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하되 조롱하지 않겠다.” 케이블채널 TvN의 (SNLK·Saturday Night Live KOREA)의 각본과 연출을 맡으며 시사풍자 코미디쇼에 도전한 영화감독 장진의 포부다. 학비를 벌려고 SBS 예능 프로그램 의 방송작가로 일했던 장 감독으로서는 ‘귀환’인 셈이다. 지난 12월3일 그의 첫 귀환작에 시청자는 ‘빵 터졌다’. 1975년 미국에서 시작해 지금까지 방송되는
“안철수, 치사했다고 본다”
현실을 기묘한 각도로 비틀어 보는 이를 키득거리게 하는 ‘장진 코미디’가 안방에서, 매주 토요일 밤 10시30분에 펼쳐진다. 장 감독은 애초 8주차 방송까지 참여할 계획이었지만 세간의 화제와 함께 다소 연장될 가능성도 있다는 전언이다. 이한위·정웅인·장영남·김빈우·안영미·박철민 등 ‘크루’라고 불리는 16명의 고정 게스트도 만만치 않은 진용이다. 뮤지션 게스트로는 첫 회 다이나믹듀오를 이어 2회에선 김창완밴드가 참여했다. 콩트 중심의 ‘시추에이션 코미디’를 표방하지만 원작과 마찬가지로 아슬아슬한 정치풍자가 쇼의 절정이다. 뉴스 형식의 ‘위크앤드업데이트’ 꼭지에 직접 출연하는 장 감독은 “생방송 직전까지 주요 뉴스를 체크한다”고 했다.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해 여야 정치인, 관료, 재벌, 최근 개국한 보수 언론의 종합편성채널까지 풍자의 대상이 된다. 이명박 대통령이 집배원 4만5천 명에게 “어려운 상황에서 노고가 많아 고마움을 표한다”는 내용의 문자를 보냈다는 소식을 전하며 “어려운 상황은 누가 만들었을까요”라고 반문하고, “날 밟고라도 한-미 FTA 논란을 끝냈으면 한다”는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을 향해 “시간과 장소를 알려달라”고 일갈하는 식이다.
갑자기 드는 의구심. 이건 TV판 (나꼼수)인가? 혹은 특정 정치 성향의 시청자만을 위한 놀이터일까? 장 감독은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직설적으로 ‘우리 편 여기 붙어라’라고 하는 와는 다르다. 편가르기로 오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가 정부·여당을 풍자하고 있다고 치자,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웃는다. 그러다 문득 ‘나도 지난 선거에서 한나라당 찍었는데?’라는 생각이 드는 거다. 여기까지 포괄하자는 이야기다. 조롱은 일방적 공격이고, 풍자는 단수가 높아야 할 수 있다. 공격을 하더라도 공격받는 대상이 도망가거나 피할 여지는 남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 감독은 “너무 심하다 싶을 정도의 조롱문화는 경계하는 편”이라며 ‘제대로 된 정치풍자’의 세 요소로 “풍자를 필요로 하는 시대,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사람들, 그리고 풍자를 정치적 쟁투가 아니라 ‘즐거움의 영역’에서 즐길 줄 아는 시민”을 들었다. “뚜렷한 정치적 노선을 표방하면서 누군가를 지지하겠다는 게 아니다. 기본적으로 방송이 가져야 하는 중립성은 지켜나갈 것”이라고도 했다. 공형진이 출연한 2회에서는 연말 예산 정국마다 되풀이되는 정치권의 ‘미식축구와도 같은 육탄전’ 에피소드가 등장했다.
