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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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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찾는 석학들, 몸값은?

세계적인 학자들 방한 비용 항공료 빼고도 3천만~4천만원 웃돌아…
베스트셀러 작가, 책 홍보 차원에서 강연료 안 받기도
등록 2012-05-30 12:14 수정 2020-05-02 19:26
한국을 방문했거나 곧 찾을 예정인 해외의 유명 석학들. 왼쪽부터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 제러미 리프킨 미국 경제동향연구재단 이사장, 자크 랑시에르 프랑스 파리8대학 명예교수, 슬로베니아 철학자 슬라보이 지제크.

한국을 방문했거나 곧 찾을 예정인 해외의 유명 석학들. 왼쪽부터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 제러미 리프킨 미국 경제동향연구재단 이사장, 자크 랑시에르 프랑스 파리8대학 명예교수, 슬로베니아 철학자 슬라보이 지제크.

객석 수용 규모 1만 명. 초대장 발행만 1만5천 장.

팝가수 레이디 가가의 내한 공연 이야기가 아니다. 6월1일 서울 신촌동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열리는 마이클 샌델(59) 미국 하버드대 교수의 강연회 이야기다. 국내에서 밀리언셀러에 오른 의 지은이인 샌델 교수는 5월30일부터 6월3일까지 한국에 머물며 강연회와 방송 출연을 한다. 앞서 지난 5월5일에는 등을 쓴 사회사상가 제러미 리프킨(67) 경제동향연구재단(FOET) 이사장이 일주일 일정으로 한국을 다녀갔고, 오는 6월23일에는 슬로베니아 철학자인 슬라보이 지제크(63)도 한국을 찾는다. 이처럼 책에서만 만나던 유명 학자를 국내에서 만난다는 건, 대중이나 학자들 모두 설레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궁금하다. 거물급 학자를 한국 땅까지 움직이게 한 비용은 얼마나 들었을까. 도대체 얼마면 되는 거니?

비즈니스급 항공권·국내 체류비 기본, 강연료 등 옵션

해외 유명 석학의 ‘몸값’은 최근 다녀간 리프킨 교수를 통해 미뤄볼 수 있다. ‘특급’ 수준 강연자인 그의 이번 방한 목적은 정부와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가 연 ‘글로벌 녹색성장 서밋 2012’(GGGS 2012) 연사로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애초 행사를 주최한 청와대가 방한 비용을 부담하려 했으나, ‘민음사’가 그의 방한에 맞춰 의 국내 출판을 진행하며, 방한 비용을 함께 부담하게 됐다.

방한 비용으로는 일반적으로 왕복 항공료와 강연료, 숙박 등 체류비가 든다. 항공권은 비즈니스 클래스를 준비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미현 민음사 홍보부장은 “앞서 청와대가 비즈니스 클래스 항공권을 준비했는데, 리프킨 교수가 퍼스트 클래스 항공권을 요청해 업그레이드 비용을 출판사가 부담했다”고 말했다. 평소 관절염을 앓는 등 건강이 좋지 않던 리프킨 교수가 좌석이 넓은 항공석을 준비해달라고 요청해왔기 때문이다. 그는 일주일 동안 정부 행사를 제외하고 민음사, KT, 카이스트가 준비한 세 차례의 강연을 했다. 이 홍보부장은 “한 회당 1만5천~2만유로(약 2200만~2900만원)의 강연료를 지급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민음사와 KT가 연 대중 강연은 1만유로 수준으로 상대적으로 적게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환율 차이 등을 이유로 강연료를 유로화와 달러화 등으로 받았으며, 언론 인터뷰 등 일정에 대한 활동료로도 1만5천유로를 받았다.

홀로 한국을 찾은 리프킨 교수는 정부 행사가 열린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머물렀다. 그는 ‘침실과 거실이 분리된 조용한 방’을 준비해달라고 했으며, 1박에 45만원 수준인 ‘코너 스위트’ 숙소를 제공받았다. 채식주의자인 그는 숙소에서 치즈샌드위치·감자칩·사과주스 등을 식사로 제공받았으며, 일정 중에는 국내 관계자 없이 홀로 식사를 다녀오기도 했다. 그러나 국내 일정에 대해서는 신문·방송 등 매체의 종류를 직접 챙기고 ‘인터뷰 50분, 휴식 시간 20분’ 등 구체적인 조건을 제시하기도 했다.

