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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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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사탕을 줄게

작은 손바닥 부문 당선작 김정원
등록 2011-11-30 19:46 수정 2020-05-03 04:26
일러스트 박정은

일러스트 박정은

나는 하마터면 15년 만에 만난 보은이를 알아보지 못하고 놓쳐버릴 뻔했다. 약속 시간보다 10분 늦게 도착한 나는 언제나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이 서성이는 홍익대 앞 길거리 편의점 앞을 두리번거리다가 문자메시지를 보내려고 가방을 뒤져 휴대전화를 찾기 시작했다. 스팽글이 달린 튜브톱을 입은 여자와 가죽 크로스백을 맨 남자가 있었고, 서로 말은 하지 않아도 거의 붙어 서 있어 일행처럼 보이는 20대 여자 두 명이 있기는 했어도, 보은이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런데 생머리가 가슴 부근까지 찰랑거리며 내려오는 튜브톱의 여자가 가방 안에 처박다시피 한 내 얼굴을 기웃거렸다.

“저, 혹시, 김진?”

나는 고개를 들고 내 눈앞에 놓인 여자의 얼굴을 바라봤다. 새카만 아이라인 위로 스모키 색조의 아이섀도가 그러데이션을 그렸고 음영이 뚜렷하기는 해도 전체적으로 파운데이션을 지나치게 발랐다 싶은 피부는 창백했으며, 입술은 누드톤으로 가라앉아 생기가 없었다. 내가 아는 여자 중에 이렇게 눈에 띄는 화장을 할 만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누구세요?”

아무 생각 없이 내뱉었다가 나는 곧바로 후회했다. 보은이를 만나러 왔으니 그 여자가 보은이일 거라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가면처럼 두껍고 창백한 화장을 뒤집어쓴 여자가 킥킥거렸다.

“진이 맞구나? 너는 서른이 넘었는데 어쩌면 하나도 안 변했니? 화장기도 없이 뺨도 토실토실한 거 하며.”

가방 안에 집어넣은 손을 빼지도 못한 채 나도 애매하게 따라 웃었다.

“미안, 너무 예뻐져서 몰라봤어.”

하얀 피부와 동그란 눈과 구불거리는 곱슬머리가 귀여웠던 보은이는 눈가 주름 사이에 스모키 아이섀도의 펄가루가 오래된 먼지처럼 눌러붙은 나이 먹은 여자로 변해 있었다. 예뻐졌다는 건 거짓말이 아니었지만, 그녀는 다른 사람보다 빠르게 나이를 먹은 것 같았다.

17살에 이미 제법 자연스럽게 소주병의 뚜껑을 따던 그녀를 기억하며 나는 멀리 시골 소도시에서 올라온 그녀의 팔짱을 끼고 고추장 돼지불고기가 맛있는 고기집으로 들어갔다. 여자의 팔짱을 끼어본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이었다.

“배고프지? 점심은 먹었어?”

15년 전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거의 밥을 푸는 주부의 손놀림 같은 경지로 소주병의 뚜껑을 따며 보은이는 고개를 저었다.

“휴게소에서 토스트 사먹기는 했는데, 배고파 죽겠어. 근데, 이렇게 빨간 양념이 묻어 있으면 고기가 익었는지 어떻게 알아?”

풋, 내가 웃음을 터뜨렸다. 15년 만에 만나는 친구와 소주잔을 부딪치고 한 모금에 술을 털어넣으며 내가 말했다.

“나도 몰라. 다 익으면 남들이 알아서 자르더라고. 나는 네가 아는 줄 알았는데.”

“나 이거 처음 먹어봐. 그럼 고기가 탈 때까지 기다려야겠네? 고기가 타면 어쨌든 익기는 익었다는 거 아니야.”

15년 만에 만난 보은이와 나는 그제야 우리의 어린 시절을 기억해내며 함께 웃었다. 나이보다 영악했던 우리 둘은 그럼에도 둘 다 일상생활에 서툴러 젓가락질도 못했고 쫄면을 먹을 때마다 고추장 양념이 튀어 옷을 망쳤고, 자주 버스를 잘못 타서 길거리를 헤매다 어린 주제에 택시를 타곤 했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누명을 썼을 때 우리는 둘 다 빠져나갈 방법을 찾지 못했다.

소주 두 병을 비우고 나서도 여전히 창백해 보이는 보은이가 신기하다고 생각하며 내가 물었다.

“그런데 내 전화번호 어떻게 알았어? 나 이제 연락하고 사는 애도 없는데.”

“잡지에서 네 이름 보고 혹시나 싶어 내 동생한테 물어봤지. 알잖아, 네 사촌동생과 내 동생이 같은 초등학교 나온 거.”

인구 25만 명 남짓한 소도시의 인맥이란 뻔해서 그렇게 몇 다리만 건너가면 서로 모르는 사람이 없기 마련이었다. 생각해보니 갑자기 나를 찾아왔던 17살의 보은이도 동생을 통해 내 연락처를 알아냈다고 했다. 그때 산업체 학교에 다니며 낮에는 공장에서 일한 보은이는 함께 밥을 먹고 내 밥값을 내려는 나에게 화를 내며 혼자 계산했고 술값과 노래방 비용까지 계산했다. 그날 내가 산 것은 노래방에서 마신 사이다 두 캔이 전부였다.

보은이가 새까맣게 타서 과자처럼 바삭바삭해진 고추장 삼겹살을 입에 넣고 남은 소주를 비우며 말했다.