야권이라고 강 건너 불 구경할 처지는 못 된다. 장 감독은 “야당에도 풍자의 대상이 되기에 좋은 인물이 많다”며 “절박한 사람들은 물대포를 맞으면서도 거리에 나선다. 그런데 야당은 너무 조용하다. 이제 막 첫 방송을 끝냈을 뿐이다. 지켜봐달라”고 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라고 예외일까. 장 감독은 방송에서 “나도 조감독 안 거치고 곧장 감독 됐다”고 했다.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그러면서도 대선 출마의 여지를 둔 안철수 원장을 두고 한 말이다. 관객들 사이에선 박수와 환호가 터져나왔다. 그러나 장 감독은 “안철수 원장을 지지하거나 선호하지 않는다”고 했다. 뜻밖이다. “안 원장은 한 명의 사업가 출신이고, 대학원 원장 정도의 인사가 아닌가. 그런데도 국민적 주목을 받고 있다. 그를 바라보는 국민과 정치권은 혼란을 느낀다. 그의 ‘총선 불출마’ 발언은 치사했다고 본다. ‘정치에 뜻이 없고, 대선에도 나가지 않는다’라고 하든지, 아니면 ‘대선에 나가겠다’고 분명히 선언을 하면 되는 일이다. 정반대의 지점이기는 하지만 불분명한 태도로 혼란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과 비슷하다고 할까. 3주차, 4주차로 가면서 안철수 원장에 대한 풍자도 선보일 것이다.”
보수와 진보가 발랄하게 손잡는 무대
저스틴 팀버레이크, 레이디 가가, 마돈나, 고인이 된 마이클 잭슨,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마이클 펠프스 등 월드스타뿐 아니라 정치인들도 기꺼이 출연해 스스로 망가지기를 주저하지 않는 게 원작인 미국
장 감독은 ‘웃음’을 위해 보수와 진보, 여당과 야당, 꼰대와 철부지가 손잡는 원작
물론 아직 갈 길은 멀다는 우려도 있다. 장 감독도 “너무 앞서가면 일방적 조롱이 되고, 반대로 몸을 사리면 죽도 밥도 안 되는 딜레마가 있다”고 토로한다. 첫 방송에서 일부 출연진의 부자연스러운 연기가 도마에 올랐고, ‘웃음의 밀도’ 측면의 만듦새도 아직까지는 논란의 대상이다. 방송평론가 최원택씨는 “명예훼손죄가 성립하지 않는 미국 정도의 정치풍자는 어렵지 않을까. 결국 쇼의 성패는 톱스타 섭외 여부에 달렸다”며 “아직 프로그램 자체에 대한 평가는 유보”라고 했다.
바람을 무슨 수로 막을까
이야기를 나누면서 문득 조마조마해졌다.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말’이 제대로 ‘말값’을 받지 못하는 세상이다. 걸핏하면 고소장이 날아들고, 밥줄이 끊긴다. 부담스럽지는 않을지. 장 감독은 “‘건드려만 다오’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시청자의 지지가 버팀목이 될 터이다.
하기야 웃음을 검열이나 제재, 고소 따위로 틀어막을 수 있겠는가. 풍자(諷刺)라는 말의 기원은 중국의 시서인 (詩經)에 있다. 은 풍(風)을 시의 육의(六義) 중 첫째로 들었다. 옳거니, ‘말(言)을 바람(風)에 실어 상대를 찌른다(刺)’는 뜻이렷다. 바람을 부르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공론장의 질식이다. 제도적 언로를 통해 말이 말이 되지 못하니 사람들은 말을 바람에 싣는다. 바람을, 무슨 수로 막을까. 쇼펜하우어는 “웃음을 유발하는 것은 추상과 현실 사이의 불일치”라고 썼다. 한국 정치 코미디의 전성기는 1980년대 후반 노태우 당시 대통령 당선자의 “나를 정치풍자 코미디에 이용해도 된다”는 선언에서 시작됐다. 정당성에 위기를 느낀 권력의 유화책이었다. 김형곤·엄용수·양종철 등이 그렇게 정치풍자 코미디의 시대를 열었다. 최양락과 배칠수, 최근의 가 뒤를 따른다. 장진의
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
참고 문헌 (김학성 외 지음·창작과비평사 펴냄)
미국판 SNL 풍자의 힘
페일린 대통령? 종말이 찾아올거야!
2008년 미국 대선 직후 미국 인터넷 언론들은 선거에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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