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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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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파리의 거대한 쓰나미

가족끼리 부담없는 서울 독산동 ‘고기마을 호수’
등록 2011-12-23 11:28 수정 2020-05-03 04:26

용식이가 전화를 했다. 해 가기 전, 얼굴이나 보자 했다. 이름이 곧 별명인 사나이, 용식이. 중학교 친구인 용식이를 우리는 ‘LA용팔이’ ‘똥파리’ 등으로 불렀다. LA용팔이는 당시 상영했던 액션에로영화에서 따왔고, 똥파리는 전통시장에서 번듯한 채소가게와 함께 민영(?) 화장실을 운영했던 용식이의 집안에서 유래했다. LA용팔이는 학교가 파하면 부모님을 대신해 화장실 입구에 딸린 방에서 화장실 이용료를 받았다. 화장실은 소변용과 대변용으로 나뉘었다. 소변은 50원, 대변은 100원, 휴지는 50원이었다. 똥파리는 작은 방에 앉아 조그만 창문에 손을 내밀어 “100원요~ 50원요~”를 외쳤다. 그런 용식이를 보고 우리가 “대변 보면서 소변도 보면 어떡해?”라고 물으면 그는 까불며 “그럼 100원요~ 50원요~ 합이 150원요~지”라고 말했다. 고1 때가 되자 똥파리도 식상해졌는지 다들 그저 ‘식이’라고 불렀다. 똥파리가 교실에 나타나면 애들이 곳곳에서 나직이 속삭였다. “시기~ 시기~ 시기~.” 그런 식이는 한석규를 닮았다. 옆모습만. 그래서 우리는 녀석보고 소개팅 나갈 때 옆으로 인사하고 옆으로 앉으라고 놀리곤 했다.
식이의 집은 우리의 해방구였다. 1층 가게, 2층 살림집으로 된 구조였는데, 가게일로 1층에 주로 계셨던 부모님 덕분에 2층은 항상 축제 분위기였다. 시장에서 떡볶이·순대·막걸리 등을 사다가 스포츠신문, 썬데이서울이나 에로비디오 등을 보며 우리는 낄낄거렸다(아마, 식이의 방에는 LA용팔이 비디오도 있었던 것 같다).

오랜만에 식이를 만나러 가는 길, 와잎은 자기가 먼저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니 친구니? 넌 친구 없니? 와잎은 자기도 간만에 용식이 오빠를 보고 싶다고 했다. 술판이 보고 싶은 거 아니니? 식이는 몇 년 전 얼굴 그대로였다. 똥파리라는 별명 때문인지 하루에도 화장실을 10번이나 들락날락하던 식이는 여전히 핼쑥했다. 장이 안 좋고 마른 식이를 위해 인근 고깃집으로 자리를 잡았다. ‘고기마을 호수’는 가족끼리 부담없이 먹을 만한 집이었다. 꽃등심과 소맥을 깔았다. 꽃등심은 마블링이 적당했으나, 고기맛은 그저 그랬다. 아들녀석은 낮잠에 들었다. 우린 예전 추억을 복기하며 흐뭇하게 술잔을 돌렸다. 와잎과 난 서로 대리를 부르라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달려들었다. 원래 술을 잘 못하는 식이도 간만의 자리가 즐거웠는지 연거푸 술잔을 들이켰다. 와잎이 슬슬 시동을 걸고 있었다(좀 살살 해~). 착한 식이는 거절을 잘 못했다(이를 어째~). 난 거대한 쓰나미가 몰려 오고 있음을 직감했다.

1차를 마무리할 무렵, 식이는 보이지 않았다. 화장실에 가보니 신음 소리가 새나오고 있었다. 희열과 고통을 동반한 신음이었다. 식이는 20여 분에 걸쳐 3~4번을 배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창백한 얼굴로 차에 오른 식이를 태우고 녀석의 집으로 향하는데, 식이가 식은땀을 흘렸다. 아들녀석이 물었다. “삼촌 어디 아파?” 내가 “응, 어디 아프대”라고 답하는 순간, 식이가 대리운전 아저씨에게 외쳤다. “저, 잠깐만 세워주세요. 나오고 있어요.” 와잎과 난 동시에 “야, 안 돼~!”를 외쳤다. 한 손으로 뒤를 막고 건물 입구를 찾아 허둥대는 식이를 보며 와잎이 말했다. “아주 생쑈를 하는구만~.” 식이는 그곳에서 20여 분을 더 보냈고, 난 대리운전을 무른 뒤 편의점으로 팬티 심부름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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