“너, 제제 기억나?”

살면서 그 애를 기억해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잊어본 적도 없었던 것 같다. 나는 20년 전 우리를 궁지에 몰아넣은 흑인 혼혈아의 두꺼운 눈썹과 튀어나온 입술과 뚱뚱한 배를 곧바로 떠올렸다.

“갑자기 그 새끼 얘기는 왜 꺼내? 기억 안 났으면 좋겠다.”

졸졸졸, 소주가 흘러나오는 맑은 소리에 신경을 집중하며 나는 그 애의 잔과 내 잔을 채웠다. 보은이가 깜짝 놀란 듯 동그란 눈으로 나를 봤다. 주름과 화장이 겹겹이 둘러싼 창백한 피부 사이에서 아주 오래전에 봤던 아이의 눈동자가 보였다.

“너, 그럼 제이도 몰라?”

“제이가 누군데?”

보은이가 한 손으로 턱을 받치며 말도 안 된다는 듯이 손가락으로 턱을 톡톡 두드렸다.

“DOT의 제이, 흑인 혼혈 가수 있잖아.”

TV는 예능 프로그램과 미국 드라마만 보는 나는 그제야 예능 프로에서 몇 번 스치듯 봤던 아이돌 그룹의 혼혈 멤버를 기억해냈다. 제이, 제제, 제이제이…. 손에 들고 있던 술잔을 떨어뜨릴 뻔했다.

“제이? 그럼 걔가 제제야? 말도 안 돼. 제제는….”

보은이가 말꼬리를 잘랐다.

“그래 제제는 뚱뚱했지. 연예인들 성형수술해서 본판 바꾸면 동창생도 몰라본다더니 진짜구나. 군산 사는 애들은 다 알아, 걔가 제제야. 연예인들 나이 속이는 거야 네가 더 잘 알 거고.”

연예인 프로필은 믿을 게 못 된다는 건 영화잡지 기자인 내가 누구보다 잘 아는 사실이었다. 귀엽게 뺨을 부풀리며 어린 척하던 신인 배우가 사실은 나보다 한참 언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적도 있었고, 활동을 쉬는 동안 성형수술을 하고 나타난 여배우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녀에게 “영신씨는 언제 와요?”라고 물어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제제라니, 12살 나이에 처음으로 죽어버릴까 고민하게 했던 제제가 나보다 한참 꼬마라고 생각했던 아이돌 가수 제이였다니. 멍해진 나를 보며 보은이는 낮은 목소리로 키득거렸다. 그 아이의 눈동자가 어두워졌다.

미군부대의 비행장이 있는 군산은 지금의 홍대만큼이나 외국인이 흔한 도시였다. 그때 이미 퇴락해가고 있던 영화동에는 간판에 한글보다 영어를 크게 써넣은 상점들이 있었고, 꼬마들은 흑인 병사를 보면 오래전에 유행한 팝송 가사를 따라 “헤이, 미스터 몽키!”를 외치며 겁도 없이 까불곤 했다. 그리고 군산의 중심부에 있던 나의 초등학교에는 흑인 혼혈아가 몇 명 있었다. 졸업하기 직전에 아빠의 직장을 따라 전주로 전학을 가기 전까지 나는 밋싸, 라봇, 제제라는 아이들과 같은 반을 해보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아이들은 미샤, 로버트, 그리고 제이제이였을 것이다.

보은이가 새카맣고 진하게 그린 아이라인 아래로 어두운 눈을 빛내며 물었다.

“너 그때 누구 이름 썼어?”

나는 잠깐 망설였다. 12살밖에 되지 않았던데다 겁먹고 있기는 했다지만, 거짓말인 줄 뻔히 알면서 친구를 일러바친 기억은 ‘하나’라는 흔하고 흔한 단어를 들을 때마다 끈질기게 되돌아와 나를 수치스럽게 했다. 그날 하나가 입고 있던 빨간색과 파란색이 섞인 후드 점퍼를 떠올리며 나는 대답했다.

“하나. 걔가 제일 무난했거든.”

그때 범인의 이름을 쓰라며 쪽지를 한 장씩 받은 우리 다섯은 누구의 이름을 썼는지 결코 말하지 않았고 조금씩 멀어지다가 학년이 바뀐 다음에는 서로 아는 척도 하지 않게 되었다. 오직 보은이만 문득 내 앞에 나타나 자신이 얼마나 탈선했는지를 보여주고 사라졌다.

보은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소주를 마셨다.

“나는 네 이름 썼어. 네가 제일 안전했거든.”

“그래, 그랬겠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누군가 확, 가슴속에서 성냥불을 그어 대는 듯했다. 얼굴이 달아올랐다. 함께 몰려다니던 다섯 중에서도 보은이는 나와 가장 친한 아이였고 그 아이의 집안 사정을 아는 것도 나뿐이었기에, 나는 그 아이만은 내 이름을 쓰지 않았을 거라고 믿었다. 나는 테이블 사이를 걸어다니며 부족한 것이 없나 살피는 청년에게 손을 흔들었다.

“여기 고추장 삼겹살 1인분하고 소주 한 병 주세요!”

