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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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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잡지, 소리없이 분주한

제작자 평균연령 20대의 젊은 매체, 가난하지만 재기발랄함을 앞세워 유통 문제 돌파 시도하며 지속가능한 발행에 도전하다
등록 2012-03-23 07:40 수정 2020-05-02 19:26
» 발간 부수 500부를 넘기 어려운 작은 시장이다. 그런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후원을 거치며 ‘독립잡지’의 그릇이 점점 커지고 있다.

» 발간 부수 500부를 넘기 어려운 작은 시장이다. 그런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후원을 거치며 ‘독립잡지’의 그릇이 점점 커지고 있다.

… 제목조차 잡스럽다. 개성 있는 이름으로 존재 가치를 주장하는 독립잡지들이다. 그런데 최근 독립잡지라는 작은 군도가 분주해졌다. 독립잡지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서울 홍익대 앞 서점 ‘유어마인드’ 대표 이로씨는 “창간호를 포함해 매달 20~40종의 독립잡지가 새로 나온다”고 했다. 소량 생산되는 예술잡지만 판매하는 서울 마포의 서점 ‘북소사이어티’ 임경용 대표는 “올해 들어 독립잡지를 출판할 수 있겠느냐는 문의가 잦은데, 지난해나 최근 몇 년에 비한다면 2~3배는 늘어난 것 같다”고 했다.

가난하기에 혁명적인 세대의 잡지
» 서울 홍익대 앞 독립출판 전문서점 ‘유어마인드’를 찾는 독자들.

» 서울 홍익대 앞 독립출판 전문서점 ‘유어마인드’를 찾는 독자들.

배포될지언정 유통되지 않는 매체, 길은 좁고 가려는 사람은 많다. 어떤 사람들이 독립잡지를 만들까. 제작 평균연령 20대, 독립잡지는 청년들의 매체다. 지난 2월 “음악비평은 없다”는 말로 도발을 시작한 는 밴드 ‘무키무키만만수’와 ‘악어들’의 멤버인 무키, 만수, 지완 등이 만든 잡지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박정근씨도 창간을 거들었다. 는 “작고 소소하며 자기에게만 중요한 것들이 대부분”(임경용)이던 독립잡지들의 땅에 “우리는 아무것도 없는 비평의 공간을 혁명의 대마초 향이 가득한 전장으로 만들 것”이라는 선언문을

서울 홍익대 앞 독립출판 전문서점 ‘유어마인드’를 찾는 독자들.

서울 홍익대 앞 독립출판 전문서점 ‘유어마인드’를 찾는 독자들.

던졌다. 는 혁명과 놀이를 한데 주물러 선동으로 빚어내는 ‘두리반표’ 담론이 낳은 잡지인 듯 보인다. 예전 같으면 ‘문예운동지’로 분류됐을지 모를 이 잡지는, 그러나 2012년생답게 홍대, 서울 문래동, 부산에서 ‘음악 짓거리’ 하는 사람들의 탄식과 정의와 기괴한 에피소드들을 떠돌다가 차라리 “구루마를 끌고 다니자”거나 “어쨌든 홍대 밖으로 뛰쳐나가자”고 선동한다. 밴드 ‘산울림’의 음악을 매섭게 따지고 들면서도 정면 비판이라는 기획보다는 ‘엉덩이 때치!’를 택하는 식이다.

독립잡지에서 보이는 20대의 화두는 단연 가난이다. 지난 2월에는 가난뱅이들을 위한 잡지 가 나왔다. 디자인 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하며 잡지를 만든 현영석(29)씨는 “나 같은 책을 보면 공감하면서도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웃겨주고 싶었다”고 잡지를 만든 이유를 설명했다. 는 기존 패션지를 꼭 닮은 디자인과 화보로 가난뱅이를 위한 뒷산 여행 안내나 우유팩으로 만든 욕조, 재활용 커피를 소개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말조차 기성세대에게 빼앗겨버렸어도 청년들은 자신을 말할 방법을 찾아낸다. 독립잡지는 청년들의 구체적 삶과 세상에 대한 질문을 뱉어낸다. 지난해 말 나온 은 청년실업네트워킹센터 희망청의 지원을 받아 만든 독립잡지다. 건축설계사로 일하던 20대 후반의 연정씨가 희망청에서 24~32살 청년 6명을 모아 만들었다. 잡지는 사회의 속셈, 직장의 속셈을 묻고 거리에서 ‘도를 아십니까?’를 묻는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고 다단계 경험담을 털어놓는다. 지극히 개인적인 방식으로 사회의 돈벌이 구조를 파헤치는 셈이다. 2~3년차 직장인이 대부분인 편집자들은 여기에 갑과 을의 관계에 대한 기획을 보탰다. 연정씨는 “사회적 권력관계에서 품는 속셈이 20대 후반에 가장 많이 나누는 이야깃거리인 것 같다”며 “잡지 만드는 일은 고됐지만 다른 시각과 섞일 수 있는 기회였다”는 소감을 남겼다.

