나라 최대 피서지로서 대표성을 가진다. 바다와 도시를 갖춘 공간으로서 부산은 여러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스펙트럼을 가진 공간이라고 판단했다.” 드라마에는 부산의 명소와 해운대가 내려다보이는 초고층 아파트가 등장할 예정이다.

윤이나 TV평론가는 “드라마에서 지역은 주인공의 공간이 아닌 부모님 혹은 조부모님이 사는 곳 등의 이미지나 촌스러운 공간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잦은데, 위험한 시각”이라고 했다. 부산은 거기에 더해 화려한 면만 비친 채 철저히 여행객의 시선만으로 읽힐 위험성까지 있다. 한편 윤이나씨는 “그러나 타자화라는 것은 뒤집어 생각하면 그 지역만의 조금 다른 시간이 흐르는 공간을 보여줄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시선의 아슬아슬한 경계에 대한 설명이다. 그는 좋은 예로 2001년 SBS에서 방영한 와 지난해 호평을 받은 KBS 드라마스페셜 를 꼽았다. 두 드라마는 각각 부산과 전주를 배경으로 삶의 공간으로서 지역을 훑었다. 과 에서도 그런 결을 기대해도 될까.

촌스럽거나 여행객의 시선이거나

올해 상반기 부산에서는 6편의 드라마가 촬영됐다. 지난해 총 5편에 비하면 작품 수가 많아진 셈이다. 영화·드라마 촬영 지원에 적극적인 부산시는 특히 등 올로케이션 드라마를 통해 지역 홍보 효과가 클 것이라 판단해 고무적 반응을 보였다. 부산영상위원회 최근호 제작지원팀장은 침체한 부산 경제에 이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장점으로 꼽았다. “TV는 스크린에 비해 시청자와 닿는 범위가 넓고, 드라마는 방영 중간에 협찬이 붙기도 한다. 지역의 민간 업체들이 중간에 들어갈 기회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그러니 서울을 떠난 두 편의 드라마가 좀 더 욕심을 내보면 어떨까. 어느 비평가가 말한 대로 드라마는 “당대의 이데올로기와 욕망의 저장소이자 자신들이 살고 있는 시공간 문화에 대한 시각적 글쓰기”다. 그런 맥락에서 외부 세계를 제대로 흡수하고 시청자에게 해석해주길 바라는 건 지나친 요구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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