보은이와 내가 같은 반이었던 해, 군산초등학교 5학년8반 담임을 맡은 여자의 이름은 김군자였다. 나이가 오십에 가까운데다 얼굴도 이름처럼 착하게 생긴 그 여자를 아이들은 ‘군자’라고 줄여 부르며 우습게 알았지만, 보은이만은 환경미화 기간에 제 발로 남아 색지를 오려 붙이고 나무 바닥에 왁스를 칠해 윤기를 내며 엄마처럼 따랐다. 보은이는 집에 돌아가도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옷가게를 하던 아빠의 사업이 망한 다음 그 아이의 엄마는 그 애 말에 의하면 ‘도망’을 갔고, 재기하려는 아빠가 외지를 도는 사이 집을 지키는 건 할머니뿐이었다. 그 아이를 부잣집 딸처럼 보이게 했던 예쁜 옷들은 아빠가 처리하지 못한 재고였다.

군자가 보은이의 사정을 알아차린 것은 일주일 남짓 교실을 꾸민 다음 환경미화 심사를 받기 바로 전날이었다. 화분이며 꽃병이며 시계며 결코 비싸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부담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뭐한, 그런 물건을 아이들이 하나씩 나누어 사와야 했다. 군자가 제일 먼저 말한 물건은 시계였다. 나는 재빨리 손을 들었다. 엄마가 구정 선물로 벽시계 하나가 들어왔으니 꼭 시계를 맡아와야 한다고 당부한 터였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군자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그래, 시계는 우리 반장이 사오기로 하고, 그럼 다음으로는 화분이 몇 개 있었으면 좋겠는데?”

몇 명이 손을 들었다. 아버지가 지방 방송사 기자이고 엄마가 시내에서 한복집을 하는 영구가 가장 먼저 나섰고, 언제나 소시지와 돈가스 같은 고기 반찬을 싸와 점심시간이면 가장 인기가 많던 제제도 가볍게 손을 들었다.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군자는 손을 든 아이들의 수를 세어보다가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5명밖에 안 되네? 창문턱이 3개니까 1개당 2개씩은 놓아야 할 텐데….”

그러나 소도시의 고만고만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꽃병이나 새 주전자 같은 좀더 싼 물건의 차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딴청만 부리고 있었다. 교실을 더듬던 군자의 시선이 보은이에게서 멈추었다.

“보은아, 엄마가 화분 하나만 사다 주시면 안 될까? 벤자민처럼 비싼 게 아니어도 괜찮고. 그래, 봄이니까 조그만 철쭉 화분 하나 있으면 좋을 거 같은데.”

50명 넘는 아이들이 일제히 보은이를 돌아봤다. 보은이는 그 하얀 얼굴이 더욱 창백해진 채로 속눈썹을 빠르게 깜빡거렸다.

“저…, 지금 엄마가 어디 멀리 가셔서요. 다음달은 되어야 돌아오실 텐데….”

군자 같던 군자의 얼굴이 차갑게 변하는가 싶더니 희미하게 비웃는 기색이 떠올랐다. 20년 넘게 선생을 한 그녀는 한 달도 넘게 어딘가에 가 있다는 보은이의 엄마가 정말 무얼 하고 있는 건지 쉽게 알아차렸을 것이다. 쉬는 시간에 교무실로 불려간 보은이가 돌아온 이후, 군자는 보은이를 볼 때마다 그날의 그 비웃음을 머금곤 했다. 보은이도 더 이상 그녀를 ‘우리 담임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않았고 우리처럼 간결하게 ‘군자’라고만 부르기 시작했다.



그때 범인의 이름을 쓰라며 쪽지를 한 장씩 받은 우리 다섯은 누구의 이름을 썼는지 결코 말하지 않았고 조금씩 멀어지다가 학년이 바뀐 다음에는 서로 아는 척도 하지 않게 되었다. 오직 보은이만 문득 내 앞에 나타나 자신이 얼마나 탈선했는지를 보여주고 사라졌다.

보은이가 탁자 위에 놓인 내 잔에 자기 잔을 가져와 ‘쨍’ 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미안했어. 하지만 너도 알잖아, 너는 공부도 1등이었고 반장이었고 엄마가 자모회원이었고. 너라면 괜찮을 거 같았어.”

나는 그저 피식거리기만 했다. 가슴이 쓰렸지만,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내가 하나의 이름을 적은 이유는 그 아이가 5명 중에서 나 다음으로 공부를 잘했고, 그 아이의 엄마가 자주 학교에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 아이라면 괜찮을 거 같았다. 내가 내가 아니었다면 아마 나도 ‘김진’이라는 이름을 적었을 것이다.

보은이가 쓴 소주를 혀에 적시듯 조금씩 마셨다. 웬만큼 소주를 좋아하지 않고서는 그렇게 마실 수 없는 일이었다. 10년이 훨씬 넘게 소주를 마셨지만 나는 아직도 소주 맛이 느껴질까봐 술을 입속에 부어넣자마자 재빨리 삼켜버린다. 보은이는 얼마나 오랫동안 이런 식으로 소주를 음미해온 걸까.

“그래도 다행이다. 나, 항상 너한테 물어보고 싶었어. 너만은 내 이름을 쓰지 않았겠지 하면서도 궁금하더라…. 나는 다수결로 당첨된 것만 알았지 몇 표가 나왔는지는 몰랐으니까.”

혼자 교실에 들어오지 못하고 복도에 무릎 꿇고 앉아 있던 12살 여자아이가 생각났다. 열린 뒷문 틈으로 보이던, 절대로 손을 내리지 않겠다는 듯이 주먹을 꼭 쥔 채로 들어 올리고 있던 가늘고 하얀 팔도 생각이 났다. 6교시가 끝나고 다리가 저렸는지 약간 절룩거리며 교실로 들어온 보은이는 아픈 팔을 두들기면서도 울지 않았고, 그 아이의 이름을 적었을 4명의 용의자를 흘겨보지도 않았다. 그다지 친하지 않았던 짝꿍과 공부 안 하고 밖에서 노니까 좋더라며 쾌활하게 웃어댔을 뿐이다.