잡지, 세상에 부고를 보내다
» 이름도 내용도 개성적인 독립잡지들. 청년세대의 매체답게 가난하고 불안한 세대를 그리지만 그 방식은 재기가 가득하다.

» 이름도 내용도 개성적인 독립잡지들. 청년세대의 매체답게 가난하고 불안한 세대를 그리지만 그 방식은 재기가 가득하다.

지난해 말에는 30대가 주축이 된 잡지 도 창간했다. 잡지 와 함께 독립잡지의 변화를 알리는 잡지로 거론된다. 역시 를 만들었던 디자이너 김형재, 문래동 클럽 ‘로라이즈’를 운영하며 미술·음악 비평을 하는 함영준, 패션블로거 박세진, 404 밴드 멤버인 정세현에다 영국 출신 저널리스트 존 로스까지 여러 방면의 ‘독립적인’ 예술가들이 한데 모였다. 여기에 트위터로 만난 기자들과 디자이너 만화가들이 합세했다. 김형재씨는 “취향에도 민감하고 소수의 사람이 관심을 가질 만한 문법으로 사회 이슈를 다루는 매체가 트위터니까 쉽게 잡지 동인이 모일 수 있었다”고 했다. 함영준씨는 “2007년에도 독립잡지가 쏟아져나온 시기가 있었다. 는 몇 년 전의 붐을 통해 독립잡지에 익숙해진 성숙된 독자층과 스스로를 성숙시킨 제작자가 다음 단계로 뭔가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한 잡지”라고도 했다. 파격적인 디자인, 많은 공을 들인 세련된 화보, 무엇보다 세련된 질감이 느껴지는 텍스트는 기존 독립잡지와 한참 다르지만 ‘독립적인 시각’은 숨길 수 없다. 는 창간 특집 ‘부고’에서 2011년 가장 충격적인 부고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실었다. 전후 일본 세대의 죽음을 알리는 사건이기 때문이란다. 부고장이 잘못 전달됐다는 기사 말미에 간 나오토 전 총리와 이명박 대통령 등이 나란히 서서 일본산 음식을 먹는 사진을 실었다. 문을 닫은 홍대 앞 클럽 ‘라이브 쌤’뿐만 아니라 영구아트센터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디자인 서울, 옥상 개보수 공사를 마친 서울아트시네마에 대해서도 부고 기사를 날린다. 독자엽서는 2011년 마지막 달에 세상을 뜬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진으로 꾸며졌다. 함영준씨는 말한다. “만드는 사람들 중 1978년생이 많은데 몹시 애매해요. 혁명의 기운에서 벗어난 대학을 다니다 경제위기에 시달리고 촛불시위도 바라보기만 한 세대죠. 잡지를 만들고 나서 ‘독립도 아니고 선동도 아닌 이 애매한 덩어리는 뭐지?’ 그랬어요. 그래도 지금 세상이 이러니까 할 수 있는 말을 하는 거죠. 기존 언론들이 평면적으로 전하는 소식을 는 입체적으로 전하고 싶어요.”

서점 로라이즈 대표 이로씨는 “와 함께 는 상징적인 잡지다. 이들은 만드는 과정에서 여러 후원을 구했고 만들고 나서도 유통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들이 잡지를 냈다는 소문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확산되자 일부러 그 잡지들을 구하려고 서점을 찾는 사람이 많다”며 “유통·마케팅에 닫혀 있던 독립잡지들이 변화하는 사건이 될지 흥미롭게 지켜보게 된다”고 했다.

“포기하기 어려운 미래”

물론 새로 생겨나는 잡지만큼이나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는 잡지도 수두룩하다. 무엇이 지속 가능한 독립잡지이고, 이 장르가 지속할지조차 모르는 형편이다. 창간 13년, 최고참 독립잡지 중 하나인 는 2011년 폐간을 고민했다. 수석에디터 강지웅씨는 폐간하지 않은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누구 책임도 아니지만 기존 유통모델로는 수익이 돌아오지 않는다. 그런데 휴간하려고 하니 를 만드는 일상을 포기할 수 없었다. 잡지를 매개로 다른 사람을 만나고 기고자·독자·디자이너는 각자 가진 재주를 소통하고 협력하며 키워나간다. 독립잡지는 요즘 말하는 실행공동체를 닮았다. 아직은 포기하기 어려운 미래다.” 와 는 올봄이 가기 전에 두 번째 호를 낼 예정이다.

