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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적인, 너무도 주변적인

세계 미술시장의 1%도 안 되는 한국 시장… 공공 구매 적고 ‘큰손들’에 좌우돼 성장 동력 미흡
등록 2012-02-09 11:10 수정 2020-05-03 04:26

2012년 새해 세계 미술시장의 화제는 단연 영국의 현대미술가 데이미언 허스트의 추상화 ‘스폿 페인팅’이다. 흔히 ‘땡땡이 그림’으로 알려진 그의 그림은 미국 뉴욕, 영국 런던, 이탈리아 로마, 홍콩 등 3대륙 8개 도시의 11개 지점에서 일제히 전시되고 있다. 물론 이 전시를 두고 말은 분분하다. 그의 작품들이란 것이 대동소이할뿐더러, 대부분 그의 조수가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두고 “작가정신의 실종”이라는 비난까지 쏟아지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허스트의 가공할 만한 흥행력에 온 세계가 혀를 내두르고 있다. 2008년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그는 223점의 신작을 내놓아 2200억원의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작품성 논란을 접어둔다면 그의 이름은 이미 거대한 브랜드인 셈이다.

2009년 한국 시장 매출 4085억원 그쳐

우리나라 미술시장의 규모는 어떨까?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지난해 펴낸 ‘미술시장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얼개를 그릴 수 있다. 지금껏 언론에 공개된 바 없는 보고서다. 내용을 보면, 우리나라 미술시장의 규모는 2009년을 기준으로 4085억원으로 분석됐다. 2008년 허스트가 벌어들인 액수의 두 배에도 못 미친다. 거래 작품 수는 2만9224점이었다. 전체 매출 가운데 화랑의 거래액이 2540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그다음이 건축물 미술장식품(668억원), 경매회사(585억원), 미술관 구매액(190억원), 아트페어(91억원) 등의 순이었다. 거래 항목에서 중복되는 거래는 제외하고 추정액을 산출했다. 예를 들어 화랑을 통해 미술관이 구입한 미술품의 가격은 화랑의 거래액으로만 집계하는 방식이다.

건축물 미술장식품은 1995년 이후 대통령령에 따라 1만㎡ 이상의 면적에 지어지는 건축물에서 반드시 마련돼야 하는 작품을 가리킨다. 또 아트페어란 화랑 혹은 작가들이 한 장소에 모여 미술품을 판매하는 행사를 가리킨다.

실제 미술품 거래액은 물론 공식 집계보다 많다는 것이 미술계의 중론이다. 이른바 ‘큰손’들이 개인적으로 사들이는 미술품은 통계에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 대형 갤러리는 2009~2010년 781억원어치의 미술품을 홍라희 삼성미술관장과 비공식적으로 거래했다고 주장하며 소송까지 가기도 했다. 미술계의 한 관계자는 “비공식적 거래를 모두 합하면 우리나라 미술시장의 한 해 거래액은 5천억원 정도에까지 이를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국 미술시장의 공식적인 규모는 전세계 미술시장의 0.85%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미술시장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2009년 기준 전세계 미술시장의 규모를 47조원으로 추정했다. 이 가운데 미국에서 전세계 미술 거래의 30.0%가 이뤄졌고, 그 뒤로 영국(29.0%), 중국(14.0%), 프랑스(11.0%) 순이었다. 미술품 거래액을 기준으로만 보면, 한국은 세계 미술시장의 먼 언저리에 자리잡은 셈이다.

» 2008년 2월 서울 가회동 서미갤러리에서 공개된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 이 작품은 삼성이 비자금 용도로 보유하고 있다는 의획이 제기됐었다. 사진공동취재단

» 2008년 2월 서울 가회동 서미갤러리에서 공개된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 이 작품은 삼성이 비자금 용도로 보유하고 있다는 의획이 제기됐었다. 사진공동취재단

전세계 미술품 거래 30%가 미국서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 소장은 “다른 나라에서는 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 미술품을 공공재로 인식하고 예술작품을 사들여 공공이 향유할 수 있도록 전시하는 문화가 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일부 큰손들이 미술품을 사유화하려는 경향이 크다. 따라서 미술시장이 투명하게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상대적으로 미흡한 편”이라고 풀이했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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