“그런데 말이야, 다른 애들은 왜 내 이름을 적었을까? 군자가 나를 제일 싫어하는 거 알면서, 아니, 그걸 알아서 그랬을까?”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은 나도 잠깐 네 이름을 적어야 하나 생각했어. 그래야 군자가 우리를 놓아줄 거 같았거든. 하지만 첫째로는 그럴 수가 없었고, 둘째로는 군자가 그렇게 호되게 대하지 않을 사람을 적어야겠더라고.”

그건 보은이나 나와는 또 다른 종류의 영악함이었다. 보은이와 나는 누가 가장 피해를 보지 않을까 계산했지만, 다른 아이들은 누구를 적어야 군자가 가장 마음에 들어할지를 계산했던 것이다. 고작 사탕 껍데기 몇 장 때문에 우리는 빠르게 권력관계를 파악해 희생자를 선택했다. 그리고 결코 그 일을 잊지 못했다.

그랬다, 고작 사탕 껍데기 몇 장이었다. 보은이와 하나와 명지와 세영이와 나는 언제나처럼 점심시간이 끝나는 종소리를 듣고서야 교실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우리는 사내아이들처럼 말뚝박기를 하고 노는 유일한 여자아이들이었다. 다른 아이들보다 키가 커서 어른스럽게 옷을 입고, 다른 아이들을 약간 깔보는 듯이 행동했으며, 지독하게 담임 말을 안 듣던 우리를, 군자는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대놓고 미워하지는 못했다. 나는 공부를 잘해서 곧 있으면 시 대표로 수학경시대회에 나갈 아이였고, 명지와 세영이와 하나는 제법 잘사는 집 아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맞춤 옷가게를 하는 세영이의 아빠가 틈만 나면 자기 옷은 전부 20만원이 넘는다며 자랑하는 군자에게 천값만 20만원이 넘는 고급 모직으로 치마 정장 한 벌을 맞춰주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가을보다 여름에 가까운 9월의 한낮 햇볕으로 볼이 빨갛게 달아올라 헉헉거리며 자리에 앉아 숨을 고르는 우리 앞에서 군자가 책상을 내리쳤다.

“이게 뭐야앗!”

웬만하면 온화한 어조를 유지하던 군자의 목소리가 찢어지듯이 날카롭게 공기를 갈랐다. 그녀는 교실 앞쪽 구석에 놓인 자기 책상 위에서 사탕 껍데기 몇 장을 움켜쥐어 들더니 교탁으로 걸어와 흔들어댔다. 검은 줄무늬 몇 개가 그려진 그 비닐 포장지들은 아이들이 자주 사먹던, 하지만 학교에선 불량식품이라고 사먹지 말라며 단속하던 조그만 엿을 싼 포장지였다. 점심시간 직후여서 조금 소란스럽던 교실이 대번에 조용해졌다. 군자는 계속 소리를 질러댔다. 그 목소리에 살을 베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누가, 누가아! 누가 선생님 책상에 이런 쓰레기를 올려놨어! 누구야, 당장 나와!”

순간적으로 불량식품을 사먹었다고 혼나지 않을까 걱정한 나는 생각보다 일이 커질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사탕봉지 몇 장이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는 것이 그렇게 큰 일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군자가 자신의 권위와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고 믿는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한국전쟁 때도 쌀밥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동네에 연기가 새나가지 않도록 조심해서 밥을 짓는 부잣집 딸이었다는 것을 강조하던 군자는, 어린 내가 보기에도 자부심이 강한 여자였다.

교실 뒤쪽에서 조그만 목소리가 새나왔다.

“그거 진이하고 걔 친구들이 먹던데요.”

나는 깜짝 놀라 목소리가 들린 쪽을 돌아보았다. 영구, 불행히도 심형래가 영구 노릇을 하기 전에 태어나 바보와 동의어가 되어버린 이름을 가지게 된 영구, 그럼에도 하는 짓만은 그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멍청한 영구였다.

군자가 나를 노려봤다.

“김진, 네가 이거 먹었어?”

나는 주춤거리며 의자를 뒤로 밀고 일어섰다. 목이 막혔다.

“네, 먹기는 먹었는데요, 근데 제가 그거 올려놓은 거 아니에요.”

어릴 적부터 또박또박 말대꾸를 잘하고 따지기를 좋아해서 크면 꼭 변호사가 되라는 말까지 듣고 자란 나였는데 그 순간엔 꼭 영구처럼 말이 더듬거리며 새나왔다. 마치 목구멍이 턱없이 작아져 목소리가 나올 틈을 찾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먹기는 먹었다는 거지?”

나는 의자를 완전히 뒤로 밀고 무릎을 폈다.

“네. 그런데요….”

군자가 내 말을 잘랐다.



검은 줄무늬 몇 개가 그려진 그 비닐 포장지들은 아이들이 자주 사먹던, 하지만 학교에선 불량식품이라고 사먹지 말라며 단속하던 조그만 엿을 싼 포장지였다. 점심시간 직후여서 조금 소란스럽던 교실이 대번에 조용해졌다. 군자는 계속 소리를 질러댔다. 그 목소리에 살을 베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누가, 누가아! 누가 선생님 책상에 이런 쓰레기를 올려놨어! 누구야, 당장 나와!”