글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100호 낸 어린이 잡지
어린이들의 응원이 쌓아올린 100권

월간 어린이 교양잡지 가 100호를 맞았다. 어린이 교양지라니. 정보도 학습도 아닌 교양만 주는 어린이 잡지가 광고도 싣지 않고 창간 8년을 달려왔다. 게다가 2011년부터는 독립적인 운영이 가능한 7천 부를 넘어섰다. 100호째의 표지는 디자이너 안상수가 그렸고, 글은 시인 송경동의 시로 열렸다. 여러 작가와 화가들이 이모, 삼촌이라는 이름으로 축하말을 남긴 것 말고는 100번째의 고래도 여전하다. ‘고래 토론’은 중학교에 가기 두려운 아이들이 종알종알 털어놓은 입말을 그대로 받아적었다. 발랑 까진 만화 ‘을식이 삼촌’은 창간 때부터 지금까지 연재되고 있다. 김규항 발행인은 2003년 10월 창간호부터 100호를 이어온 동력으로 독자인 어린이들의 호감을 든다. “처음 창간호가 나왔을 때 어른들의 의견은 대부분 부정적이었다. 현란하고 어수선하고 엽기적이라는 평도 들었다. 그런데 어린이들이 좋아했다. 고단함을 잊고 재미있고 친근하게 느낀다고 했다.” 과연 서울 마포 편집부에는 어린이들이 보낸 엽서가 쌓여 있었다. 요즘 누가 손글씨에 색을 입혀가며 이렇게 정성스러운 엽서를 보낼까? 방학 때는 수백 통의 독자엽서가 쌓인단다.
“사람답게 크라는 말도 하지 못한 채 유신 시절만도 못한 삶을 살아가는 어린 사람들을 손 놓고 지켜보아야 하는 어른 사람의 죄책감”으로 시작한 일이 어린이들의 성장에 재미와 교훈으로 동반하며 단단해졌다. 돈이 없어 책을 사지 못하는 공부방 아이들에게 책을 보내는 고래동무 후원회원도 3천 명을 넘어섰다. 책 권하기 운동이 아니라 책 살 형편이 못 되는 부모를 둔 아이들도 를 봐야 한다는 권리운동으로 넓혀간 덕분이다.
» 100호를 낸 <고래가 그랬어>를 만드는 사람들. 김광현 마케터, 강서림 디자이너, 안현선 편집장, 안상평 교육연구소 팀장(왼쪽부터).

» 100호를 낸 <고래가 그랬어>를 만드는 사람들. 김광현 마케터, 강서림 디자이너, 안현선 편집장, 안상평 교육연구소 팀장(왼쪽부터).

를 후원하는 고래 삼촌, 이모는 요즘 ‘열공’ 중이다. 4월26일까지는 한국 사회의 현실을 개관하는 고래정치학교가 진행된다. 5월에는 교육 현실을 바꾸려면 부모가 바뀌어야 한다는 의견에 따라 ‘부모서명운동’을 벌일 생각이다. 안상평 고래 교육연구소 팀장은 원래는 대기업 전자회사에서 일하는 고래 삼촌이었다. 얼마 전 고래로 직장을 옮겨 작지만 사람 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삶을 살게 되었단다. 독자 관리를 맡은 김광현씨는 아이들을 상담하는 일을 하던 사람이었다. 아이들을 일로 대하지 않고 진심으로 대하는 일을 하게 되어서 행복하단다. 는 게임이든 노래든 성이든 인권이든 재개발이든 아이들에게 못하는 말도, 못 묻는 이야기도 없는 잡지다. 솔직하게 말하면 아이들은 공감하고 나름의 응답을 해온다. 문제는 부모다. 안현선 편집장은 “예전에 부모 토론 코너를 진행한 일이 있었는데 배웠든 못 배웠든 대안학교를 보내든 외국어고등학교를 보내든 이야기하다 보면 부모들의 고민은 결국 깔때기다. 입시뿐이다.” 안상평 팀장도 “386 부모들은 아이들이 고래 만화를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더라”고 거든다. 그래서 고래는 갈수록 어른들의 말을 줄이고 부모보다 더 다채롭고 눈이 초롱한 아이들에게 마이크를 넘긴다.
김규항씨는 “논객으로도 활동했지만 내가 가장 공들여 축적해온 줄기는 고래”라고 말했다. 를 만드는 사람들은 “고래에서 아이들에게 말하듯 살려고 애쓴다”고 했다. 그럼 아이들은? 잡지 하나가 아이들을 바꿀 수도 있을까? 요즘엔 창간호 때 독자였던 어린이들이 어른이 되어서 고래 후원회에 들어온다고 한다. 작은 어린이 독립잡지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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