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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같은 만화를 바라나요?

만화에 폭력적이었던 현대사… 독재정권의 1순위 탄압 대상에서 사후 자율심의제도까지 카타르시스의 거세를 강박하는 사회
등록 2012-01-20 13:26 수정 2020-05-03 04:26
» 글·그림 귀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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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의는 표현의 자유와 항상 긴장관계에 있어야 한다. 심의가 쉽게 이기는 사회는 불안하다. 소란을 피하려고 만화가들이 예의 바르고 도덕적인 모범생만을 묘사한다면? 교과서와 다름없는 만화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상상력의 유쾌함도, 발랄함도, 때론 황당함도, 그를 통한 카타르시스도 모두 거세된 교과서. 역사는 모든 이들이 교과서만 읽기를 바라는 지배 권력을 ‘독재’라 불렀다.

‘불량식품’ 취급 당하는 만화

만화는 많은 문화 형식 중 독재정권의 1순위 탄압 대상이었다. 1961년 5·16 군사 쿠데타 이후, 그해 12월부터 원로 만화가들과 출판사로 구성된 ‘한국아동만화자율회’가 사전심의를 시작했다. 명목상은 자율, 실제론 강제 사전검열이었다. 여기까지는 당시의 모든 문화예술이 함께 받은 핍박일 것이다. 그러나 1967년 박정희가 만화를 ‘밀수, 탈세, 도박, 마약, 폭력’과 더불어 ‘사회 6대 악의 하나’로 지정했을 때부터 만화에 대한 사회적 폭력은 본격화됐다. 만화는 ‘중립적인 표현 형식’이 아니라 박해받아 마땅한 불량 장르로 자리매김했다. 1968년 문화공보부 산하에 ‘한국아동만화윤리위원회’가 만들어져 본격적으로 사전검열과 통제를 시작했으며, 청소년 관련 문제가 발생하면 분서갱유의 대상이 되는 등 사회적 마녀사냥의 대표적 희생물이 돼왔다.

몇십 년간 만화 검열을 거듭하는 동안, 만화를 보는 사회의 시선은 다분히 폭력적이었다. 요즘엔 만화에 내재화된 모멸이 사라졌다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사후 자율심의제도로 바뀐 오늘날에도 만화는 관습적으로만이 아니라 법적으로도 특별히 규제된다. 1997년 제정된 청소년보호법 제7조는 ‘정기간행물 외의 간행물 중 만화·사진첩·화보류·소설 등의 도서류…’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주요 심의 대상으로 만화를 꼽고 있다. 이 항목은 2012년 9월부터 시행될 개정법에서야 겨우 사라지게 됐다. 2002년 제정된 출판문화산업진흥법 역시 만화를 ‘특별 취급’한다.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의 기능을 밝힌 제18조 중 1호는 여전히 ‘소설, 만화, 사진집 및 화보집’과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간행물의 유해성 심의를 지시하고 있다. 2008년 제정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1조는 청소년 유해 정보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의 활동을 지원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웹툰 심의를 강화하겠다는 것은 이런 법률적 근거에 기반을 둔다. 출판만화는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웹툰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또 이를 포괄한 청소년보호위원회의 규제를 받는다. 기사는 웹툰 심의가 느슨하다고 비판했지만 오히려 만화에 대한 심의 장벽이 이중·삼중으로 높은 것이 현실이다.

자기검열이 내재된 장르

만화는 검열이 각인된 장르다. 오랜 길들이기 탓에 검열당하기 전에 스스로 검열하는 만화가들의 자기검열도 상당하다. 청소년 폭력 문제는 아이들을 무한경쟁으로 내몰고 있는 우리 사회 전체가 안아야 할 것이지, 만화라는 특정 표현 형식에 화살을 돌린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이를 우리가 정말 모른단 말인가? 그렇다면 청소년 폭력 문제를 해결할 길도 요원할 수밖에 없다.

한상정 만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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