“김진하고 같이 사탕 먹은 사람 다 일어나!”

오래된 나무판자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다른 4명이 책상과 의자 사이에 틈을 벌리며 일어나 서로를 돌아보고 있었다.

“사탕은 니들이 먹었는데 쓰레기는 니들이 버리지 않았다?”

군자가 출석부를 모로 들어 교탁을 두드리며 말했다.

“그래도 니들 중에 누구 한 사람이 내 책상에 쓰레기를 버리기는 했겠지?”

조금 전까지 송곳처럼 날카로운 목소리로 신경을 파고들던 군자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평소처럼 낮고 굵게 가라앉았다. 나는 몇 달 동안 날마다 대여섯 시간을 듣고 살았던 그 목소리가 새삼 끔찍했다. 군자는 다시 책상으로 돌아가 교무수첩에서 메모지 5장을 찢어냈다.

“너희들 이거 들고 나가서 범인 이름 적어서 내. 너희들은 알 거 아니야, 누가 그랬는지.”

우리는 우리 중의 누구도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도시락을 까먹고 엿을 하나씩 입에 물자마자 운동장으로 뛰어나간 우리는 남자아이들이 오기 전에 재빨리 그늘진 벽을 차지하고선 내내 말뚝박기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군자는 사실을 말하라고 한 것이 아니라 범인의 이름을 말하라고 했다. 나는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입술을 깨물며 땅바닥을 걷어차는 나에게 하나가 울먹거렸다.

“우리 어떡해, 군자 진짜 화났나봐. 진아, 네가 들어가서 말 좀 해보면 안 돼? 그래도 너는 군자가 조금 예뻐하잖아, 반장이기도 하고….”

그 순간 짜증이 치밀었다. 그렇지 않아도 영구가 하필 내 이름만 지목한 것 때문에 불안하고 신경질이 나던 참이었다. 진이하고 하나하고, 뭐 그런 식으로 말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뭐, 반장? 여기서 반장이 왜 나와? 우윳값 내라고 교실 앞에서 소리소리 지를 때는 시끄럽게 수다만 떨더니 이럴 때만 반장이야?”

원래도 높고 가는 내 목소리가 비브라토로 떨리면서 한층 새되어졌다. 하나가 멈칫했다. 다른 아이들의 얼굴도 굳어졌다. 나는 아이들에게 등을 돌리고 팔짱을 꼈지만 알 듯 모를 듯 그 아이들이 조금씩 뒤로 물러나 나와 거리를 벌리기 시작했다는 것만은 뭔지 모를 서늘한 느낌으로 눈치챌 수 있었다. 누가 그랬을까,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하지 않았다는 걸 알아줄까, 의논하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혼자 신교사와 구교사를 잇는 구름다리 아래를 내려다봤다. 그리고 지금 몸을 던진다면 내가 억울하다는 것을 믿어줄까 생각했다.

결정을 내리게 만든 것은 보은이였다.

“어떻게 할까, 이름 안 쓰면 하루 종일 교실에 안 들일 거 같은데. 집에도 못 갈지 모르고.”

보은이는 나를 쳐다봤다. 아이들 몇 명이 함께 몰려다니다 보면 리더 노릇을 하는 아이도 있고 오락부장 노릇을 하는 아이도 있고, 그렇게 역할 분담을 하는 사람이 생겨나기 마련이었다. 그 그룹의 리더는 나였다. 30분째 밖에 서 있으려니 다리가 아팠고, 다른 방법을 생각해낼 수 없었다. 2층 구름다리에서 떨어져봐야 고작 다리나 부러질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 이름이나 쓰고 들어가자.”

가을 햇볕에 따뜻하게 달구어진 구름다리의 난간에 종이쪽지를 대고 우리는 서로 멀찌감치 떨어져 누군가의 이름을 적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름을 적자마자 황급히 쪽지를 두번 세번 접어 손바닥 안에 감추고 한 명씩 교실로 들어갔다.

그때 나는 서로 다른 이름을 적어내자 하고 싶었다. 누구도 2표 이상을 얻지 않는다면 군자도 어떻게 할 수 없겠지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 전에 짜증을 내는 바람에 나와 아이들 사이에는 미묘한 균열이 생겼고, 무엇보다 그렇게 했다가는 군자가 다시 한번 우리를 교실 밖으로 쫓아낼까봐 겁이 났다. 결국 희생자는 한 명으로 충분한 것이었다. 쪽지를 모두 받아 훑어본 군자는 자기 키 절반만 한 지시봉으로 보은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너, 오늘 수업 끝날 때까지 복도에서 무릎 꿇고 손들고 있어.”

교과서를 펴들며 우아하고 인자한, 언제나 비싼 정장만 입는 우리의 군자 선생님은 처음으로 상스러운 소리를 내뱉었다.

“하여튼 요즘 것들은 까져가지고 싸가지가 없어.”

그날 이후에도 우리 다섯은 여전히 함께 점심 도시락을 먹었지만 그건 하루아침에 도시락 먹는 친구를 바꿀 수 없어서 그랬던 것뿐이다. 나는 점심시간에 책을 읽기 시작했고, 하나는 고무줄 놀이에 끼어들었고, 보은이는 머리카락을 과산화수소로 탈색하거나 스카치테이프로 쌍꺼풀을 만드는 불량한 아이들과 어울렸다. 명지와 세영이도 어디에선가 새로운 그룹을 찾아냈을 것이다.