리프킨 교수 정도의 수준은 아니지만 출판계나 강연업계에서는 유명 학자나 유명인을 모셔오는 비용이 적어도 3천만~4천만원(항공료 제외) 이상은 든다고 말한다. 강연 전문 기획사인 ‘마이크임팩트’의 김정희 팀장은 “지난해 KT가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를 초청하려 했을 때, 방한 비용만 1억5천만원을 제시해 섭외가 무산된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5월23일 중소기업기술혁신협회가 연 ‘이노비즈글로벌포럼’ 연사로 온 애플 공동 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의 방한 비용도 1억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팀장은 “로 유명한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경제학)의 경우 ‘런던 스피커스 뷰로’(London Speakers Bureau)에 소속돼 있어 1회당 강연료가 달러화 기준으로 약 3천~4천만원 수준”이라고 귀띔했다. ‘스피커스 뷰로’는 연예인의 소속사처럼 유명 학자나 연사들의 강연 섭외를 대행해주는 업체다.

출판사 공동 초청·기업 후원 등 방식 다양

그러나 출판사 공동 초청이나 기업 후원 등으로 비용 부담을 줄이는 경우도 있다. 2008년 한국에 온 정치철학자 자크 랑시에르(72) 프랑스 파리8대학 명예교수의 초청을 준비했던 이승우 도서출판 길 기획실장은 “도서출판 길, 도서출판 궁리, 도서출판 b 등 3곳의 소규모 출판사가 100만원씩 부담해 체류 비용을 마련하고, 프랑스문화원이 비즈니스 클래스 왕복 항공료를 후원했다”고 말했다. 랑시에르 교수의 강연비로 서울대가 200만원, 중앙대·홍익대는 각각 25만원씩 부담했다. 이 실장은 “통역비 등을 포함해 방한 비용으로 모두 1050만원이 들었으며, 이는 다른 석학의 방한에 견줘 ‘절대적’으로 적게 지출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6월23일 한국을 찾는 지제크도 방한 비용이 약 2천만원 수준이다. 그의 방한을 준비하는 이택광 경희대 교수(영문학)는 “지제크는 항공료·국내 체류비만 받고 나머지 강연료·인터뷰 비용 등은 일절 받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의 방한 비용은 의류회사인 ‘마인드브릿지’가 전액 후원하기로 했다. 이 교수는 “지제크의 경우 본인이 오고 싶어 한 측면이 강했으며, 평소 한국에 대한 관심도 많았다”고 말했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책 홍보를 하려고 한국을 찾는 경우에는 강연료를 아예 받지 않기도 한다. 이미 팔린 책의 인세만 받는 것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베스트셀러에 오른 를 쓴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교수는 지난 5월14일 방한할 당시, 체류비·항공권을 제외한 강연료를 받지 않고 대중 강연회를 진행했다. 샌델 교수도 마찬가지다. 2010년과 마찬가지로 아산정책연구소의 초청으로 한국을 찾는 그는 체류비·항공권을 제외한 강연료는 받지 않기로 했다. 최근 샌델 교수의 새 책 을 출간한 와이즈베리의 장재경 출판마케팅팀 차장은 “샌델 교수는 일정 중 진행하기로 한 SBS의 텔레비전 강의도 출연료를 받지 않는다”며 “이번 방한은 영국·일본 등에서 동시 발매한 새 책을 홍보하는 ‘북 투어’ 일정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석학들의 길을 잘못 들인 측면도”

그러나 이들 석학급 학자의 국내 강연료 등 방한 비용은 다른 나라에 견줘 상당히 높은 편이라고 한다. 그 이유를 김 팀장은 “기본적으로 한국 강연 시장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새 책을 낸 출판사를 믿고 한국에 오는 경우는 많지만, 순수하게 강연만 하러 오기에는 국내에 믿을 만한 네트워크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는 “비싼 강연료 안에 한국 시장에 대한 위험부담금도 포함돼 있어 기업 등 스폰서 없이 초청하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우리가 (석학들의) 길을 잘못 들인 측면이 크다”며 “방한하는 사람들도 뭔가 얻어가는 게 있어야 하는데, 그런 유인이 없다 보니 거액을 요구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유명 석학이라 해서 거액만 줘서 강연만 할 게 아니라 그들이 국내 독자·학자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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