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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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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닉 가지 말고 영화를 보라

연달아 개봉한 심리치유 영화들이 상담비 없이 들려주는 자기치유의 묘책
등록 2012-05-30 09:18 수정 2020-05-02 19:26
<컬러풀> 키노아이 제공

<컬러풀> 키노아이 제공

최근 심리치유를 품은 영화들이 잇달아 개봉했다. 자살한 소년이 자기 문제와의 정면 대결로 갱생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일본 애니메이션 , 우울증을 병이 아닌 ‘존재의 힘’으로 파악하는 , 치유란 진정한 나 자신을 찾는 여정이 되어야 함을 역설하는 등 각기 빛나는 이 영화들은 하나의 별자리처럼 문양을 만든다. 별자리 이름은 ‘치유의 영화들’이다.

자살 시도자의 심리치료 과정

영화의 시작과 함께 천사가 나타난다. 전생의 죄로 소멸될 운명인 ‘나’의 영혼이 막 자살한 소년의 몸에 들어가 살며 전생의 죄를 기억해내면 윤회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마코토로 환생한 ‘나’는 평범하게만 보이는 가정의 소년이 왜 자살했을까 의아해한다. 그러나 엄마의 불륜, 형과의 대화 단절, 학교에서의 왕따, 짝사랑하는 후배의 원조교제 등을 알고 경악한다. ‘나’는 마코토가 속으로만 삭이던 고민들을 분출한다. 마코토는 미처 알지 못했던 친구들의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최악의 삶이라고 생각했지만, 삶은 한 가지 색이 아닌 다양한 색이었고, 그 속에 정 붙이고 살 여지가 있다. 바로 그때, ‘나’의 전생의 죄가 떠오른다. 나는 나를 죽였다. 나는 자살한 마코토의 영혼이다!

은 환생의 우화와 반전의 형식을 차용해, 자살 시도자의 심리치료 과정을 보여준다. 텍스트 전체를 상담자인 천사의 인도에 따라 자신의 삶을 ‘남’의 시각에서 중립적으로 다시 보고, 그라운드제로에서 새로 세팅해 받아들이는 과정으로 읽을 수 있다. 즉, 소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격렬한 자기치유 과정인 것이다. 자신의 삶을 남의 삶인 양 냉정하게 바라보는 것은 심리치료의 방법이자 중증 우울증의 증상이기도 하다. 불량배들에게 털리는 것 또한 자기처벌 욕구를 외화한 과정으로 볼 수 있다. 격렬한 증상의 발현은 치유의 단초가 된다. 은 자신의 삶을 견딜 수 없는 사람에게 (‘성격 개조 세미나’ 방식이 아니라) 자기 삶이 지닌 다양한 색채를 받아들이고, 인생을 한시적인 ‘홈스테이’인 양 여기며 살아내면 된다고 충고한다.

<멜랑콜리아> 팝엔터테인먼트 제공

<멜랑콜리아> 팝엔터테인먼트 제공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는 초현실적 정지 화면으로 지구 박살을 미리 보여준다. 첫 번째 저스틴 편. 성대한 결혼식이 펼쳐지는 동안, 신부의 모습이 어쩐지 이상하다. 가장 행복해야 할 순간에 불안과 냉소의 표정이 스친다. 신부는 행복의 절정을 상연해야 할 순간에 결국 가장 모욕적인 방식으로 결혼식을 망쳐버린다. 키스를 퍼붓는 신랑을 밀어내고, 처음 보는 남자를 덮쳐 성관계를 하고, 하객으로 와서 승진 사실을 발표해준 사장에겐 악담을 퍼붓는다. 이게 웬 미친년이냐고? 미친 건 아니다. 중증 우울증이다. 우울증자는 자아의 상실감으로, 자기비난과 자기처벌의 욕망에 사로잡힌다. 웨딩드레스를 입고 축복받는 자신을 견딜 수 없다. 모든 것을 망쳐버리고, 꼴좋다, 내가 이럴 줄 알았다며 자신에게 비난을 퍼붓고 벌을 주는 것이다.

우울증 환자는 자신을 예지자로 긍정할지니

두 번째 클레어 편은 역설적으로 우울증의 힘을 보여준다. 결혼식 뒤 저스틴은 언니 클레어의 집에 와 보살핌을 받는다. 행성이 지구에 다가오지만 충돌은 없을 거란 과학적 예측에도 불구하고, 클레어는 종말의 불안감을 느낀다. 형부는 종말이 현실화되자 자살하고 언니는 우왕좌왕하지만, 동생은 행성 월광욕을 즐긴다. 우울증자만이 재난 앞에 초연하다. 우울증자들은 현실의 냉혹함을 더 잘 알고 있으며, 자아가 이미 상실돼버렸기 때문에 대상에 대한 애착이 없다. 실제로 우울증을 앓았던 감독은 를 통해 우울증의 내적 재난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외적 재난 앞에서는 오히려 우울증이 가장 큰 힘을 발휘함을 보여준다. 우울증자는 세상을 비이성적으로 비관하는 어리석고 약한 존재가 아니라, 냉철한 시각으로 세계의 본질을 꿰뚫고 있으며, 결혼식 따위의 자기기만으로 위로받지 못하는 비범한 존재라는 것이다.

<데인저러스 메소드> KT&G 상상마당 제공

<데인저러스 메소드> KT&G 상상마당 제공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는 정신의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의 전기 영화다. 는 융의 환자이자 정부이자 후배 의사인 슈필라인이란 실존 인물을 통해, 융이 자기 내면의 그림자를 발견하고, 정신병에 대한 독자적 이론을 정립하는 과정을 삽화적으로 보여준다. 융이 존경했던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결별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정신병에 관한 개념 차이였다. 융은 과거의 잘못된 원인을 찾아 교정하는 프로이트식 치료가 아니라, 내면을 탐색해 자기를 발견하고 인격을 재창조하는 과정을 치유로 생각했다. ‘자기실현’ 혹은 ‘개성화’라 불리는 이 과정은 ‘내가 어떤 사람이며, 내 욕망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서, 나답게 사는 것’을 뜻한다. 이는 의 소년이 겪은 과정이기도 하다. 자신의 색이 한 가지가 아님을 인정하고, 때로 증상을 분출해 대화를 개진하고, 내 삶이 다른 이들의 삶과 서로 지탱되고 있음을 깨닫는 것, 이것이 정신과 클리닉을 찾는 것보다 더 긴요한 자기치유의 묘책이다. 우울증자 역시 자신을 환자가 아닌 예지자로 긍정할지어다. 곧 종말의 날에, 인류 최후의 힘을 발휘할 터이니.

황진미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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