그렇게 데면데면하게 며칠을 지내던 보은이가 점심을 먹자마자 내 자리로 돌아가 책을 펼쳐든 나에게 다가왔다. 눈빛도 목소리도 은밀했다.

“나, 그거 누가 버렸는지 알았어.”

나는 책을 덮었다.

“누가 그랬는데?”

“제제. 어제 쉬는 시간에 걔가 남자애들한테 떠드는 소리 들었거든.”

이제 고작 두 번째 해보는 것인데도 나는 또다시 빠르게 계산했다. 내가 흑인 혼혈아들이 겪는 설움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볼 때마다 이해하지 못하는 까닭은, 초등학교 시절 그 아이들을 귀하고 특별한 존재처럼 대하는 선생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군산에 맥도널드도 없던 시절이었다. 시골 소도시의 선생들은 미제 과자와 샴푸와 커다란 피자 박스를 들고 오는, 화장도 옷도 요란하면서 어딘지 세련돼 보이는 그 아이들의 엄마를 귀빈처럼 모시곤 했다. 그중에서도 제제는 유별나게 편애를 받았다. 그 애 아빠는 군의관이었다.

나는 도로 책을 열었다.

“이미 지나간 일인데 어떻게 해. 증거도 없고, 제제가 잡아떼면 그만 아니야.”

나는 그때 보은이가 실망하던 표정을 잊지 못할 것이다. 같이 모욕을 받았으나 혼자 벌을 받은 그 아이의 눈이 내가 보는 앞에서 생기를 잃고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그 순간까지 그 아이의 눈에 반짝거리는 빛이 담겨 있는 줄 몰랐던 나는 그게 없어지고 나서야 그 검은 눈에 빛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제제에게 비슷한 누명을 씌우는 상상을 수없이 하면서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우리 제제한테 복수하지 않을래?”

새로 시킨 고기가 익었나 찔러보는 나에게 보은이가 은밀한 어조로 물었다. 나는 20년 전 그날처럼 빠르게 계산을 해보았다. 승산이 없었다.

“어떻게 복수하려고? DOT 같은 아이돌 그룹은 기획사가 관리 철저하게 할걸? 차라리 혼자라면 모르겠는데, 아마 걔 근처에도 못 갈 거다.”

보은이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야, 걔가 군산에서 되게 지저분하게 살았거든.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치맛바람도 소용없어지니까 ‘튀기’라고 왕따당하다가 거의 미치다시피 해서 교실에서 칼부림을 했대. 그 일 때문에 퇴학당하고 나서 저 같은 흑인 혼혈 여자와 같이 살면서 열 받는 일 있으면 한 번씩 두들겨 패고, 암튼 망나니였어. 그러니까 말이야….”

그제야 나는 보은이가 15년 만에 나를 찾아온 이유를 알았다.

“걔도 안됐네. 그리고 보은아, 나 연예기자 아니고 영화기자거든? 우리 잡지에는 그런 가십 뉴스 같은 거 싣지 않아. 내가 쓰고 싶어도 지면이 없어.”

20년 전 그날과는 다르게 보은이의 검은 눈은 한층 어두운 빛을 뿜으며 깊어졌다.

“나도 그 정도는 알지. 그래도 너, 스포츠신문이나 인터넷 기자들과 알고 지낼 거 아니야. 그 사람들한테 말해주면 좋아하지 않을까? 인터넷 보면 이니셜 기사 많잖아.”

나는 그 눈을 피하며 고기를 뒤집었다.

“그 이니셜 기사라는 것도 기획사 눈치 봐가며 싣는 거야. DOT 기획사 센 회사잖아. 괜히 잘못 썼다가 사이 나빠지고, 그건 그나마 다행이지, 소송이라도 휘말리면 골치 아파지는 거야. 그리고 나 아는 기자도 없어.”

보은이의 눈이 다시 한번 시들어갈까 무서워 나는 급하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네가 인터넷에 직접 올려보든지. 왜 그 아영이라는 가수도 나이와 경력 속인 거 동창생들이 인터넷에 올려서 들통났다며.”

문득 옛날 생각이 나서 나는 쿡쿡거리며 말했다.

“우리 때 인터넷이 있었으면 너도 키스하는 법 몰라서 남자한테 차이거나 그러지 않았을 텐데, 그치?”

보은이의 눈이 심하게 흔들렸다. 실망과 분노와 우습지도 않은 추억 사이 어디쯤에 자리잡아야 할지 모르는 눈이었다.

전주까지 나를 찾아온 17살의 보은이는 나이보다 들어 보이게 화장한 얼굴로 밀고 들어간 술집에서 문득 나에게 키스하는 법을 아는지 물었다.

“너는 할리퀸 로맨스 같은 거 많이 읽었잖아. 키스는 어떻게 하는 거야?”

처음 마셔보는 소주에 정신이 없었던 나는 균형을 잡으려고 탁자 모서리를 꼭 붙든 채 말했다.

“나도 안 해봤으니까 모르지. 대충 혀를 집어넣고 그걸 빨고 입술도 살짝 물어주고 그런 거 같긴 하던데…. 근데 왜?”

“어떤 오빠와 같이 살 뻔했는데 차였어. 밤에 그 오빠 자취방에서 놀다가 키스를 했는데, 어떻게 하는 건지도 모르겠고, 입술만 대고 있다가 심심하고 졸려서 잠들었어.”

나는 보은이의 애매한 표정을 애써 모른 척했다.

“지금 같으면 지식인한테 물어보면 끝날 일이었는데 말이야. 조금만 늦게 태어날걸 그랬다.”

보은이는 마음을 정한 것 같았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소주 한 잔을 들이켠 보은이가 말했다.

“그러니까 그냥 인터넷 익명 게시판 같은 데나 올려라, 이거지? 뜬소문이네 악플이네 하면서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나는 머뭇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머리카락이 흘러내려 그 끝이 소주잔에 빠졌다. 근원을 따져보자면 보은이가 억울하게 벌을 받은 것은 내 탓이기도 했다. 그러나 20년이나 지났고 이제는 거의 흔적도 남지 않은 일인데, 보은이가 모르는 그 일을 새삼 들춰내고 싶지 않았다.

“보은아, 다 지난 일이잖아. 그 일 말고 제제가 우리한테 무슨 해꼬지를 한 것도 없고, 우리도 아무 일 없이 잘 살았잖아. 그만 잊어라.”

보은이가 픽, 하고 웃었다. 한쪽 입술 끝만 올리는 그 웃음이 어릴 적엔 왠지 교태로워 보여 나는 거울을 보며 혼자 그것을 따라하기도 했다.

“너는 잘 살았을지 모르지. 하지만 나는 아니야.”

보은이가 자기 머리채를 쥐고 흔들었다.

“내가 왜 돈 쳐들어가면서 허구한 날 스트레이트 파마 하고 다니는 줄 알아? 중학교 때 파마하고 다닌다고 선생한테 두들겨 맞았어. 원래 곱슬머리라고 했는데도 한국 사람한테 이런 곱슬이 어디 있느냐며 좆나게 때리더라? 열 받아서 진짜 파마를 해버렸지. 그다음에도 항상 비슷했어. 나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아무도 믿어주지를 않았어. 너 같은 것들이 다 그렇지 뭐, 어린 것이 귀 뚫고 염색이나 하는 거 보면 뻔하지 뭐, 항상 그랬어.”

보은이의 말투가 점점 거칠어졌다. 산업체 학교를 졸업하고 그 아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진하게 화장을 했는데도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며 마감이 허술해 솔기가 비뚤어진 보세옷을 보면 그렇고 그런 뻔한 인생사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멀쩡하게 잘 사는 년한테 함께 복수하자고 쫓아 올라온 내가 미친년이다.”

보은이가 발딱 일어섰다.

“차비만 버렸네, 씨발. 그래도 너는 의리가 있는 줄 알았는데.”

아직도 고기 몇 점이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는 탁자 앞에 민망하게 혼자 앉아 나는 ‘의리’라는 단어를 곱씹어보았다. 우리 나이에는 누구도 그런 단어를 쓰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동거를 시작하려고 했으면서 키스하는 법을 몰랐고, 나이 서른둘에도 의리라는 것이 존재하리라고 믿었던 보은이는, 도대체 어떤 식으로 나이를 먹어온 걸까. 남들보다 빠르게 나이를 먹으려고 발버둥치는 것처럼 보인 ‘까진’ 아이는 아예 나이를 먹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나는 남은 술을 비우고 계산서를 집어들었다.

보은이가 구속된 것은 몇 달이 지난 11월 무렵이었다. 그 아이가 무슨 사고를 치지 않을까 싶어서 거의 매일 인터넷 연예 뉴스를 챙겨보던 나는, 마음을 졸인 나머지 어쩌면 은밀하게 기다리기까지 했을지도 모를 뉴스를 발견했다.

아이돌 그룹 멤버 A군에게 유해 물질이 든 음료수를 건네려던 30대 여성 B씨(무직)가 체포됐다. B씨는 그동안 A군이 멤버들과 함께 살고 있는 숙소 앞에 쓰레기를 버리거나, A군에게 잘게 찢은 자신의 사진과 바늘을 꽂은 인형을 보내는 등 이상행동을 보여왔다. 수사 결과 B씨는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해 “A군이 어린 시절 저지른 범죄로 인해 내 인생이 망가졌다” “상습적으로 여자를 패는 인간이다” 등등의 주장을 유포해 A군 소속사의 의뢰를 받아 경찰이 수사 중이던 인터넷 악플러와 동일 인물인 것으로 밝혀졌다. 소속사는 “B씨가 유포한 소문은 전혀 근거가 없는 허황된 것이다. 유흥업소에서 일하다가 한동안 실직 상태에 있던 A씨가 사회를 향한 분노를 엉뚱하게 표출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 짧은 뉴스를 보자마자 나는 대번에 보은이가 내가 농담처럼 흘린 말을 곧이곧대로 실행해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0년 전처럼 내가 무심코 한 일이 어두운 악의를 품고 그 아이 마음에 번져간 것이다. 나는 뉴스에 줄줄이 달린 댓글들을 읽을까 망설이다가 인터넷 창을 닫아버렸다. 멀리서 제제의 초콜릿색 눈동자가 나를 노려보았다.

쉬는 시간에 제제를 둘러싸고 떠들던 남자아이들이 그 자리를 떠나 내게 가지고 온 것은 컬러 만화가 인쇄된 조그마한 책이었다. 아마도 누군가의 형이나 아버지가 영어회화를 연습하려고 테이프와 함께 샀을 것이다. 그중 누군가가 내 책상 위에 만화책을 내려놓으며 큰소리로 물었다.

“너 영어학원에 다닌다고 했지? 이거 무슨 말인지 알아?”



“너는 아빠가 미국 사람이면서 진이보다 영어를 못하냐?”
언제나 미제 초콜릿바를 입에 물고 다니며 자랑스럽게 상표를 읽어주던 초콜릿색 피부의 혼혈아 제제는 나를 잠깐 노려보는가 싶더니 살찐 어깨를 동그랗게 움츠리며 아무 말 없이 창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제제는 영어를 하지 못했다.

12살 즈음이면 여자아이들이 남자아이보다 키도 크고 성숙하기 마련이다. 내 어깨에 닿을락말락하던 남자아이들이 언제나 우스워 보였던 나는 피식 웃으며 손끝으로 영어 대사를 하나하나 짚으며 읽기 시작했다.

“웨어 아 유 고잉, 제인? 어디 가니, 제인?”

그런 식으로 짧고 쉬웠던 대여섯 개 문장을 읽어 내려가자 남자아이들은 뒤페이지에 적힌 해석을 확인하고는 환성을 지르며 신기해하다가 흘깃 제제를 돌아보았다.

“너는 아빠가 미국 사람이면서 진이보다 영어를 못하냐?”

언제나 미제 초콜릿바를 입에 물고 다니며 자랑스럽게 상표를 읽어주던 초콜릿색 피부의 혼혈아 제제는 나를 잠깐 노려보는가 싶더니 살찐 어깨를 동그랗게 움츠리며 아무 말 없이 창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제제는 영어를 하지 못했다. 아빠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도 나의 초등학교에 있던 흑인 혼혈아들은 모두 영어를 하지 못했다. 그랬기에, 나를 쏘아보던 제제의 눈동자가 며칠이 지나도록 어깨와 등 언저리에 젖은 얼룩처럼 습하고 끈적거리는 느낌으로 남아 있었으면서도, 나는 그 일이 사탕 껍데기로 돌아올 줄은 짐작도 하지 못했다.

어둡게 변한 컴퓨터 액정 위로 윈도 로고가 어지럽게 떠다니기 시작했다. 보은이가 입고 있던 싸구려 튜브톱의, 실밥이 너덜거리는 스팽글이 반짝거렸고, 1개에 10원짜리인 사탕 껍데기들이 바스락거렸고, 언제나 제제의 미제 학용품과 간식거리를 기웃거리던 남자아이들의 야비한 비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구름다리 아래 하얀 콘크리트 바닥에 9월 햇빛이 부딪혀 자잘하고 날카로운 조각들로 부서졌다. 생각해보면, 나도 그 남자아이들처럼 제제의 물건들이 신기하고 부러웠던 것일지 모르겠다. 10원짜리 엿을 물고 다니면서 그 아이의 초콜릿바와 밀크캐러멜을 보지 않으려 애쓰다가, 아주 사소한 기회를 얻자마자 아무것도 아닌 척 시기와 악의를 흘려보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인터넷 메신저를 켰다. 거기엔 내가 아는 유일한 스포츠신문 기자인 고 선배가 등록돼 있었다. 나는 그에게 말을 걸었다.

“고 선배, DOT 제이한테 스토커 붙은 거 맞지?”

“응, 그 여자 나이도 많던데 나이를 어디로 먹은 건지.”

한심하다는 뜻으로 도리도리를 치는 강아지가 메신저 창에 떠올랐다. 굽이 아스팔트 바닥에 부딪힐 때마다 딱딱 소리를 내는 싸구려 샌들을 신은 나이 든 여자와, CF 한 편 찍으면 내가 10년 가까이 부어온 적금보다 많은 돈을 손에 넣을 화려한 아이돌 가수. 나는 쉿, 하고 조그마한 틈이 벌어지며 밀봉해두었던 나의 악의가 새나오는 소리를 들었다.

“근데 그거 진짜면 어떡할래? 그냥 얘기해주는 건데 말이야, 내가 제이하고 같은 고향 출신이거든.”

키보드가 빠르고 경쾌한 소음을 만들기 시작했다.



수상 소감
글을 쓰면서 비로소 생각한다
김정원

김정원

내가 이런 진부한 말을 쓰게 될 줄은 몰랐는데, 부끄럽다.
당선 소식을 듣고 나서 혹시 부끄러운 나의 소설이 혼자 하드에서 숙성되어 괜찮은 소설이 된 것은 아닐까, 다시 한번 파일을 열어보았지만, 그럴 리가. 개 꼬리는 3년을 묻어두어도 개 꼬리다. 괜한 일을 했다고 후회하면서 황급히 파일을 닫았다.
부끄러운 소설을 썼다면 부끄럽지 않은 수상 소감이라도 써야 할 텐데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까. 아무 생각 없이 원고를 보냈던 나는 그제야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세상에는 밖으로 내보내야 하는 생각이 너무 많아 글을 쓰는 사람도 많겠지만, 나는 글을 쓰면서 비로소 생각을 한다. 그것이 내가 글을 써야 하는 이유다. 너무 오래 쓰지 않고 읽기만 했더니 타고난 것보다도 바보가 되어 있기에, 깜짝 놀란 나는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쓰는 글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냥 나한테나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지 못할 거라면 최소한 민폐는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어서, 이런 말을 하는 내가 또다시 부끄럽다. 열심히 해서 조금 덜 부끄러운 사람이 되어야지. 그리고 감사합니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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